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신경숙의 글을 피했다.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그녀가 지겨워졌다고 해야 하나. 작가와 글을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 법인데 약간 고개 숙인 그녀의 묵묵한 표정과 소설 속의 여주인공들이 겹쳐 보이고. 더불어 순정만화와 순소설을 아슬아슬하게 교차시키는 것 같은 섬세하고 슬픈 글들이 목까지 차올라 지겨워졌다고 해야 하나. 마음을 잔잔히 흔들어 놓는 그녀의 글이 언제부터인가 버거워서 고개를 돌려버린 지 꽤 된 것 같다. 그러다 내가 이 '리진'을 사게 된 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갔다가 읽은 한 줄 문구 때문이었다. '어떤 눈에는 운명이 있다.' 그 글귀를 보자 난 그만 꼼짝달싹 못하고 사로잡혀 버렸다. 이 한 줄을 읽으면서 난 내 마음을 흔들었거나 타인의 운명을 흔들어 놓았던 몇 개의 눈동자를 생각했고. 해일처럼 밀려오는 추억에 항복하면서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비록 내가 무지하게 읽기 싫어하는 명성황후에 대한 이야기가 주 소재를 이루고 있었다 하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난 감탄하고 행복하고 기뻤다. 근 육 개월을 영어 책만 주로 보면서 말도 되지 않은 나의 한국어로 옮기다 보니 이 아름다운 언어를 내가 얼마나 고문시키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다른 언어의 틀과 사고에 얽매이지 않은, 작가만의 고유한 상상력과 그의 무기인 화려한 언어로 쓰인 리진은 주인공 리진의 춤사위처럼 너울너울 곱고 화려하면서 매끄럽고 슬펐다. 내가 성숙한 것일지, 아니면 작가가 성숙한 것일지 그건 모르겠으나 리진은 내가 그동안 읽은 신경숙의 작품 중 가장 성숙한 작품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왜 역사 소설인가 라는 약간은 의아한 마음을 품고 첫 장을 넘겼지만. 결국은 신경숙의 주특기인 사랑 이야기였다. 사랑을 꿈꾸는 자와 가지는 자와 포기하는 자와 밀려난 자 간에 벌어지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관계들이 신경숙 특유의 섬세한 언어로 이 소설에 묘사되어 있다. 역사적인 상상력과 언제 읽어도 절절할 수 밖에 없고, 언제 읽어도 현대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랑에 대한 묘사가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된 고혹적인 태피스트리를 하나 봤다고 해야 하나... 자신이 가진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영혼의 자유와 사랑을 찾으려 한 리진의 결말을 어제 늦은 오후에 보고 난 마음이 너무 먹먹해졌다. 그래서 가족을 억지로 이끌고 뚝섬 공원을 찾아 밤 불빛을 보며 맥주를 두 캔이나 넘기고도 마음 속에선 리진과 강연와 콜랭과 홍종우의 사랑이 넘실거리며 심장을 찔러와 아팠다. 얼마나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지. 안구건조증만 걸린 게 아니라 심장도 건조증에 걸린 게 아닐까 걱정되던 차에. 아직은 내 감수성도 살아 있구나 확인하게 해 준 소설. 리진. 배꽃같이 슬프고 아름다운 리진을 만나 황홀한 주말,,, 아직도 그 마법에서 풀리지 못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