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 24에서 책을 몇 권 주문할 때 채널예스도 받아서 펼쳐 보았다. 박준 시인의 인기가 좋아서 표지부터 해서 스타트를 끊었다. 제일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박준 시인의 인터뷰를 옮겼다. 박준 시인의 첫 시집 그걸 읽고 온 동네방네 읽어 보라고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박준 시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시집 제목이 생각이 안 난다. 당신의 이름으로 밥을 지어먹었다인가? 암튼 이름을 먹었다. 아휴 알았다니까요, 읽어 볼게요. 라며 당시에 독서를 좋아하는, 취미로 가진 이들에게 들은 말이었다.

박준 시인의 시는 술술 읽힌다. 나는 술술 읽히는 시는 별로라고 생각했다. 편견이지만. 한강의 시는 술술 읽히지 않아서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을 해야 했다. 하지만 박준 시인의 시는 술술 읽히는데 사색케 하고 사고하게 했다. 그 당시에 배캠에도 나왔었다. 배철수 형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에는 창비인가 문지에서 편집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기억이란 이래서 기억인 거지.

채널 예스에는 소설가 정용준의 짧은 소설도 있다. 첫 문장을 읽고 나는 그만 세신사가 불국사, 백담사 같은 사찰로 읽어 버렸다. 여러분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소설 ‘돌멩이’는 세신사로 일하는 신 씨의 목욕탕에 온 몸에 멍이 들고 눈 안은 실핏줄이 터진 한 소년이 들어온다. 그리고 멍하게 앉아만 있는 그 소년의 몸을 무료로 밀어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주 짧은 소설인데 아주 긴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느낌이다. 소설이 참 좋다. 짧게 쓴 소설의 앞뒤의 이야기가 머리에 마구 떠오른다.

채널예스를 한 장 한 장 읽다 보니, 아무튼 채널 24, 예스 24의 목표는 책을 판매해야 한다. 하루키의 ‘무라카미 티셔츠’를 읽어보면 그 속 어디쯤에 책을 읽어 주세요, 그래야 작가들도 먹고 산다는 글이 있다. 채널 24도 책 판매가 큰 목적이니까 이 안에 이번 달에 나온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도 나왔다. 일기 형식이고 두 번째 산문집이다. 최승자 시집도 몇 권 있다. 역시 읽으면 어렵다. 그래서 좋다. 최승자 시인의 시에 얼마나 빠져서 뇌에 고통을 주었던가. 생각해 보니 한창 시를 적었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문예지에서 하는 시 공모전에서 신인상을 탔다. 그런데 나는 거부했다. 그 당시에는 이 정도로 적은 시에 상을 준다니? 주최하는 곳이 이상한 거 아니야? 같은 생각이 가득했다. 지금 생각하니 왜 그랬나 싶지만, 만약 그때 상을 받아서 어영부영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면 그 후에 나는 그 타이틀에 걸맞은 시를 열심히 적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시시해지는 시는 시라기보다 문구? 정도다. 시라는 건 시를 적는 시인의 고통이 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까. 박준 시인도 저 인터뷰를 읽어 보면 산문에 비해 시는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고통스럽게 적는다고 했다.


아직까지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개근상도 못 타본 내가 상을 놓친 것은 조금 아쉽다. 예전에 강변가요제인가? 대학가요제인가? 거기서 대상을 타고 그날 저녁에 기쁨에 만취하여 트로피를 잃어버린 녀석들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시는 왜 그런지 하찮은 것,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아서 좋다. 그래서 시는 대중교통 같다. 자가용이 아무리 많아져도 대중교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시 시 또한 사라지지 않고 작고 힘없는 사람들 곁에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일기도 소개가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잘 모르니까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이 사람은 괴짜에, 천재에, 바보에, 운이 너무 좋거나 물욕이 없고 안타까운 사람이다. 집안에 아주 부자였다. 엄청난 부자였는데 예술가들을 후원을 많이 했다. 비트겐슈타인이 8남매인가 그랬는데 어릴 때부터 집으로 음악가들이 와서 저녁 연주를 해주곤 했다. 그 음악가들 중에는 말러도 있고 브람스도 와서 막 연주를 해줬다. 집에 피아노가 7대나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만드는 걸 좋아해서 후에 공학을 전공하니, 아마도 비트겐슈타인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의 피아노였을 것이다. 클림트는 비트겐슈타인의 셋째 누나도 그려준다. 또 셋째 형인가? 2차 대전 중에 왼팔을 잃었는데 라벨이 그를 위해 한쪽 팔로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곡을 작곡해준다. 대단하지.


비트겐슈타인이 어린 시절에 학교에 가는데 뭐랄까 말투가 이상해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초딩 때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있을 텐데 비트겐슈타인이 좌측에 있고 우측에 있는 꼬꼬마가 히틀러다. 후에 독재자가 되었을 때 우리 학교에 이상한 말투의 유대인 녀석이 있었지,라고 했단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커가면서 죽음에 다가가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 같은 것도 혼란했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재산 문제로 늘 마찰이 있던 첫째형이 동성애자였는데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모습에 비트겐슈타인은 크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둘째형과 셋째 형도 그만 극단적 선택을 하여 세상을 떠난다. 동성애자인 비트겐슈타인도 늘 죽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영국으로 가서 대학교를 다닌다. 캠브리지대학인가, 거기를 다닌다. (제가 비트겐슈타인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글을 적으면 되는데 너무 귀찮습니다. 예전에 주워들은 것들을 그저 나불나불 거리는 것이니 어? 그게 아닌데 하는 부분은 제대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성인이 되면서 계속 죽음의 유혹에서 괴로워한다.


그러다 보니 철학을 너무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승인 러셀을 찾아간다. 하지만 러셀은 귀찮아서 늘 도망 다닌다. 하지만 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녀석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할 수 없이 비트겐슈타인에게 그럼 방학 동안 글을 하나 써와라 그래서 그걸 보고 네가 철학을 할지 그냥 공대생으로 남을지 결정을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방학 동안에 글을 하나 써온다. 러셀이 비트겐슈타인이 써 온글의 첫 부분을 읽자마자 너는 철학을 해라, 그렇게 해서 비트겐슈타인이 지금 이렇게나 추앙받는 철학가의 길로 접어든다. 러셀에게 써 온 그 글이 인터넷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가장 유명한 이야기,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은 지금 이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논재를 가지고 토론을 했다. 러셀이 비트겐슈타인에게 지금 이방에는 코뿔소가 없다고 했는데 비트겐슈타인이 그 말을 부정하며 증거를 보여달라며 두 사람의 논쟁이 시작된다. 결론은 이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하하. 러셀은 지독스럽게 이런 논제를 가지고 찾아오는 비트겐슈타인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다.


그러다가 1차 대전이 터지는데 비트겐슈타인은 원래 면제자인데 손을 들고 나는 입대하겠다고 우겨서 입대를 한다. 전쟁이야 말로 죽음을 바로 맞닥트릴 수 있기 때문에. 더군다나 포병의 관찰병인가 그 보직을 자원해서 간다. 거기가 가장 적에게 포탄을 맞을 확률이 높은 자리다. 왜냐하면 적의 포대가 어디에 있나 관찰을 하는 곳이니까 적에게 노출이 되면 바로 포탄을 맞는 곳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그곳을 자원한다. 그곳에서 총알이 빗발치는데 가운데에서도 매일 일기를 썼다고 한다. 그 일기가 바로 저 책이다.


전장에서 총알과 포탄이 터져 막사가 터지는 가운데에서도 글을 미친 듯이 쓴 작가가 또 한 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셀린저다. 둘 다 정신이 나간 거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 머릿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래서 일반병으로 입대를 했는데 장교로 제대를 하기도 했고, 적에게 잡혀 포로가 되기도 하는데 집이 워낙에 부자라 돈으로 빠져나오기도 한다. 전후에 아버지가 사놓은 미국 채권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완전 부자에 부자에 부자 중에 부자가 된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에게 돈은 무용한 것이었다. 다 나눠주었다. 남아있는 형제들과 예술가들에게 다 준다. 그런데 가난한 자들에게는 나눠주지 않았다. 가난한 자들이 갑자기 돈이 불어나면 이상한 생각을 한다고 했단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자기의 별장 하나만 남겨 놓는데, 그게 말이 별장이지 산 언덕에 아주 작은 오두막 같은 집이다. 이것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그 별장을 볼 수 있다. 거기서 생활을 한다. 그저 흙 파먹어가며.


그러다가 2차 대전이 터지고 이번에는 간호병인가?로 자원입대를 한다. 아아 이제 죽을 수 있구나. 비트겐슈타인은 늘 이런 생각에 시달렸다. 다시 제대를 하고 별장에서 생활하다가 별장 생활을 청산하고 한 초등학교의 교사로 가는데 거기서 애를 두들겨 패서 기절을 시키기도 하고. 친누나의 집을 자신이 지어주는데 그게 뭐랄까 당시의 건축물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금 현대적인 이 시대의 건축물과 흡사한 집을 짓는다. 역시 인터넷을 찾아보면 현대식으로 지은 비트겐슈타인 식 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캠브리지로 와서 연구를 하라는 러셀의 연락을 받는다. 그래서 훌훌 털고 그곳으로 가는데 마중을 누가 나오냐 하면 바로 케인즈가 마중을 나온다. 케인즈가 그 당시에 했던 말이 드디어 ‘신‘이 오는구나,라고 했다. 그러다가 50년대, 60대에 전립선암이라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비트겐슈타인은 몹시 기뻐했다. 철학적인 언어 말고 가장 유명한 말, 지난 나의 생활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했나. 그렇게 세상의 별이 되고 만다.

 

비록 이렇게 초간단 뇌피셜로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주절주절 했지만 그의 철학은 철학가들은 물론이고 음악가, 미술가, 작가,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이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이다. 그리고 이에 해당하는 그의 글을 읽으면 철학적인 사유가 우리 일반화에 들어옴으로 해서 우리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나도 한때는 비트겐슈타인과 사르트르를 읽으며 와 이건 철학인데 너무 재미있는 걸, 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두가 사랑하기 때문에 관심 있으면 한 번 제대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나올 전자책 표지의 디자인을 두 가지 버전으로 해서 보내주었다. 아주 마음에 든다. 기린의 언어는 주인공 라미라는 중학생이 어릴 때부터 다니던 동물원의 기린이 무력해 보이기에 중학생이 되어서 탈출을 시키기 위해 기린의 언어를 습득하는 아주 짧은 소설이다.


후에 라미가 성인이 되고 기린의 언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숨기고 살아가는데 느닷없이 기린의 언어로 라미에게 말을 걸어오는 어쩐 존재가 생기면서 다시 이야기가 진행되는 그 후의 이야기를 적으려고 초반까지 좀 적어놨는데 질질 끌고 있어서 혼자서 낭패군, 하며 있다.


대부분 이른 오전에 바닷가 맥도널드에 일찍 가서 자리를 잡고 맥모닝 따위를 먹으며 적었을 때가 제일 잘 적혔는데 코로나가 볼기짝을 후려치듯 몰려든 다음에는 그걸 할 수 없게 되어서 인지 수월하게 앞으로 쾅쾅 나가지 않는다.

 


나의 소설을 최초에 세상에 내보이게 만들어준 건 한 계간지였다. 그 계간지의 편집장님이 기묘하게도 나의 소설을 좋아해 주었다. 그래서 무려 2년이나 연재를 했다. 그 편집장님은 한솜 출판사 대표이시기도 하고 장편, 단편 소설은 물론이고 출판업에 뛰어들어 열심히 하신 분이다. 나의 소설을 좋아해 주시고 칭창만 해줬던 것이 기억난다. 그랬던 계간지도 코로나의 직격탄인지 어쨌는지 사라졌다. 거의 30년은 된 것 같은데 코로나 이후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계간지가 있던 기업은 한솜미디어로 굳건하지만 계간지는 이제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코로나로 사라진 출판업, 문예지, 가게, 직업들이 얼마나 많을까. 소설가 황정은은 코로나 시기의 일기를 꾸준하게 적어서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가 소멸하고 또 생성했을 것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이번 채널 예스의 테마가 일기다. 작가들이 코로나에 접어들어 기록한 자신의 일기를 테마로 하고 있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가 뭘까. 그건 자기 혼자 쓰고 읽으면 일기고, 세상에 내보이면 에세이다.라고 생각한다. 에세이의 좋은 점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 보아라, 같은 문장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기니까. 밤에 쓴 일기라면 좀 더 감성적이고 감정에 치우쳐 후에 읽으면 오글거릴 수 있지만 솔직한 자신의 속마음이고, 낮에 쓴 일기라면 밤에 피는 꽃만큼은 아니라서 감정이 조금 소거되어 담백할 수 있다. 나는 태어나서 아직 자기 계발서를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도 안 읽을 것 같다. 매일 쓸 일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단 쓰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서 똥 누고 밥 먹는 것도 특별해진다.


그나저나 너는 잘 있냐, 그곳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내내 얇은 하늘하늘 에이프릴 만으로도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있겠지. 대답도 없고 말도 못 하고 소식 없으면 잘 있는 거지. 아직 로비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게 마음이 안 든다. 크리스마스트리라는 건 12월 26일이 되면 싹 다 치워버려야 좋은 거 같은데. 아직까지 머라이어 캐리가 올아원포~를 부르고 있다니까. 아무튼 너도 그렇고. 너무 좋아하진 말자. 너무 좋아하면 너무 좋아해서 미워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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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1-19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채널 예스 이거 볼만하죠?
예전에 강남 예스24가 있을 땐 얼마만에 한 번씩 가서
뭉터기로 가져 온 적도 있는데 그곳이 없어지고 나니
잘 안 보게 되네요.
과월호는 2천원인가 하던데. 꽤 싼 건데 비매품으로 파는 걸
돈 주고 산다고 생각하면 좀 아깝더라구요.
당월호는 300원인가 하죠? 그건 또 적립금으론 결제가 안 나는 걸로
아는데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암튼 이래저래 저와는 인연이 없는 잡지가 되어버렸는데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요.^^

교관 2022-01-20 11:49   좋아요 1 | URL
체널예스에 대한 숨은 이야기가 많으시네요, 듣고 있으면 재미있습니다 ㅎㅎ. 이번 호를 관통하는 주제가 좋아서 그런지 다 읽어 버린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