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보면 소설을 쓰는 일은 테이블을 만드는 일과 같다고 했다. 아마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 테이블이라는 게 내가 사용하기에 가장 편해야 남들도 그 테이블이 편한 것이다. 내가 쓴 소설의 제1의 독자가 본인인 만큼 자기가 쓴 소설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글을 타인이 좋아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밀리의 서재에서 나의 단편 소설들을 출간하자는 연락을 여름에 받고 지금까지 작업을 해서 1월에는 출간이 된다. 몇 개월 동안 다듬어서 나오게 되었다. 뭐 문제가 있지만 한 번 해봅시다,라고 하루키는 처음 출판사에서 듣고,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니 문제가 많은 소설을 적었다며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나도 크게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의 소설은 현실과 동떨어져도 아주 떨어져 있다. 손가락에서 빛이 나고, 과거로 가거나 사람이 개구리로 변하고 그레즐리 곰과 대화를 하고 동굴에서 사는 거대한 괄태충과 싸우기도 한다. 그저 상상력 하나로 된 이야기들이다. 현실의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의 힘듦을 위로하는 소설은 없다. 전부 초현실이다. 바다가 끓어올라 물고기가 떼로 죽고, 철탑 인간이 걸어 다니기도 한다.

 

이런 현실성이 떨어지는 소설을 해보자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의아했다. 하지만 아마도 나의 상상력을 좋게 봐준 것 같다. 출간된다고 하니 당장 두 가지의 일이 떠오른다. 하나는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4, 5, 6학년 때 동화 부였는데 아마 동화부 활동을 하는 내가 미웠던지, 싫었던지 담임이 존경하는 인물을 써내라고 했을 때 톰 소여의 모험의 톰 소여를 써냈다고 소리를 지르고 손바닥을 때리고 교실 뒤에서 벌을 쓰게 했다.

 

또 하나는 2016년도쯤인가, 80년대 등단해서 지역 시인으로 활동하고 병원장으로 있는 그분을 알게 되어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쓴 소설들을 가지고 와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몇 편을 프린트해갔다. 병원장은 거기에 놓고 일주일 뒤에 오라고 했다. 그래서 일주일 뒤에 찾아갔더니 나의 소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해주었다.

 

초등 담임과 병원장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나의 글은 현실성이 너무 없다는 것, 감동이 없다는 것, 글에서 카프카의 냄새가 너무 난다는 것, 장난감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 너무 상상 속 이야기를 소설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장은 나에게 감동적인 글을 써보라 하며 감동적인 글을 적는 법을 알려 주었다. 나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는 그 병원장을 찾아가지 않았다.

 

현실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잘 적는 사람이 적는 게 맞다. 나처럼 현실성이 떨어지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잘 적지 못하는 사람까지 거기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 존경하는 사람이 꼭 세종대왕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이어도 존경할만하면 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쓴 소설을 영화로 말하자면 ‘멀홀랜드 드라이브’ 같은 것이다. 실재와 실체가 구분도 없고 초현실과 현실의 경계도 없다. 커피를 마시다가 빨간 조끼를 입은 토끼를 따라갈 뿐이다.

 

나의 문제라면 이 재미없는 소설을 적으면서 내가 너무 재미있어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미운 사람은 소설에 등장시켜 파리로 만들어 파리채로 탁 죽일 수도 있고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 일행과 만날 수도 있다. 하루키는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 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 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이 모든 걸 문학이라 한다면 요즘 시대에 문학을 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미친 짓인 것이다. 게다가 나처럼 비현실적이고 초현실 소설을 적는다는 건. 하지만 이런 시대에 문학을 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지금도 구석진 곳에서 등을 구부리고 외로움과 싸워가며 열심히 소설을 적고 있는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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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4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12-15 11:48   좋아요 0 | URL
그 담임샘과 병원장에게 뭔가 복수를 한 것 같아서 기분 좋네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stella.K 2021-12-14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됐네요. 축하합니다!^^

교관 2021-12-15 11:48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