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방구차를 봤다. 방구차가 아파트 단지를 빙빙 돌며 방귀를 붕붕 하얗게 피워댔다. 방구차는 금세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냈다. 방구차가 부우 우우웅하며 오래된 비행기 같은 소리를 내며 똥구멍으로 하이얀 연기를 뿜어내면 동네 아이들이 따라가며 아아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어제의 방구차 뒤에는 아이들의 모습은 소거되어 있었다.
소독차가 뿜어내는 소독약의 냄새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 소독차는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에 여름이 시작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소독차는 대기에도 방귀를 붕붕 뿜어댔지만 하수구 안에도 뿌려졌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독차가 지나가고 땅 밑의 하수구 구멍에서 연기가 퐁퐁 올라왔다. 그다음 하수구의 구멍으로 기괴한 크리처가 뚫고 올라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맡았던 소독약 냄새가 어제 오전에 맡은 소독약 냄새였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소독약 냄새는 그대로였다. 올바른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는 없다.
사실 소독차가 작년, 재작년 그리고 그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근래에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소독약을 뿌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가뭄과 폭우 때문이지 싶다. 윗 지방에서는 러브 버그 때문에 난리라는 기사를 봤다. 이 러브 버그는 해충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익한 벌레라고 하는데 개체수가 상상 이상이 되어 버리니 사람들이 겁을 먹게 되었다. 잠자리가 인간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잠자리 유충은 모기의 유충을 먹으며 자란다. 그런데 잠자리가 하늘에 수백 마리가 윙윙하며 떠 있으면 무섭다. 굉장한 공포다. 자연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풀과 나무밖에 없는 깊은 산속에 혼자 갇히게 되면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이다.
러브 버그도 개체수가 어마어마해지니까 너무 징그럽게 보인다. 러브 버그는 5, 6월부터 천천히 나타나는데, 이 벌레의 특징은 흙속에서 부화를 한다. 그래서 부화한 채로 흙속에 있다가 흙이 축축해지면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흙이 축축해지려면 비가 내려 땅을 적셔야 한다. 5월 중에 흙속에서 부화를 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비를 맞은 땅, 흙이 축축해지면 부화한 순서대로 서서히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올해는 계속 가뭄이 지속되니 러브 버그가 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러브 버그들이 계속 부화를 한 상태로 대기를 타고 있다가 7월에 폭우가 내리면서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와 버렸다. 이 러브 버그의 수컷은 일주일 정도 산다고 한다. 일주일 정도 삶을 사는데 사랑을 나눈 다음에 암컷과 떨어지면 다른 수컷에게 자신의 암컷이 뺏길까 봐 붙어서 안 떨어진다고 한다. 아니 벌레 주제에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나? 싶지만, 다른 어떤 벌레는 러브 버그보다 더 하다. 어떤 벌레는 암컷의 생식기에 수컷 자신의 물질을 쏘아서 생식기의 구멍을 막아버린다고 한다. 정말 자연은 까도 까도, 후벼 파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벌레들도 자신의 사랑을 다른 벌레에게 빼앗기기 싫어서 안간힘을 쓰며 일주일의 삶을 열심히도 살아간다. 방구차의 등장은 이런 가뭄과 폭우와 폭염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인간의 오류가 만들었다. 인간도 소독약으로 소독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염이 된다. 불과 어제까지 믿었던 같은 편이었는데 오늘 배신을 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사기를 치기도 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가족 내지는 부부관계일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배우 중에 케이트 보스워스라는 배우가 있다. 한때 장동건과도 영화도 찍고, 브랜든 루스의 슈퍼맨 리턴즈에서 루이스 역을 하기도 했다. 그녀가 주연한 영화 중에 어느 날 하늘에 비행기들이 날아다니며 소독약 같은 것을 뿌려 그걸 마신 지구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죽어 버리는 대재앙의 영화가 있다. 거기서 케이트 보스워스는 내내 고려대학교 점퍼인가, 코리아 점퍼를 입고 나온다. 영화는 엉망진창이지만 거기서처럼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소독약을 뿌리면 인간들도 소독이 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연은 늘 경이롭다. 하늘은 매일 다른 그림을 그려준다. 여어 이봐 인간 따위야 이게 진정 그림이라는 거야.
달과 비행기
달과 비행기의 크기가 비슷하게 보여서 한 컷. 저 비행기에서 보면 여기서 보는 달의 모습과 조금은 달리 보일까.
비가 올 거라는 소식이 내내 나왔지만 오늘, 지금까지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어제도 남부지방에 비가 어쩌고 하는 방송이 계속 나왔는데 여기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맑고 무덥고 가끔 흐리고 자주 짜증이 나고 조깅하기 좋은 날들의 연속이다.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시간이 바로 개늑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요즘은 매일 볼 수 있다. 하루 중에 가장 진중하고 슬프게 아름답고 고독한 시간이다. 매직 아워가 펼쳐지는 시간. 시간의 경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정중하게 꺼져가는 태양의 깃털처럼 신사적으로 내려앉는 어둠이 만나는 시간이다. 소박하고도 화려한, 그래서 슬프면서 아름다운 교향시. 이 시간만큼은 백건우 버전의 리베스트라움이 어울린다.
작은 그림자들이 일어나는 시간
사색하는 자들은 운명을 생각하는 시간
어둠을 향한 긴 호흡을 할 시간
아마추어 소설가들은 고독하게 홀로 되려고 준비하고
모두가 시인으로 향해 문을 여는 시간
낮 동안 잠들어있던 모텔은 이제부터 가장 근사한 일을 젊은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분주해지는 시간
드디어 낮과 밤이 주연과 조연을 맞바꾸는 마법의 시간이다. 이 초연함을 리스트는 연주했다. 우리는 그대로 백건우의 버전으로 그 연주를 흡수하면 된다. 자연주의적인, 자연에 귀 기울이면 당연하게도 자연은 듣는 이를 위해 슬프면서 아름답게 연주를 해준다. 복잡하고 자질구레한 설명은 생략한 채. 리스트는 영혼을 팔아 클라이맥스를 연주한다.
내가 너를 지켜 줄 거야
라며 자연이 노래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