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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공동묘지 - 상 ㅣ 밀리언셀러 클럽 33
스티븐 킹 지음, 황유선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월
평점 :
난 평소 공포 영화나 소설을 즐겨 보는 타입이 아니다. 막상 영화를 보게 되더라도 공포가 절정에 이르는 장면에서는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리는 편이다. 겁이 많다는 말이다. 그래 놓고 옆에서 영화 보는 사람에게 “지나갔어? 어떻게 됐어?” 하고 영화를 보니 공포 영화의 진수는 다 놓치고 보는 셈이다.
또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보면 내가 놀란 것 보다 옆에서 소리지르는 여자 관객들 때문에 산통 깨진 적이 많았다. 별 무섭지 않은 장면에도 소리를 지르는 통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포 영화는 즐기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링’이란 영화는 좀 달랐다.
일본인 특유의 엽기적이면서 섬세하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고 특히 우물에서 그 긴 머리 사다코가 기어나올 땐 정말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무서웠다. 그런데 그 장면 외에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바로 영화 끝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문제의 테이프를 본 아들을 구하기 위해 친정 엄마에게 그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주러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이다. 테이프의 저주를 풀 수 있는 길은 계속해서 그 테이프를 다른 사람이 보게끔 해야 했던 것이다. 마치 내가 받으면 딴 사람에게 역시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서 부쳐야 하는 행운의 편지처럼.
미혼이라 아이도 없던 때 본 그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내린 결정이 솔직히 그 당시에는 별로 납득이 가질 않았다. 아직 자식이 없던 나로서는 부모와 자식이 같은 핏줄로서 동일 선상에서 같은 무게를 가진 존재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 친엄마를 죽이고자 하는 그 여주인공이 너무나 표독스럽고 무섭게 느껴졌는데…
세월이 흘러 다섯 살짜리 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그 여주인공의 결정에 공감이 된다고 말하면 너무 잔인한 감정일까? 하지만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어찌할 것인가. 늙으신 부모님의 죽음은 아프게 받아들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픔이 엷어져서 추억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드는데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이 보드라운 아이가 죽을 것이란 생각은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올려지지가 않는다.
스티븐 킹의 ‘애완 동물 공동묘지’는 바로 이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가장 무서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다른 무엇보다 바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아닐까, 그것도 피를 나눈 가족의 죽음이라면. 이 소설 속에서는 여러 형태로 가족의 죽음과 이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다루고 있다.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흉측한 투병 기간을 거치면서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서서히 미치게 만드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삼십 년을 오롯이 한 이불을 덮고 잠들던 노부인의 평화로운 죽음도 있었고 남겨진 가족이 하나도 없이 유일한 희망이던 아들이 전쟁에서 주검으로 돌아오는 그런 허망한 죽음도 있고 가장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나이인 세 살에 집 앞 도로에서 무시무시하게 큰 트럭에 치여 죽는 끔찍한 죽음도 나온다.
죽음의 형태와 대상과 가족 관계를 모두 달리하면서 스티븐 킹은 가족의 죽음을 겪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그리움을 매우 사실적이고 진지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묻는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리고 만일 이 죽음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사실 스티븐 킹의 공포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 생활에 스며드는 공포를 정말 실감나게 그린다는 점일 것이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상과 때로는 너무 지치고 피곤하게 해서 잠깐 어디로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가족들과 별볼일 없는 지루한 나날들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들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읽는 독자도 어느새 몰입하게 된다. 자신마저 그 상황에서 예외가 될 수 없으리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번을 울고 소스라치게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끝내는 파국에 이르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주인공 의사가 너무 인간적이고 그의 고통이 너무 절실하게 느껴지면서 나 또한 그 같은 결정을 내렸으리란 생각에 울었고.
죽게 되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게 그려져서 마치 내 아이가 죽은 듯 울면서 읽었던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 너무나 인간적이고 어쩔 수 밖에 없었던 그 결정으로 인한 파국이 너무 비극적이고 끔찍해서 울었던 소설이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고 악몽을 꾼적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공포 소설 이상을 넘어선 뭔가를 이 소설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진지하고 철학적이면서 구체적으로 킹이 던지는 물음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 상처가 곱게 자리잡은 추억이 될지, 평생을 못 잊을 고통이 될지,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상처가 독이 될지는 받아들이는 우리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