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로 극장에도 마음껏 갈 수 없는 요즘, 현재 나오는 영화에도 지칠 때는 예전의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다시 봐도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 그중에 한 편을 봤다. 리플리다.
영화에서 주드 로의 미모는 가히 천만 불 짜리다. 영화에는 가장 예쁠 때의 케이트 블란쳇과 귀넷 펠트로우가 나오지만 주드 로가 다 이겨버릴 정도다.
영화는 리플리(맷 데이먼)가 디키(주드로)를 죽이면서 점점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치닫는다. 리플리는 야망을 위해 점점 거짓을 확대시키고 또 확대시킨다. 상대방 앞에서 디키인 척 행동하는 리플리와 혼자 있을 때 괴로워하는 리플리의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또 몰입하고 만다.
피아노 조율사로 호텔 보이로 미래가 캄캄한 리플리는 이 지옥 같은 뉴욕을 떠나고 싶다. 별 볼일 없는 리플리가 선박 재벌의 제안을 받으며 달콤한 유혹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을 죽였지만 거짓을 늘어놓을수록 아름다운 여인과 자유와 쾌락과 바닥이 보이지 않는 돈이 달콤한 인생을 살게끔 한다.
이 영화에서 이미 고인이 된 디키의 친구로 나오는 프레디 역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의 연기가 압권이다. 리플리를 경멸하듯 쳐다보는 눈빛, 멸시하는 말투, 가난한 자와 선을 듯는 행동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프레디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리플리에게 조각상의 머리로 프레디 머리는 작살이 나고 만다.
1999년 맷 데이먼의 리플리는 60년대 알랭 드롱의 ‘태양은 가득히’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거기서 알랭 드롱의 역 이름이 ‘톰 리플레이’다. 이 리플리 이야기는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실제 리플리 증후군에 걸려 마치 자신이 실제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해버려 자신이 아닌 삶을 산 한국의 리플리도 있다. 이 사람의 일화는 너무 유명하고 충격적이라 뉴스에도 대대적으로 났었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인물이다. 이 사람이 리플리 때문에 사기죄로 복역을 한다. 여러 기사와 매체 중에 썬킴의 버전이다.
1956년 충남에서 태어났다. 이 사람은 중학교 중퇴까지가 이 사람의 학력 전부다. 초등학교 졸업이 끝이다. 재미있는 건 이 사람의 부모도 중학교를 중퇴했는지 몰랐다. 계속 고등학교를 다닌 줄 알았다. 중학교를 중퇴한 다음에, 어머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다른 곳으로 갔던 것이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학력고사도 본다. 그리고 서울대 법대를 합격한다. 물론 다 거짓이다. 이 사람의 학력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초등학교 졸업이 공식적으로 끝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의 사기죄 이후 이 사람은 너무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이 사람의 이력이 세상에 알려졌다.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었다.
가짜로 들어간 서울대 입학식에 떡 허니 부모님까지 초대한다. 부모님과 함께 서울대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사진까지 찍는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까지 한다. 법대 수업은 다 들어간다. 거기에 학생회장까지 한다. 서울법대 학생회장을 실제로 하게 된다. 대단하다.
어째서 하게 되었냐면, 그 당시만 하더라도 운동권의 시대였기 때문에 학생회 서류 행정 업무 같은 걸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하겠습니다! 라며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완전 오케이인 것이다. 그래, 너 이름이 뭐야? 저는 김찬경이라고 합니다. 법대생인가? 네, 법대생입니다.
그렇다. 희대의 사기꾼. 한국의 리플리. 미래저축 회장 김찬경이 바로 그 인물이다.
법대 학생회장과 동아리 활동을 버젓이 하다가 군대를 간다. 군대를 갔는데 하필 자기 밑의 졸따구, 부사수가 실제 서울대 법대생이었다. 그러냐? 나도 서울대 법대야. 그러면서 군생활을 하면서 서울대 법대에 관한 모든 정보를 후임에게 다 듣는다. 이런 수업은 들어야 하고, 저런 수업을 들어야 하고, 이런 활동을 해야 하고. 오케이 알았다며, 제대한 다음에 더 적극적으로 서울대 법대 활동을 한다.
그런 다음에 과외까지 한다. 초등학생의 과외를 하는데,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는 서울대 법대생에 학생회장이 와서 과외를 해주니까 아이고, 아이고 하게 되었다. 근데 집이 으리으리하니까, 저기 어머니 이 집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아서 사업을 하면 아주 좋은 게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받은 담보를 챙긴다.
당시 서울대 법대생이라고 하면 마담뚜들의 입질이 심할 때였다. 당시의 모 여대를 다니던 여학생과 –아버지는 당시 병원장이고- 맞선을 보게 된다. 머리와 재력이 만난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주례를 또 웃기게도 서울대 법대 교수가 봐준다. 이 교수의 재미있는 사연은 나중에 리플리가 들통이 나고 나서 다시는 주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을 했는데 이 김찬경이라는 사람이 들통이 난 게 와이프 때문이었다. 당시에 아내는 대학교를 나왔는데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니 이게 뭔가 이상하고 어색한 것이다.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으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나서인지 부부 사이의 많은 말을 하는 와중에 어색한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내가 서울대 학적부에 연락을 해본다. 서울대 법대에 감찬경이라는 학생이 등록이 되어 있냐고? 그런 사람 없는데요. 뭐야 그럼 나는 누구랑 결혼을 한 거지? 들통이 난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신기한 건 이혼을 하지 않는다.
이왕 결혼까지 한 거, 머리는 좋아 보이고(이 정도까지 왔으니 머리가 얼마나 비상해야 할까), 장인어른이 비밀을 알았지만 사위로 그냥 받아들인다. 지금과 다르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7. 80년대에는 학력위조 정도는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사기를 친 것이 아니기에 처벌이 없었다. 그런데 김찬경은 모두에게 비밀이 들통이 났는데도 서울대 법대 동문회에도 버젓이 나갔다. 정말 대단하다.
다른 동문이 봤을 때 이상한 것이다. 김찬경은 아마 그때부터 자신은 리플리가 되지 않았을까. 자신은 자신에게 서울대 법대, 서울대 법대, 나는 서울대 법대, 법대생이라고 각인을 하다 보니 실제로 자신이 그만 서울대 법대생으로 둔갑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비밀이 만 천하에 탄로가 났음에도 동문회에 나갈 수 있을까.
동창생들은 김찬경을 이상하게 봤지만 동문회 측에서는 쟤 장인어른이 돈이 많다고 하니까 이런 동문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하게 되면서 인정을 해버린다. 이러다가 점점 사기를 치며 돈을 불려 나가다가 결정적으로 본사가 제주도에 있는 저축은행이라는 은행을 인수하게 된다. 여기서도 재미있는 사실은 본인은 서울대 법대생을 사칭했지만 자신 밑의 직원들은 전부 서울대 법대생으로 뽑았다.
결과적으로 회사 돈 200억을 횡령해서 중국으로 튀려는데 항구에서 잡혀서 복역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이 올해인가 출소하게 된다. 이 사건이 우리나라 리플리의 초고봉 중에 하나다. 그런데 더한 최고봉이 있다. 김찬경보다 더 한 리플리의 이야기가 있다. 재미있다면 다음 기회에.
https://youtu.be/zcGLEdijAm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