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이야기를 너무 하지 않았다. 어떻든 올해는 3일 빼고는 매일 조금씩 달렸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를 달리는데 그 시간 내내 달리는 건 아니고 3, 40분은 근력 운동을 하거나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달리면 다리가 힘들어서 걷기도 한다. 며칠 전에 하루 정말 추운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진짜 밖으로 나가기 싫다. 달리기까지 정말 고뇌에 휩싸인다. 달리지 말아야 할 이유 서른여섯 가지가 나를 붙잡는다. 하지만 달리야 하는 이유 한 가지 때문에 일단 나가서 달리면 10분 지나면 등에서 땀이 난다. 겨울에 아무리 날이 추워도 달리고 10분 정도가 지나면 등이 후끈거린다. 바람이 삼하게 불지 않으면 어떻든 땀이 난다. 그게 신기하다면 신기하고 그 신기함을 느끼기 위해서 매일 달리고 있다.


나는 묘하게도 스포츠 관람도 시큰둥하다. 사람들이 목매다는 축구도, 배구도, 농구도, 인기 있는 구기종목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또 마라톤 중계는 아주 재미있게 본다. 너는 그저 달릴 뿐인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 도대체 헉헉 거리며 달리는 걸 보여줄 뿐인데 어떻게 멍하게 볼 수 있지? 같은 말을 왕왕 듣는데, 마라톤 중계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주 재미있다. 그래, 뭐가 재밌냐?라고 물으면 일단 달리는 사람들이 개성이 가지각색이다. 밑의 글에서도 한 번 적었지만 그저 마라톤 복장으로 달리는 사람들만 대회에 나오는 게 아니다.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복장을 하거나 분장을 하고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줄넘기를 하며 42. 195 킬로미터를 달린다. 대단하다. 중계는 선수들 위주로 중계를 해주지만 한 번씩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중계를 하는데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상당하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오는 밤은 하늘이 새까맣게 보이지 않는다. 청록색 밤이거나 아주 짙은 회색일 경우가 있다. 날이 몹시 차가웁고 바람이 전혀 없는 날이면 세상이 멎은 것 같다. 조깅을 하는 코스에 사람들도 없어서 반영이 된 세계가 마치 멀티버스 세계 같아서 곧 나올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혼돈이 일어날 것만 같다.

이 고요

이 적요

이 평온

이 적막과

이 차가움

이토록 세상이 멎은 듯한 느낌은 이곳에 나와서 달리지 않으면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달리다가 사진을 담기 위해 잠시 멈추고 가뿐 숨을 쉰다. 굉장히 고요한 밤이다. 암청색 하늘과 미동 없는 강과 냉철하기만 한 겨울의 날카로움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멈춰 놓았다. 이렇게 눅진한 겨울의 냄새를 올해도 맡게 된다. 강 건너 보이는 세상은 평온하고 포근하게만 보이지만 막상 저곳으로 건너가면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평온하게만 보일 것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게 우리의 인생이다.

가을까지 복적이던 강변에 사람들이 빠지고 나니 강이 어쩐지 슬퍼 보인다. 눈에 강의 슬픔이 어렴풋이 보인다. 강변에 나오면 노인이 산책을 한다. 그들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서두르는 법이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노인들의 시간은 그야말로 물 흐르듯 지나가야 하지만 그들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걷고 하루에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인가 늘 생각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노인의 뒷모습은 나에게, 끝이라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잔혹한 거야,라고 한다. 나는 돌을 하나 찾아서 강으로 던졌다. 강은 돌을 맞고도 아프다는 내색도 없고 표시도 나지 않는다. 조깅을 할 때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겨울에는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한다. 120기가인지 160기가인지, 오래도 됐는데 아직 고장 없이 잘 굴러간다. 노래가 2천 곡인가 들어있다. 좀 이상하지만 빠르고 비트가 강한 노래가 나오면 빨리 달리게 되고 느려 터진 노래가 나오면 천천히 달리게 된다. 하드 디스크가 들어있는 아이팟 클래식이 한때는 너무 좋아서 아이팟 클래식에 대한 소설을 한 번 쓰기도 했다.

당신은 지금부터 아이팟 클래식이 갖고 싶다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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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2-25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려야 하는 그 한 가지 이유가 뭔지는 안 쓰셨네요.
다리지 말아야할 36가지 이유도요.
독자는 친절한 작가를 좋아하지요.ㅎㅎ

교관 2021-12-27 11:46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저 저 앞에서 달리기 이야기를 여러 번 하면서 했기에 적지 않았어요 ㅋㅋ 진짜 궁금하시다면 일단 1년만 달려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