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며칠 전부터 명절을 지나고 오늘까지의 조깅 일상을 보면 정말 극과 극을 달리는 날씨 속에서 달렸던 것 같다. 여름에는 추울 날이 없으니 이렇게 하루 사이에 극과 극을 오고 가는 날씨를 경험하는 건 지금이 딱이다. 2, 3월에 우리는 왕왕 날씨의 변화에 허덕인다. 명절이 오기 전의 며칠 동안은 추위에서 벗어난 날들의 연속이었다. 바람이 기분 좋은, 이제 곧 봄이 올 것 같아서 두꺼운 옷들은 이제 넣어야 하나,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영상의 날이었다. 조깅을 하는 동안 옷이 축축해져서 짜면 물이 나올 것만큼 땀을 흘렀는데 명절이 지나고 엊그제 같은 날은 도대체 이게 영하 몇 도야? 할 정도로 추워서 땀은커녕 몸을 데우기 위해서 그저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보통 저녁 6시 정도부터 한 시간 반 정도를 조깅을 하니까 조깅을 하기 위해 나오면 해가 달에게 하루를 반납하려고 자리를 내주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때는 온 세상이 오렌지 빛으로 물든다. 해는 떠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붉은 오메가를 끌고 저 산 너머로 잠을 자기 위해 준비를 한다. 해가 밝음을 끌고 가버리고 밤이 오면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는 대신 인공조명이 밤을 환하게 밝힌다. 낮과 밤의 대조는 인간으로 하여금 균형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바닥을 보니 나뭇잎이 떨어져 있기에 사진을 찍어서 이렇게 표현을 해봤다. 조금만 신경 쓰면 자연 곳곳에 작품들이 널려 있다. 매일 보는 해와 달도 사진을 찍어 놓으면 모두가 달라 보인다. 같은 곳에서 비슷한 시간에 사진으로 담는데 늘 다르다. 그건 어떻게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넌 뭐가 매일 신기하냐,라고 해도 신기한 건 신기한 것이다.



명절 기간에는 너무나 따뜻했다. 완연한 봄 날이었다. 곰이 기지개를 켜고 나와서 잠을 자느라 홀쭉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나올법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아주 가볍게 입고 조깅을 했다. 명절 기간에는 늘 달리는 조깅코스를 달리지 않고 집 근처의 바닷가를 달린다. 이렇게 가벼운 옷차림으로 실컷 달린 후 바닷가의 로컬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투고해서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며 마시는 맛이 있다.



바닷가에 나오면 일단 바다가 있고. 매일 같은 바다지만 그 바다를 보러 나온 사람들이 있다. 명절이라지만 작년 이전의 해와 다르게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게 바람직한 현상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서 북적이지만 이번 명절에는 사람들이 좀 줄었다. 누군가 말을 타고 와서 풀어놨다. 말에 대해서 19금 이야기가 있는데, 오래전에 경주에 갔을 때 풀어놓은 말이 너무 멋져 여자 친구와 나는 그곳으로 갔다. 다가가니 우리 쪽으로 말이 다가왔다. 멋있더라. 갈색 빛이 기름을 발라 놓은 듯 빛나면서 뒷다리의 근육 하며, 정말 끝내주는 말이었다. 우리 쪽으로 왔기에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니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고개를 빼더니 뒤로 물러났다. 아무튼 내가 건드리는 게 싫다는 것이다. 말 주제에. 그런데 그때 여자 친구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아주 좋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지금부터는 19금이다. 그런데 여자 친구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데 말, 이 자식이 갑자기 발기를 하는 것이다. 자세하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말의 그건 인간의 그것이 발기하는 것과는 다르게 발기가 되는데(아무튼 엄청남) 발기를 하고 나니 남사 스러 울 정도로 너무 드러나는 것이다. 뒷다리가 세 개인 줄 알았다. 그때 여자 친구는 그것을 아주 재미있어했다. 도대체 선 한 눈을 해가지고 말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해변을 달려서 벗어나면 등대가 나오는 곳이 있다. 사진을 찍은 뒤쪽으로는 온통 소나무밭으로 소나무가 많은 곳에서는 기분 좋은 향이 있다. 이곳에 서서 저 먼 곳을 보면 바다도 어쩐지 작은 장난감 세계에 속해 있는 기분이 든다. 여기로 올라오려면 아주 긴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계단을 쉬지 않고 뛰어오르면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오는데 그 고통을 한 번 느끼고 나면 그 이후에 오는 편안함이 두 배가 된다. 그 간극의 주기를 타는 것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작정하고 오르막길을 뛰어오르면 통증 속 흥분이 있다.



구름을 쳐다보고 있으면 늘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아 오키프 남편이자 바람둥이, 근대 사진가의 아버지라 불린 스티글리츠의 구름 연작 시리즈가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의미를 두는 건 아니다. 구름이란 그저 어딘가에서 늘 어딘가로 흐르고, 얼굴이 같은 사람이 드문 것처럼 구름도 매일 보면 매일 다르다. 하지만 구름 자체는 비슷하다. 하얗고 솜사탕 같고, 젓가락이 있으면 휘휘 저어서 다 흩트려보고 싶은, 그런 구름이 하늘에는 늘 떠 있다. 사람도 얼굴은 다 다르지만 눈 두 개, 코 하나, 콧구멍 두 개, 입 하나, 이런 것들은 전부 비슷하다. 하늘을 한 번 쳐다보다는 것 역시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일상은 사소한 행동과 큰 의미 없는 것들로 연결되어 있다.



바닷가를 달려서 내려오면 한 집의 마당에 볕을 쬐고 있는 백구가 있다. 묶여 있어야 하겠지만 묶여 있어서 그런지 조금 처량해 보인다. 백구야, 하고 부르면 고개를 발딱 드는 것이 아니라, 감고 있던 눈만 살짝 떠서 눈동자를 위로 치켜뜬다. 또 다른 한 마리는 식곤증이 폭력적으로 내려왔는지 쿨쿨 잠들어 아무리 불러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너 같은 놈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나는 그냥 잘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얄미운 놈들.



명절 연휴 후반에 늘 달리는 조깅 코스를 지나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어 오다가 족발집을 봤다. 족발집이 뭐 어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족발집은 거의 다 싹 사라졌다. 요즘은 사람들이 주로 족발을 배달하거나 포장만 해서 파는 곳에서 투고해서 집으로 들고 와서 먹는다. 족발 집에 앉아서 족발을 먹었던 기억도 별로 없지만 족발 집에 앉아서 소주 한 잔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집이었다. 이곳 바닷가에는 대규모 제조업 회사가 있어서 오래전에는 퇴근 한 아버님들이 삼삼오오 족발에 모여 앉아서 소주잔에 족발을 먹으며 웃음꽃을 활짝 피웠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족발들이 하나둘씩 없어졌다. 

  

가서 요래 보니 요즘이라 그런지 손님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주인은 분주하게 족발을 준비하고 테이블에 있는 손님들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정감 있었다. 어쩌다가 족발 집은 전부 사라진 것일까. 족발 집 뒤로 오래된 목욕탕의 굴뚝이 어둠 속에 솟아 있었다. 목욕을 하고 가볍고 뜨거워진 몸으로 족발 집에 앉아서 족발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달려서 오다가 땀을 너무 흘려서 편의점에서 커피를 한잔 마셨다. 이 도로는 조깅 코스의 마지막 코스로 대략 1. 5킬로미터의 도로인데 오르막길이다. 그래서 4, 50분 정도 달린 후에 이 오르막에 접어드는데 쉬지 않고 오르막길을 달리게 되면 다리에 고통이 오면서 저기까지, 저기까지, 하며 멈추지 않고 숨이 턱 막히는 헉헉 거림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은 중간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셨다. 이런 완제품은 처음 마셔보는데 오전에 마시는 로컬카페의 커피보다 더 비싸다는 것에 놀랐다. 추위가 오기 전 날인데 땀을 정말 많이 흘렸다. 그래서인지 편의점 앞에 앉아서 마시는 음료는 정말 맛있었다. 이렇게 앉아서 보면 구름처럼 차도의 차들은 저쪽에서 저쪽으로 싱싱 달리고 사람들은 여기를 지나 어딘가로 늘 걸어간다. 그 사이에 나도 껴 있다. 나도 어딘가에서 달리기 시작하여 여기를 지나 저기로 간다. 늘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돈다. 김중식의 시 ‘이탈한 자가 문득’이 생각난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나는 이 시를 무척 좋아한다. 나는 언제쯤 궤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게 될까.



그곳을 지나 오래전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를 지났다. 이 동네를 자주 지나치는데 이 동네에 들어오면 어린이 때의 내가 보인다. 저 멀리 새로운 세계가 보이고 여기 서 있는 오래된 세계에서 기억을 더듬게 된다. 하지만 이제 이 동네도 개발에 의해 곧 허물어진다. 재개발 비용을 전부 받았다고 한다. 개발을 하려고 컨테이너 사무소가 들어서 있더라. 이제 모두 이 곳을 떠나게 되고 불도저가 밀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갑자기 추워졌다. 지난번의 추위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건 명절 기간 내내 따뜻하다가 영하로 훅 떨어지니까 체감상 더 추운 것 같다. 엊그제는 레깅스를 두 장이나 입었는데 다리가 시렸다. 보통은 아무리 추워도 10분이 넘어가면 등에서 땀이 나지만 전혀 아니었다. 얼굴에서 밖으로 드러난 저 작은 부분으로 칼로 찌르는 것 같은 바람이 타고 들어왔다. 어제도 엊그제 못지않게 추웠지만 바람이 없었다. 바람이 없으면 달리다 보면 등에서 땀이 난다. 땀을 흘리고 난 후 뜨거운 물로 온 몸을 씻어 내는 기분 역시 좋다.



샤워를 할 때는 꼼꼼하게 한다. 거품을 가득 내어서 발가락 사이도, 배꼽 안에도, 아무튼 뚫려있는 구멍은 전부 깨끗하게 씻어낸다. 그리고 바짝 말린 후 우르오스나 로션 따위를 잘 발라서 촉촉하게 해 준다. 그리고 뜨거운 추어탕에 땡초를 넣어서 후루룩 한 그릇 한다. 몸으로 받은 추위가 물러가고 난 후에 먹는 추어탕은 꿀맛이다. 산초가루가 없어서 아쉽다. 아, 요즘은 학생들하고 마라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는데 꼭 먹어보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아마도 마라탕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나는 있으면 먹고 없다고 해서 찾아서 먹을 만큼 빠져 있는 음식도 없는데 마라탕을 먹어보면 찾아서 먹게 될까. 어떻든 추어탕 두 그릇을 후루룩 먹고 나면 잠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온다. 하나, 둘, 셋 하기 전에 그대로 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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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2-2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겨울인데 보라색 나뭇잎이 참 신기하네요^^

교관 2021-02-21 13:01   좋아요 0 | URL
요즘은 봄에도 코스모스 피고 막 그러잖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