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T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아니 하루키가 입었던 티셔츠 예찬론까지 읽어야 해? 했지만 막상 책을 펴 들고 보다 보면 그래, 그래 이거야 하루키 일상은 이거지요. 하게 된다.


특히 까마귀가 공격해 오는 이야기에서는 역시 큭큭하게 된다. 자신을 싫어하는 문예평론가가 까마귀로 태어나서 괴롭힌다느니, 또 퀸시 존스와 나란히 앉아있는데 퀸시 존스가 “나는 말이지 마츠다 세이코의 앨범도 프로듀서 했지”라면서 자랑을 늘어놓는데, 하루키는 속으로 그보다 더 자랑할 게 있을 텐데 흠, 하는 부분은 그래 역시 읽는 재미가 있어요. 하게 된다.


마츠다 세이코는 ‘푸른 산호초‘를 불러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었는데 현재 마츠다 세이코의 영상이 올라온 유튜브에서는 한국인들이 댓글 파티를 하고 있다. 이 노래는 아마 앞으로 11년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좋아서 주야장천 들을 것이다. 과즙미 터지는 얼굴과 시원시원한 긴 팔다리를 흔들며 부르는 푸른 산호초는 정말 최고. 예전에 하루키 그림을 그리면서 마츠다 세이코의 그림도 그려서 옆에 집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키는 마츠다 세이코처럼 프로듀서화 된 가수들은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마츠다 세이코는 퀸시 존스보다는 박진영이 존경해 마지않는 마법의 손 ‘데이빗 포스터’의 손을 거쳐 두 장의 앨범을 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암튼 마츠다 세이코의 헤어스타일은 한국을 비롯해서 온 아시아 지역의 여자 연예인들은 다 따라 했고 마츠다 세이코의 얼굴을 닮은 연예인을 발굴하는 게 큰 목표가 되었을 것이다.


마츠다 세이코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고 예명인데 여러 설이 있지만 그 당시 일본 바블 경제의 중심에 있던 마츠다 사와 세이코 회사의 이름을 합쳐서 마츠다 세이코가 되었다는 게 가장 믿음직하다.


마츠다 세이코는 승승장구하다가 남성편력으로 서서히 배경으로 물러난 가수에 속한다. 그럼에도 인기는 식지 않고 지금도 영화에도 나오고 노래도 부른다. 마츠다 세이코의 가장 안타까운 건 그녀처럼 되고 싶었던 그녀의 딸 칸다 사야카가 35살이라는 나이에 한 달 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배경에는 남자 친구가 너 같은 건 죽어, 죽으면 모두가 좋아하지 않겠어, 같은 이야기가 가장 유력한 배경으로 떠오른다. 엄청난 엄마의 벽을 넘지 못한 딸의 죽음이 안타깝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하루키도 아이가 태어났다면 아마 아버지의 그 엄청난 재력과 재능에 자기도 모른 채 눌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장편 소설에는 여자아이가 늘 등장한다. 유키, 메이, 후카에리, 스미레, 키키 등. 그 모든 캐릭터가 하루키의 딸이 소설 속에서 조금씩 커가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조금씩 하루키의 어떤 면을 닮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인별그램에 올린 내용이고 여기부터는 이곳에만 올리는 글이다. 당연하지만 하루키의 티셔츠 에세이를 보고 나면 어김없이 따라 하게 된다. 요즘에는, 그러니까 근 몇 년 동안에는 무지 티셔츠나 아디다스의 반팔 티셔츠를 입는다. 이유가 확실한데 아디다스는 비록 운동복이기는 하지만 디자인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기능성이라 여름에 확실한 존재를 뽐내는데, 그대로 입고 일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이제 한 번 달려볼까, 라며 그대로 조깅을 할 수 있어서 무지 티셔츠나 아디다스 티셔츠를 주로 입는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태어나서 단추가 달린 남방이나 카디건 같은 건 입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입지 않았다. 선물로 받아서 어쩔 수 없이 한 두 번 입어본 경우는 있지만 내가 나의 주머니를 열어 돈을 꺼내서 단추가 달린 옷을 사 본 적인 없다. 그러고 보면 구두도 신어 본 적이 없다. 아니 여봐요, 그럼 구두를 신고 가야 할 장소에는 어떡합니까!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는 검은 운동화를 신고 가면 된다. 그래서 검은 운동화 하나는 늘 저 구석이 있다. 정장을 입어야 할 때에도 안에 검은색 무지 티셔츠를 입는다. 넥타이를 맨 적이 없고 구두를 신어 본 적이 없다. 구두를 처음에 한 번 신었을 때 뭐야? 이런 걸 신고 다녀야 한다고? 그 뒤로 구두는 안 신었다. 구두를 신고 열심히 다니는 회사원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사진으로 찍어 놓고 올리지 않은 티셔츠도 몇 장 있다. 마돈나가 프린트되어 있는 티셔츠도 있고 하와이안에게 받은 비키니 여인의 프린트가 되어 있는 티셔츠도 있지만 올리지는 않았다. 티셔츠를 음식에 비유를 하자면 라면과 비슷하다. 라면 안에 뭘 집어넣어서 먹어도 맛있듯이 어떤 옷에도 티셔츠는 어울린다. 또 장소에 방해받지도 않는다. 잠을 잘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바닷가에서 맥주를 마실 때에도 다 어울린다.


티셔츠는 하루키의 말처럼 새것보다 입고 또 입어서 목 라운드가 늘어난 티셔츠가 좋다. 그게 더 멋진 스타일에 가까운 것 같다. 과하지 않게 목 라운드가 늘어난 티셔츠를 다른 옷과 매치해서 입고 나온 사람을 보면 꽤나 멋지게 보인다. 이 정도로 끄떡없으니까 너도 열심히 해봐,라고 티셔츠는 말한다. 빳빳한 새것의 냄새는 없지만 이미 여러 전투의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독보적인 향이 있다.


사람들은 티셔츠가  낡아서 해질 때까지 입지는 않는다. 옷을  입게 되는 경우는 사이즈가 작아졌거나 혹은 커졌거나(이런 경우는  없지만) 싫증이 났거나. 그런 경우일 뿐이다. 낡아서  해져서  입는 경우는 없는데  같은 경우 몇몇 티셔츠는 완전 낡아서  해져서  이상 입을  없는 지경이  것도 있다. 최초 도대체 티셔츠는 얼마나 입을  있을까. 그래서  10년을 조깅을 하면서 입고, 평소에도 입고. 땀을 흘리며 달리고 하다 보니 겨드랑이 부분부터 낡아서 해지기 시작했다. 거기부터 너덜하게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서 서서히 앞부분에도 구멍이 숭숭 나더니 색이  빠지고 완전히 낡아버린다. 티셔츠는 뭐랄까 새것이라는 느낌이 오래가지 않는 이상한 옷이지만 입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드는 옷이다. 뭔가 음식 찌꺼기가 묻는 것에도 다른 옷에 비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런 옷을 마음껏 입을  있으니 그렇지 못한 것보다 얼마나 괜찮은 삶인가. 이런 말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하면 , 웃기시는군, 같은 표정을 짓지만.

하루키처럼 프린트되어 있는 문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설명충이 되고 싶지만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이렇게 대충 보면 무한사랑이나 행복 같은 문구가 보이니까 이상한 말은 아닐 것이다. 이 티셔츠는 입으면 예쁘기는 한데 몸에 착 달라붙어서 맥주를 홀짝홀짝 마실 때는 피해야 한다. 이 티셔츠는 검은색처럼 보이지만 진한 남색이다.


이 티셔츠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힙스럽다. 가방을 메거나 외투를 입어버리면 뒷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한때는 뒷모습이 예쁜 티셔츠를 꽤나 찾아다녔던 것 같다. 심지어는 서울까지도 서슴없이 가서. 주로 가을용 티셔츠로 입고 그대로 반바지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열심히 달렸는데 아직도 프린트가 벗겨지거나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티셔츠에 초현실 그림이 박혀 있으면 또 혹하게 된다. 색상도 쥐색 같아서 아주 마음에 든다. 누군가 어? 이 그림 마음에 드네요, 라면서 다가와 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나지 않죠. 문득 생각이 난 거지만 나에게는 메탈리카, 본 조비, 너바나가 프린트되어 있는 티셔츠가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어느 날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티셔츠로 인생을 배우는 나.


이 티셔츠는 라이더에 어울리는 옷이다. 섹시라는 글자도 보이고 런던도 보이고 오토바이도 보이고 소매 끝에 자크로 달려있어서 입고 있으면 마치 슈트를 착용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티셔츠도 뒷모습에 더 멋진 프린트가 있다. 보이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 뒷모습에 왜 집착을 했을까. 싶다가도 뒷모습이 멋진 걸 안다는 걸 달력의 뒤편의 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혼자서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티셔츠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내 주위에 옷가게가 많고 사장님들과도 이야기를 꽤 하는 편인데 다 여자 옷이다. 그러고 보면 티셔츠도 남자보다 여자 티셔츠가 예쁜 건 더 많고 아 저 티셔츠는 입고 싶은데 하는 것도 있다. 나처럼 패션 테러분자도 옷 이야기를 하면 주절주절 할 말이 많은데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만의 스타일과 철학에 절로 고개가 끄덕거리게 된다. 여러분의 티셔츠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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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1-30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목이 늘어진 까만 티셔츠를 버렸더라구요.
한 10년 넘게 입었던 것 같은데 작년에 입으려고 찾았더니
없더라구요. 요즘은 버린 기억이 나질 않더군요.
없어 찾을 수 없게되야 비로소 내가 버렸나 보다해요.ㅠ
제가 살집이 있는 스탈이라 주로 진한 색깔의 셔츠를 좋아하죠.ㅎ

와, 근데 애인이 그런 말을 한다고 죽냐.ㅠ
그래서 말조심을 잘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별 뜻없이 하는 말도 어떤 사람한테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그 애인도 정말 죽길 바라서 했겠습니까요.

그림 독특하고 귀엽습니다.ㅎ
명절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교관 2022-01-31 12:03   좋아요 1 | URL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늘 가스라이팅을 당해 왔던 거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일본의 엘사 더빙을 하면서 겨우 물 위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이러쿵 저러쿵 가십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자신의 고통과 힘듦을 남자친구에게서 위로를 받으려 했는데 남자친구라는 놈이 늘 그렇게 가스라이팅을 해 온 거죠 ㅋㅋ 한 번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보통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아요.

스텔라님도 명절 행복하게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ㅎㅎ 저는 명절이나 평일이나 똑같아서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