이렇게 먹으면 문제는 배부른지 모르고 먹게 된다. 세상 가장 맛있는 조합이 아닌가. 햄버거, 그것도 패티 두 장 짜리 햄버거에 계란 스크램블, 거기에 마성의 맛 마요네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내가 이렇게 하나만 먹었을 줄 아는데(주위 사람들은) 나 사실 햄버거, 그러니까 패티 두 장 짜리 두툼한 햄버거를 이렇게 두 개를 먹었다. 마요네즈가 미친 것처럼 입 안으로 죽죽 들어왔다.
거기에, 또 거기에 텀블러에 얼음을 잔뜩 채우고 맥주를 콸콸 부어서 마셨다. 이건 정말 미식을 향한 허영도 아니며 그저 먹기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냠냠 먹게 된다. 햄버거를 이렇게 해서 매일 먹고 싶다. 이건 정말 진심이다. 진심을 다해서 매일 한 끼는 이렇게 먹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먹으면 나 같은 경우는 정말 살이 많이 찔 것이다. 특히 신체의 앞쪽보다는 뒤쪽에 살이 많이 붙을 것이다.
몇 달 전부터 마요네즈에 빠져 있는 나는 평소에 먹지 않았던 마요네즈의 맛에 눈을 뜬 후 몇 달 동안 야무지게 마요를 모든 음식에 곁들여 먹었더니 겨드랑이와 겨드랑이 주위에 살이 붙었다. 여기에 붙은 살은 잘 빠지지도 않는다. 음식은 본디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이지만 지금 어떤 사람들에게는 취미나 여가의 한 부분 내지는 모든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음식을 향한 인간의 욕망 내지는 탐욕 그리고 여러 감정을 담아낸 영화가 있다. 1985년의 이타미 쥬조 감독의 영화 ‘탐포포(담뽀뽀)’가 그렇다. 영화를 봤을 때 나는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음식의 탐미와 미식의 허영.
굴에 떨어진 피가 퍼지는 예술작품 같은 마법.
단 음식에 대한 인간의 갈망.
라면을 빨아 당겨 목구멍으로 넘기는 쾌감.
쾌락적 후추와 쾌락적 레몬을 젖가슴에 뿌려 먹는 욕망.
죽음을 앞두고도 끊을 수 없는 완탕면의 유혹.
인간의 미식을 채우기 위해 무수히 죽어간 생물들.
쾌락의 절정은 음식에서 완성되고.
이 모든 것들이 나대거나 모자라지 않게 영화 속에 잘 스며들어 있다. 마치 탐탐포의 네기소바 속 국물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웨스턴의 대결구도를 따라간다. 찰스 브론슨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서부영화의 전개를 답습하듯 진행된다. 마성의 총잡이가 한 시골에서 악당들에게 매일 당하는 한 농가에 들어가서 악당들에게 멋지게 총질을 하고 농가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이야기처럼 진행된다. 거기에 농가에는 꼭 한 명의 어린 소년이 있는데 총잡이는 마초이지만 그 어린 소년과 나중에는 아주 친하게 되는 것까지 멋지게 해낸다.
영화 탐포포에서 주인공 고로(여기서도 이름이 고로다. 역시 음식과 고로라는 이름은)는 카우보이 모자를 내내 쓰고 나온다. 심지어 목욕을 하면서도 그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다. 트럭 운전사인 고로는 배가 고파 라멘을 먹으러 한 라멘 가게에 들어가는데 그 집의 라면이 맛이 너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서부극처럼 라멘 가게 여주인을 희롱하고 있는 마을의 건달들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고로는 맛은 없지만 라면을 먹다가 건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고 여주인을 희롱하는 건달들과 라멘 가게 밖에서 결투를 하게 된다. 5대 1로 결투를 했기에 고로도 여러 군데 몸에 상처가 났고 여주인은 고로를 집에서 하룻밤 재워준다. 여주인의 아들과 함께 아침에 밥을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고로는 여주인에게 라멘에 대한 몇 가지 충고를 해주고 여주인은 고로에게 진정 맛있는 라멘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고로는 생각 끝에 라면 수련에 들어간다. 그 여주인의 이름이 탐포포였다. 맛이 없는 탐포포네 라멘을 일으키기 위해 은둔 고수들을 찾아 나서고 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라면 맛의 1을 올리기 위해 노력과 훈련을 처절하게 한다.
라멘집에서 라멘과 주인장인 탐포포를 둘러싼 대결은 그야말로 웨스턴 서부극의 일대일 총잡이 결투와 맞먹는다. 5대 1에서 패한 5명 중의 우두머리가 다시 찾아온다. 고로에게 일대일로 붙어 보자고 한다. 그때는 우리가 다섯 명이라 너무 비겁했다면서. 그리하여 두 사람의 결투가 펼쳐진다. 장엄하고 비장한 음악과 배경은 없지만 라멘에 대한 집념과 80년대 도쿄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수구에서 두 사람이 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너무나 멋지다. 두 사람은 얼굴이 엉망이 되었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건달은 탐포포 라멘 가게를 일으키는데 도움을 주기로 고로와 약속을 한다.
라멘 하나로 이렇게나 재미있게 인간의 모든 욕망을 표현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인간의 발끝부터 시작하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음식이다. 음식은 죽음과 직결한다.
고로는 자신의 스승을 찾아간다. 스승은 의사였는데 요리에 미쳐서 병원도 집도 아내에게 빼앗기고 집에서 쫓겨 나와 노숙자들과 생활을 하는데 이 노숙자들이 엄청난 요리 전문가들이다. 어떤 음식이든지 먹기만 하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재료는 뭐가 들어갔는지 알아내는 사람부터 대단한 집단인 것이다. 그중에 한 거지가 탐탐포의 12살 아들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묻고 소년은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다고 한다. 거지는 소년을 데리고 한 골목으로 들어가 작은 문을 따고 들어가니 한 음식점의 주방으로 이어졌고 거기서 경비가 오기 직전에 빠르게, 그것도 너무나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휙 만들어낸다.
그렇게 탐포포는 고로를 선두로 은둔 고수들을 찾아낸다. 영화 속에는 김치와 상추에 싸서 먹는 돼지갈비가 나온다. 돼지갈비는 꽤 오래전에 일본에 상륙한듯싶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탐포포는 네기소바를 만들어낸다. 바로 줄을 서서 먹는 라멘. 그것을 해내고 만다.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긴 호흡으로 점점 클로즈업이 되며 영화는 끝난다. 인간의 탄생은 음식과 함께 출발한다. 음식은 인간의 죽음과도 직결하지만 바로 인간의 탄생도 음식과 함께 한다. 그 출발을 알리는 것이 엄마가 만들어낸 모유였다. 엄마 젖을 빨아먹는 아기의 마음속에는 생존과 함께 오감도 열리게 된다.
음식이 인간의 탐욕을 잘 말해주는 영화가 시간이 흐른 후에 또 나오게 된다. 브라질과 이태리 영화 ‘에스토마고’다. 요리 영화가 아닌데 요리 영화인 이상하고 굉장한 영화다. 음식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게 되는, 인간의 욕망 충족에 대한 갈망을 음식과 요리로 만들어낸 영화였다.
영화 ‘탐포포’에는 우리가 알만한 많은 배우들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실락원과 큐어에서의 야쿠쇼 코지는 얼굴이 너무 젊어서 잘 알아보지도 못할지도 모른다. 일본인이라면 대번에 알아보겠지만.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말이 많았던 부부 - 안 와타나베와 히가시데 마사히로 부부는 히가시데가 아직 18살이었던 카리타 에리카(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는 배우로 우리나라 아스달 연대기에도 나왔다. 상승세를 타고 일본에서 뻗어 나갈 것 같았는데 히가시데와 불륜 이후 맥을 못 추고 있다)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어서 헤어지게 되었다.
그때 안은 임신을 하고 있었던 걸로 아닌데 지금은 시간이 지나 히가시데는 아이 세 명의 양육비를 줘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어쩌고 하는 가십이 있다. 게다가 4개의 광고 계약이 빠지면서 2억 엔의 위약금도 물어야 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어린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촬영장에도 데리고 다녀서 소속사에서도 화가 잔뜩 나 있다고 한다.
그 부부였던 안 와타나베의 아버지, 켄 와타나베가 고로의 트럭을 모는 동료 조수로 나온다. 역시 얼굴이 청년 청년 하다. 와타나베 켄은 일본의 자랑 같은 배우로 할리우드 영화에도 많이 나왔다. 고질라부터 너무나 재미있게 본 웨스 엔더슨의 개들의 섬, 디카프리오와 함께 인셉션에도 나왔다.
아무튼 배우로서는 타이틀이 좋은 배우이나 재혼한 아내 카호(는 제일 교포 2세인데 역시 배우이며 최근에는 파친코에서 에츠코 역, 심은경과 카호의 블루 아워에도 나왔는데 그때 연기가 참 좋았음)가 유방암으로 투병 중일 때 21살 연하의 보석 디자이너와 불륜 소식이 퍼지면서 일본은 충격에 빠졌었다. 그때 두 사람은 침대에서 꽁냥꽁냥 사진까지 모두 공개되었다.
와타나베 켄은 암으로 투병하는 아내를 두고 불륜녀에게 “나 이혼할 테네 내 아를 낳아도”라고 해서 일본인들은 충격의 망치를 머리 앞뒤로 맞는 상황. 왜 그런가 하면 와타나베 켄은 처음 결혼을 하고 아들인 다이 와타나베와 딸인 안 와타나베를 낳고 난 다음 백혈병에 걸려 쓰러져 버린다. 그때 전처인 유미코가 사채를 끌어다 써 버려서 집은 차압당하고 엉망진창이었다. 거기에 켄은 백혈병으로 투병하는데 유미코가 신흥종교에 빠져서 거액을 거기에 다 갖다 바치는 등.
그러다 2005년에 이혼을 하고 미나미 카호와 재혼을 하고 지내던 중에 2016년에 백혈병이 재발하는데 그때 카호가 헌신적으로 간호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켄 와타나베의 불륜은 일본은 도가니,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랬는데 딸인 안 와타나베도 남편인 히가시데의 불륜으로 이혼을 하게 되고. 가장 최근의 소식은 안 와타나베는 유튜브에 요리하는 브이로그를 올렸는데 거기에 오늘 이 자리에 같이 요리할 사람이 있다며 아버지를 불러 같아 요리를 한다.https://youtu.be/QsSZv1-38qk
아무튼 탐포포에는 와나타베 켄의 청춘 청춘 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영화 속 야쿠쇼 코지와 함께 관능의 마성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여성이 나온다. 이 배우는 구로다 후쿠미로 아마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있는 일본 배우일 것이다. 한국에서 책도 여러 권 출판했고,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려고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래전에 탁경현이라는 한국인이 가미카제 대원으로 출격하여 억울하게 죽었던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후쿠미가 탁경현이라는 한국인을 위해 비석을 세웠다. 이 탁경현이라는 사람은 일본 육군항공대 51진무대 소속 소위, 일본 이름 미츠야마 후미히로다. 사후 2계급 추서로 대위가 되었다. 한국인 탁경현은 당시 나이 25세. 고향은 경남 사천시 서포면이었다. 그럼 이 비석이 사천시에 세워져야 하는데 비석은 용인시의 법륜사에 세워져 있다.
탁경현은 여섯 살 때 지독하고 엄청난 가난으로 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이주했다. 당시 일본에서 한국인은 굉장한 멸시와 말로 할 수 없는 차별을 받고 편견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고개도 들지 못하며 살았다. 영화 파친코에도 잘 나오지만. 그렇게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학업을 놓지 않고 약학 전문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고 한다.
그때 군국주의의 전쟁 광기가 최고조에 달한 일본은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까지 돌입한다. 전쟁이 길어지고 피해가 늘어난다. 또 전세가 날로 바뀌고 악화되자 일제는 한인들도 강제로 징집하여 전쟁 속으로 보내려 한다. 바로 총알받이로 죽음을 맞게 한다. 계속되는 패배와 함께 패전이 눈앞에 뻔히 보였지만 일본은 국민들을 속이며 입을 막고 진실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근래의 러시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무장도 안 된 병사들을 총검 만으로 기관총과 중무장한 타국 앞에 무작정 돌격하여 그대로 죽음으로 내몰았다. 현재 러시아 징집의 모습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당시 가망이 없는 곳의 주민들까지 자살로 내몰아 죽음을 강요하기도 했다. 어떻든 전쟁은 패망으로 가는 판국에 마지막 발악으로 나온 것이 일명 가미카제였다. 폭탄을 장착한 비행기를 그대로 적함에 부딪혀 죽음으로 일본에게 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면 이제 갓 비행기 조종만 배운, 앞으로 날아가는 비행 법만 배운 젊은이들을 한 번만 갈 수 있는, 편도행 기름만 넣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하늘길로 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공률이 거의 없었다. 그때 탁경현의 입대도 강요당했다. 입대를 거부하면 집안의 장사를 못하게 하고 일본에서 거의 생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견디지 못한 탁경현은 입대를 하게 된다. 1945년 5월 10일에 탁경현에게 출격 명령이 떨어진다. 오키나와에 가미카제로 죽음을 맞이하라고.
탁경현은 그날 저녁 육군 지정식당에서 술 한잔을 마셨다고 한다. 식당의 주인아주머니가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시며 탁경현은 아주머니에게 마지막 가는 길에 고향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영화 호타루에서 출격 전날 밤 식당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1945년 5월 11일 8시에 출격하여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일본의 오키나와 상공에서 격추되어 일제의 가미카제 대원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일본을 위해 죽은 탁경현의 죽음은 숭고라든가 어떤 이름으로 포장될 것이 아닌 그저 일본에 의한 개죽음이었다.
그를 위해 여배우인 후쿠다는 탁경현의 비석을 사천시에 세우려고 했다. 후쿠다는 어째서 탁경현의 비석을 세우게 되었을까. 그녀는 꿈에서 그 당시의 전투비행사가 나와서 일본인으로 일본 이름으로 죽는 것이 억울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 꿈속의 비행사가 계속 맴돌아서 시간을 들여 그의 행적을 찾기 시작했고 그가 바로 탁경현이라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천시에 비석을 세우려는데 사천시 시민과 광복회와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났다. 독립투사도 아니며 일제를 위해 죽은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위령비를 세울 수는 없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반대에 부딪혀 탁경현의 비석은 사천시에 세우지 못했다. 그때가 2008년 5월 10일인데 그날이 아마도 탁경현이 출격하기 하루 전날이어서 그날로 정했던 모양이었다.
사천시에서는 후쿠미에게 연락을 해서 사천시의 상황을 전하고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비석을 세우는 제막식은 하지 말았으면 했다. 하지만 후쿠미는 다음 날 일본의 언론인과 사람들을 데리고 제막식을 강행하려고 했고, 당연하게도 난리가 났고 제막식은 열리지 못했다. 후쿠미는 그날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섰다. 결국 비석은 탁경현의 고향인 사천시에 세워지지도 못하고 지금은 위에서 말한 용인 법륜사에 세워졌는데, 세워졌다기보다 비석이 넘어져 누워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후쿠다는 지금도 한국을 일본에 알리는 한국을 정말 많이 아는 일본 사람인데 탁경현의 비석에는 그를 추모하는 내용은 있지만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책임을 본질적으로 인정하는 문구가 없다. 후쿠다는 선의로 비석을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그녀의 이전 행적들을 보면 그렇다. 많은 한국의 도시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에 의심은 없으나 그날 사천시에 비석을 세우려 하다 저지를 당해 쫓겨나는 모습이 대동한 일본의 언론인들에는 후쿠다의 선의가 반일감정이 강한 한국에서 무참히 짓밟혔다고 보였을 것이다.
후쿠미의 사진을 검색하면 대부분 한국에서의 사진이 검색이 된다. 한국의 도시에서는 그녀를 초대해서 한국의 홍보를 알리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구로다 후쿠미의 재미있는 사실은 27세 때부터 우리나라 배구선수 강만수 선수를 짝사랑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 이야기가 일본의 배구 전문지 [월간 발리볼]에 자세히 소개가 될 정도였다. 강만수는 84년에 대표팀 은퇴를 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 대학에서 교육학과를 졸업한다. 젊은 강만수 선수 옆에 매미처럼 붙은 구로다 후쿠미의 사진도 유명하다. 아무튼 그런 후쿠미의 아주 젊고 아름다운 모습도 영화 탐포포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 고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하는데 너무 TMI라 패스.
그래서 결론은 이렇게 맛있게 해서 햄버거를 두 개나 먹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고칼로리, 누구나 한 번 당길 때, 그럴 때가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