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병실 생활을 할 때 내가 본 것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건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기억이 왜곡된 것인지, 병실생활로 인해 피곤한 탓인지 잘 설명할 수는 없다. 허나, 그때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집에서 오 분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대학병원이 있으면 편리하다. 여러모로 시간과 차비 같은 것이 절약이 된다. 덕분에 간병인을 따로 부리지 않고도 어머니가 낮에는 병간호를 하고 내가 일을 마치면 야간에 아버지를 돌봤다. 사실 야간에 병간호를 딱히 해야 하는 건 없다. 밤이 도래하면 가래소리가 들끓는 내과병동도 고요한 잠의 세계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상이 있으면 간호사를 호출하면 된다. 실지로 내가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건 아버지의 똥오줌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비닐장갑을 끼고 기저귀를 갈았지만 언젠가부터는 장갑이 귀찮아서 그냥 맨손으로 하게 되었다. 손에 똥이 묻으면 세면장에 가서 씻으면 그만이었다. 일반적으로 손에 똥이라는 게 묻으면 더럽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고, 반복이 되면 무뎌져서 그저 씻으면 그만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병실은 6인실이었다. 인원이 더 많은 병실이 있었지만 6인실에 입실했다. 대학병원에 아버지가 입원을 하고 좋은 점이라면 겨울에도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샤워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시간을 들여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에서 샤워를 하고 나면 어떤 불행한 생활을 하더라도 조금은 괜찮아진다. 샤워실도 크고 예열도 필요 없이 바로 뜨거운 물이 나와서 집에서 씻지 않고 병원에서 샤워를 매일 할 수 있었다. 대중 목욕탕에 가지 않는 나로서는 집에서 겨울에 샤워를 할 때에는 보일러가 예열을 해야 하니 바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서 늘 별로였다. 게다가 아버지가 병실생활을 하고 나서부턴 집에서 샤워를 할 시간도 없었다. 집에 오면 잠들기 바빴다.
아버지가 잠이 들고 병실의 숨소리도 잦아들면 나는 밤 11시가 넘어 샤워실에서 샤워를 했다. 그 시간 이후로는 샤워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떤 날은 자정이 넘어서 샤워를 하기도 했고, 새벽 두 시에 샤워를 하기도 했다. 그 큰 샤워실에 혼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면 힘든 것도, 괴로운 것도 샤워를 하는 동안에는 잊을 수 있었다. 이 혹독한 세상에서 벗어나는 느낌,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물은 내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주었다. 그래서 매일 늦은 밤에는 샤워를 했다.
샤워실은 세면장과 붙어 있었다. 환자와 가족들은 보통 20시까지 세면장과 샤워를 하느라 분주하다. 또 어머니와 교대를 하고 병실을 나설 때가 오전 7시나 8시쯤인데 그때에도 북적인다. 그러니까 세면장과 샤워실에는 거의 환자와 가족들로 붐빈다. 거기에는 대형 냉장고가 있어서 가족들이 집에서 들고 온 밑반찬들이 그 속에 가득 들어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 그런 공간이 밤이 도래하면 누구도 없다는 게 참 신기했다. 마치 도심지 한복판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밤의 도심지는 인파로 북적이다 새벽이 되면 황폐해지는 모습처럼 말이다.
6인실의 병실에 동안 병실에는 환자들이 속속 교체되었다. 환자 가족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환자가 점점 악화될수록 가족들의 얼굴도 굳어가거나 환자가 쾌유되어서 퇴원을 할 때는 가족들의 얼굴도 밝아졌다. 가족들은 환자가 조금씩 몸이 나아갈수록 서로 환자의 아픔에 대해서 공유했다. 병실생활을 오래 한 가족들은 신입 간호사보다 더 잘 안다. 수치나 환자를 드는 방법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수간호사 급이다. 환자가족들은 어떤 식으로 아프고 심각해지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생활이 일 년이 넘어가니 나는 지쳐갔다. 매일 밤 간이침대에 몸을 겨우 욱여넣어서 잠이 들었다가 아버지의 신음 소리나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면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오전에 어머니와 교대를 하고 집에 가면 그대로 뻗었다. 그리고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일하러 갔다가 저녁에 병원에 와서 밤이 되면 샤워를 하며 피로를 조금이나마 잊으려고 했다.
그래서일까, 하루 밤에 샤워를 두 번씩 한 적도 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상식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게 있다. 왜 하루 밤 사이에 병원에서 샤워를 두 번이나 하냐고 물어도 딱히 언어로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하루 밤 사이에 두 번이나 샤워를 하는 걸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잠이든, 늦은 밤에 샤워를 했기에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고요한 밤에 샤워실에 들어가 손잡이만 돌리면 뜨거운 물이 과감하게 콸콸 나온다. 틀자마자 나오는 뜨거운 물이 머리를 타고 다리 밑으로 흘러내리는 기분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행복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매일 매시간 속에서 오직 샤워만이 유일하게 느끼는 해방감이었다. 나는 씻는 건 담배연기만큼이나 싫어하는데 샤워는 좋아했다.
아버지도 낮동안 병마와 싸우느라 피곤했던지 일단 잠이 들고 나면 아픈 고통도 잠에 잠식되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동안 잠시 세상사를 잊을 수 있으니까 샤워를 하는 시간도 조금씩 늘어났다. 당시에는 샤워를 하는 게 병간호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힘든 것들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이 순간이 곧 지나가리라 빌었지만 참으로 끝이 보이지 않았었다.
샤워를 하면서 양치질도 두 번씩 했다. 나는 어쩌면 아버지의 병간호가 힘들어서 샤워를 하는 동안 큰 이벤트가 일어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면 그 생각이라는 게 어디까지가 정확한지 모호하게 된다.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정신에서 힘이라는 것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샤워를 하는 동안 간호사들이 나를 찾고 난리가 났다. 아버지의 보호자인 내가 자리에 없어서 잠이 든 아버지가 폐에 찬 가래를 뱉지 못해서 일이 난 것이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체크를 하고 있다가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간호사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내가 자리에 없어서 아버지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다.
새벽에 샤워를 하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 않아도 된다가 아니라 않을 수 있다. 내가 하는 생각이라는 것을 미지의 힘이 다가와 그 생각을 뽑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 샤워를 하는 동안에는. 생각이라는 것을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안 할 수 있다. 샤워를 하는 동안 걱정도, 고민도 조금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샤워를 하는 동안 아버지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어쩌면 샤워가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생각에 도달했다.
아버지는 치료실로 옮겨져 폐에 찬 가래를 기계로 빼냈다. 아버지는 다시 병실로 옮겨졌다. 아버지의 모습은 참으로 초라했다. 어린 시절의 나와 동생을 한 손으로 번쩍번쩍 들던 아버지는 더 이상 없어졌다. 나는 그 뒤로 새벽 샤워를 자제했다. 아직 사람들이 샤워실과 세면장을 이용할 시간에 나도 씻었다. 샤워는 하지 않았다.
간혹 친구들이 병문안을 오면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니 샤워나 하고 가라고 했다. 사실 병문안을 와도 병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음료수나 먹을 걸 사 와도 아버지는 못 드시고 나도 먹을 생각이 없고, 그러다 보면 먹는 건 전부 병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다. 굳이 뭔가를 사들고 와야 한다면 기저귀가 가장 필요하니 그걸 사 오라고 했다. 그게 가장 필요한 물품이었다. 드라마에서는 과일 바구니 또는 꽃다발을 들고 병문안을 가지만 쓰레기만 많이 나오고 별로였다. 그래서 친구들이 일을 마치고 밤에 병문안을 오면 샤워나 하고 가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면 처음에는 뭐야? 샤워라니?라고 하던 녀석들도 나의 손에 이끌려 샤워장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난 다음에는 가끔 병원에 와서 샤워를 실컷 하고 집에 가곤 했다. 집에 가서 겉옷을 벗고 그저 따뜻한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가 푹 잠이 들면 된다.
밤새 병원에 있는 나에게 연락을 하고 와서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샤워실에 제한은 없었다. 새벽의 어느 시간이고 간에 들어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면 된다. 자기 몸을 닦을 수건만 들고 오면 된다. 나도 모두가 잠든 새벽에 샤워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그 일이 있은 후에는 야간에 샤워를 하는 걸 참았다. 친구들도 가끔 병원에 들러 샤워를 하는 것은- 일을 마치고 곤죽이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면 그대로 뻗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매일 뜨거운 물을 틀어서 샤워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병원에 오면 큰 샤워장에서 콸콸 나오는 뜨거운 물에 비누칠을 해서 샤워를 하면 된다. 집에서 씻는 거보다 훨씬 빠르고 수월하다. 게다가 집에서처럼 샤워를 한 다음 바닥이나 벽면에 튄 비눗물을 닦아내지 않아도 된다.
꺼져가는 병원 복도의 어둠을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복도 끝이 어둠으로 물들면 그 속에 갇혀 몸이 조금씩 어둠에 먹히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은 살아있어서 몸을 움직일 줄 안다. 그리고 아무도 보는 이가 없으면 조금씩 다가와 나를 머리부터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 기분이 기이하지만 아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기분과 흡사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이 데일 정도보다 조금 덜 뜨거운 물, 그래도 아주 뜨거워 살갗이 벌겋게 익어버릴 정도의 뜨거운 물에 몸이 잠식당하는 그 묘한 기분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한 번 적어야지 생각했다. 샤워를 하면서 이 큰 공간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샤워라면 매일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복도가 어두워지고 아버지가 잠이 들고 병실이 조용해지면 나는 샤워실에 가서 샤워를 했지만 아버지의 그 일 이후 나는 샤워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12월 초였다. 밖이었으면 일을 끝내고 친구들과 연탄길(이라고 하는 단골 고깃집. 고기를 연탄에 구워 먹는다)에 들러 수다를 떨며 한 잔 할 시기였다. 불과 1년 전에는 그렇게 즐겁게 연말을 보냈는데, 같은 생각에 젖어들었다.
친구 녀석이 연락이 왔다. 샤워를 좀 하러 가도 되냐고. 나는 내 병원도 아닌데 마음대로 와서 샤워를 하라고 했다. 그 녀석이 사는 집은 병원이 있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반대편으로 끝까지 가서 내리는 정류장이 있는 곳이다. 아주 동떨어진 곳이었다. 게다가 그 녀석은 집에서 부모님이 하던 청과물 장사를 이어받아서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이 병원에 온다는 건 일부러 오거나 여기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오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그 녀석은 장사가 생각만큼 되지 않아 그 자리에 식당을 차리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평생 그 일을 해 오신 부모님과 의견이 대립했다. 고민이 많아 보였다. 자주 그 얘길 했는데 그 고민을 말하러 오는 김에 샤워나 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어두워진 병실의 간이침대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잠이 들고 침실의 다른 환자들 역시 잠이 들었다. 병실의 환자 가족들 역시 피곤에 지쳐 속속 잠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깊은 잠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편안한 척해도 불안과 두려움, 고민이 쌓여 잠의 질까지 앗아간다는 걸 나는 안다. 나도 친구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꿈을 꾸지는 않은 것 같다.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기에 고개가 꺾여 목이 아파서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이상하다, 왜 녀석이 안 오지. 그렇게 생각을 하며 폰을 보니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내가 잠들어 있어서 샤워만 하고 돌아가겠다는 문자였다. 10분 전에 들어온 문자였다. 나는 일어나서 샤워장으로 갔다. 아버지의 6인실이 샤워장에서 가장 가까운 병실이었다. 누군가 샤워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샤워실 문 밖에서 조용히 친구를 불렀다. 친구는 샤워를 하면서 대답을 했다.
복도 벤치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친구는 샤워를 마치고 머리에서 김을 폴폴 풍기며 나왔다. 시원해 보였다. 겨울에 느끼는 시원함은 샤워만 한 게 없다. 우리 둘은 나란히 앉아 얘기를 나눴다. 늦은 밤, 이른 새벽, 대학병원 복도라는 묘한 공간감 때문인지 평소에 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속에는 낙관적이지 못한 이야기도 많았다. 나는 친구의 힘든 것들에 대해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결국 내가 처한 입장만을 열거하게 되었다.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내일이 이 지옥 같은 생활의 마지막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말을 했다. 친구는 묵직한 모습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친구는 대뜸 그랬다. 가치가 있나? 호전된다는 보장이 없이 생명연장이 가능해졌을 때 일 년 정도 지나면 휠체어를 타고 누군가 밀어야만 이동이 가능하고 누군가 씻겨줘야 하는데, 무엇보다 본인이, 당사자가 주위에 짐이 된다는 고통을 끊임없이 가지는데 가치가 있나 하는 거야. 나는 그 말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가족은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아버지를 살리는데 가치라든가 생명연장이라든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시스템에서 부품이 하나 나가면 곧바로 또 다른 부품으로 교체되듯 지금 당장 어딘가 허물어지면 그걸 메워야 했다. 레지던트는 나날이 나를 불러 이런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 관 삽입부터 해서 가격과 시간에 대해서 타협을 요구했다. 나는 친구가 하는 물음에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세 시가 넘었다. 친구는 일어나서 가야겠다며 나에게 잘 있으라고 했다.
내일은 다 잘 되겠지. 라며 친구는 돌아갔다. 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봤다. 친구의 뒷모습을 보는 건 새삼 처음인 것 같았다. 뒷모습이라는 건 보여주지 않으려 하거나 잘 보지 않게 된다. 거울을 봐도 거울에 비친 나의 정면을 보려고 하지 뒷모습을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친구에게 왜 이 먼 곳까지 샤워를 하러 왔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내일이라도 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날 밤은 거의 잠들지 못했다. 간이침대로 와서 눈을 붙였지만 생각이 끊이지 않고 이어 붙어서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았지만 눈을 뜬 느낌. 잠이 들었지만 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 어머니와 교대할 시간이었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조금 일찍 왔다.
집으로 가서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와서 이불 위에 그대로 뻗어 잠들어 버렸다. 두 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갔다. 전기면도기로 대충 수염만 깎고 더러운 얼굴에 그대로 로션만 바르고 집을 나섰다. 오후가 되어서 친구에게 어제 잘 들어갔냐고 문자를 보냈다. 친구는 바쁜지 답장이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문자가 왔다. 문자는 황당했다. 친구는 어제 병원에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문자로 병원이 있는 이곳에 무슨 일이 있어서 왔다가 샤워만 하고 갔냐니까 친구는 이쪽으로 올 일이 없다고 했고, 무슨 샤워를 하러 병원까지 가느냐고 했다. 주말에 병원에 갈 테니까 아버지 병간호나 잘하라고 했다.
나는 밤에 도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한 것일까. 나의 착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선명한 기억이다. 꿈이거나 허상이라고 하기에는 감촉과 느낌이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동안 정말 내가 친구와 이야기를 했는지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의 대변에서 장기가 딸려 나온다고 했다. 곧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수속 절차를 밟고 장례식장을 잡고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하고, 누군가 죽으면 그 뒤에 따르는 서류가 많다. 서류는 기다렸다는 듯이 차곡차곡 앞에 나타난다. 그걸 정리하고 수순을 밟는데 시간이 걸린다.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오면 인사를 하고 부의금을 계산하고. 내내 혹독하게 춥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은 몹시 날이 포근했다.
후에 생각해보면 내가 친구를 만나 그 이야기를 한 것이 화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힘듦 때문에 그만 아버지에게 이벤트가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그 말을 친구에게 하지 말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아버지가 병이 호전되어서 퇴원을 한다고 해도 다시 원래의 제대로 된 생활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죽는 것과 살아있는 것은 다르다. 살고 있되 죽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안다. 얼마나 사는 게 힘들면 그런 말을 할까. 하지만 고통이라는 건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각이다. 죽으면 아프다던가, 슬프다던가 미칠 것 같은 두려움조차 느낄 수 없다. 고통을 매일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느끼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내가 대화를 했다고 착각하는 그 친구는 지독하게 어두운 어둠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데리고 가기 전에 나에게 먼저 와서 나의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한 마음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염탐을 하고 관찰해서 빌미를 주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라는 건 어떤 식으로든 모두에게 다가오지만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 수는 없다. 아버지의 죽음은 적어도 나에게 어떤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죽어보지 않은 이상 알 수는 없다. 샤워실에서 만난 것은 친구가 아닌 유령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