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에 폴폴 끓인 닭 육수를 부어서 먹은 건 군대 있을 때부터였다. 군인일 때니까 뭘 먹어도 맛있고, 컵라면은 언제나 맛있었지만 닭 육수를 부어서 컵라면을 먹어보고는 이렇게 맛있다니! 하면서 먹었다. 선임이 되었을 때 컵라면 회식을 하면 내무반 아이들에게 전부 그렇게 컵라면을 끓여서 먹게 했던 적이 있었다. 인기가 좋아서 기분도 좋았지만 선임이 되었어도 귀찮은 일은 내가 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때 피엑스 병이기도 했는데 컵라면 물 받는 대형 찜통기 안에 닭 두 마리의 다리에 실을 묶어서 물에 퐁당 담가 놓으면 푹 삶기면서 육수가 우려 나는데 그 뒷정리는 이상하지만 짬밥이 짠, 경험이 있는 나만 할 수 있었다. 경험이 없고 짬이 안 찬 쫄다구들에게 뒷정리를 시켰다가는 찜통기가 고장이 나기도 하고. 푹 삶긴 닭을 건져 올릴 때도 요령이 있어야 했다. 요령 없이 그냥 건져 올리다가는 푹 삶긴 닭이 그대로 풍덩 빠지고 만다. 그럼 맙소사가 된다.


이렇게 찜통기에 닭을 우려내서 뜨거운 물을 끓이면 컵라면을 먹을 때 스프를 다 부을 필요도 없다. 한 시간 정도만 폴폴 끓여도 육수가 우려 나기 때문에 실을 살살 잡아당기면 푹 삶긴 닭이 ‘에?’ 하는 모습으로 딸려 올라온다. 닭은 살을 발라내어서 컵라면 안에 찢어서 넣는다. 아주 맛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게 인기를 타고 중대장들도 줄을 서서 닭 육수 컵라면을 해 달라고 했다.


군대 이야기고, 중대장 하니까 요즘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 ‘신병’의 중대장이 생각난다. 장삐쭈의 원작 만화를 극화한 것이다. 몇 해 전부터 3일에 두 편 정도의 영화를 보는 편인데 요 근래의 영화들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일 마지막에 본 영화가 ‘미니언즈 2‘였는데 이 영화는 정말 보면서 소리 내어서 웃었다. 그 전에는 프레데터가 1700년대 서부개척시대로 가서 인디언 소녀와 결투하는 이야기 ‘프레이’였는데 새삼 속 터지고 답답하고 갑갑한 영화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주원 주연의 ‘카터’도 액션은 멋지나 스토리가 너무. 아무튼 영화는 성공할 확률이 50 대 50인데 비해 드라마는 대부분 성공을 한다. 이번 신병 시즌 2까지 급물살을 타듯 보게 된다.


드라마 ‘신병’은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아니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어도 그냥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몰입도가 120프로다. 장삐쭈 원작 만화 속 캐릭터 싱크로율이 어쩜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을까 싶다. 특히 시즌 2에 등장한 성윤모는 만화 속 폐급 캐릭터를 그대로 실사화한 것 같았다. 민폐로 친다면 최고가 아닌가. 세상 비굴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천지 고문관인 척 지내는 성윤모의 만행이 드러나는 공중전화 장면은 진짜 보는 이들의 주먹을 꽈아아아악 쥐게 만들었다.


영원히 고문관으로 군 생활 편하게 할 것만 같았던 폐급 성윤모에게 중대장이 내지르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샤우팅의 시원함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다. 중대장의 이 멋진 샤우팅이 뭔가 억압되고 꽉 막혔던 모든 일반 병들의 고충을 한꺼번에 날려 주는 것 같았다. 드라마 ‘신병’을 보면서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나. 성윤모 이 새끼 밖에서 범죄 저지르고 군대로 도피했다가 결국 형사 입건된다. 그 폐급의 절정을 볼 수 있다. 성윤모 역을 한 배우부터 배우들이 정말 원작 속 인물인 것만 같아서, 우리나라에 정말 잘 알지 못하는 연기 천재들이 많구나, 하게 된다. 드라마 ‘신병’에는 정말 다양한, 아주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정말 최고다. 내가 군 생활할 때 중대장들은 같은 군인이 아니라 일반인에 속했다. 나는 구치소에서 군 생활을 했고, 국방부가 아닌 법무부 소속으로, 중대장들은 구치소에 출퇴근을 하는 일반 공무원들이다. 재미있다고 생각이 되는 건 그들도 군생활을 거쳤을 텐데 우리가 해 먹는 컵라면, 소시지, 음료에 타서 마시는 술, 같은 것들에 환장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중대장이나 소대장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40대나 젊은 소대장은 밤샘 근무할 때면 늘 우리와 함께 술을 마셨다.


군인들이 무식할 것 같아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다. 일단 하지 않으면 큰일 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졸병 때부터 늘 하다 보니 짬밥이 차면 그게 경험치가 되어서 뭔가를 해도 기발하다. 요컨대 제복을 수선해서 입는다든지, 군화를 교묘하게 리폼한다든지. 구치소니까 사방에 올라가는 영치품 중에 소시지가 많은데 친하게 지내는 재소자들에게 소시지를 얻어와서 물에 삶아서 먹어도 맛있지만 겨울에 칼집을 내어서 난로 위에서 빙글빙글 돌려서 먹는 맛이 좋다. 물론 컵라면에 넣어서 먹어도 맛있다.


찜통의 닭 육수는 금방 바닥이 드러난다. 맛있게 컵라면을 먹을 수 있지만 찜통을 깨끗하게 씻어야 하는 후처리는 힘이 들지만 내가 해야 했다. 그게 몹시 귀찮았다. 집에서 닭 한 마리를 마늘을 엄청 때려 넣고 끓이면 맛있는 육수가 나온다. 팔팔 끓여서 컵라면에 부어서 먹으면 맛있다. 닭은 죽죽 찢어서 같이 넣어서 먹는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도, 외국인도, 어른도 맛있게 먹는다. 맛있게 많이 먹으면 모다? 살은 찐다.




장삐쭈 원작, 드라마 신병에서 샤우팅으로 성윤모를 일갈하는 중대장 https://youtu.be/tm9L39fgS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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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8-1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맛있겠습니다. 저희 집은 닭볶음탕은 먹어도
닭곰탕은 안 좋아하는지라 먹을 기회가 없죠.
저는 좋아하는데 가족들이 안 좋아해서…ㅠ
군대 때 좋은 선임이셨나 봅니다.
한번이라도 같이 먹었던 사람들은 두고두고 교관님 말 할 것 같습니다.
신병이 재밌나요? 1편 앞에 조금 보다 말았는데…
지금은 뭐 우영우가 대세라. 나중에 함 챙겨봐야겠군요.
참, 오래 전에 이경규가 닭으로 만든 라면을 만들어 출시했는데
지금도 있나 모르겠어요. 스프요.
근데 역시 푹 우려낸 것만 같겠습니까?
혹시 부대 앞에서 장사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ㅋ 농담입니다.

교관 2022-08-12 11:31   좋아요 1 | URL
군대 이야기는 대체로 다 재미있는 거 같아요 ㅋㅋ 디피도 그렇고, 푸른거탑 시리즈도 그렇고, 드라마로 나오는 건 참 재미있는데 웃긴 건, 군대 이야기는 거의 부대에서 사고 치고, 잘못하고, 비리 같은 내용이 잔뜩 나오는데 또 군대에서 촬영을 하게 해 주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