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의 사랑이란 색다른 소재를 다룬 영화가 왔다.
'널 지켜주겠어!'란 남성들의 로망(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여성들의 로망)을 표방한 이 영화는
좀비를 뱀파이어로 바꿔도 무색함이 없을 정도로 트와일라릿 시리즈와도 많이 흡사하다.
미남 뱀파이어가 단지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흡혈을 중지하고 뾰샤시한 여주인공을 지켜주면서 사랑하는 것처럼 웜바디스 역시 사람을 공격해서 잡아먹는 좀비가 첫 눈에 반한 소녀를 지켜주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언뜻 보면 매우 식상한 설정일 수도 있다. 이건 뭐 고양이가 쥐를 지켜주겠다는 설정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 영화의 묘미는 바로 좀비라는 대상이 흐릿하고 촛점 없는 동공에 으으으으 하는 신음 소리만 흘리고 다니면서 구부정하게 걸어다니는 산송장이 아니라 사실 좀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풍자한 것이라고 보면 조금 더 색다른 관전 포인트가 된다. 꿈도 꾸지 않고, 자신이 누군지 기억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느낌이나 감정없이 허기만을 채우며 무작정 배회하고 다니는 좀비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사실 별다른 꿈이 없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고민 없이, 느낌이나 감정을 가진다는 건 사치거나 귀찮은 일일거라 암암리에 생각하면서 애써 묻어버리고, 인생에 대한 목표도 야망도 없는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이 현대인의 얼굴 아닐까. 그런 좀비들이 공항에 몰려 산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인공인 R 역시 그런 의문을 갖는다. '갈 곳도 없으면서 이들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대체 이들은 뭘 기다리고 있는 걸까?
한편 좀비가 돼서도 빛나는 미모는 감춰지지 않는 좀비 R은 그런 좀비들 가운데서도 좀 특이하다.
자신의 비행기에 여러 가지 물건(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대표하는 물건들)들을 수집해서 쟁여놓고, 주변의 좀비들을 보며 생각이란 걸 해보고, 그나마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좀비와 대화 비슷한 걸 시도해보기도 하는 R. 그러다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는 인간 소녀를 보며
첫 눈에 반하고 만다. 이때 흐르는 음악이 참으로 기차다.
꿈도, 기억도, 감정도 없는 좀비는 자신이 잡아먹은 인간의 뇌를 통해 잠시나마 그 사람이 생전에 품었던 강렬한 기억들과 감정을 맛본다. 그래서 R은 줄리라는 그 예쁜 소녀의 남자친구를 잡아먹고 그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좀비 무리에서 구해내 자신의 비행기에 지내게 하면서 이른바 좀비식 작업을 건다. 그런 그의 작업 방식이 참으로 아날로그적이라는 점 또한 재미 있다.
무서워하는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심심해하는 그녀를 위해 구식 레코드를 틀어주고,
공항에 굴러다니는 멋진 차(무려 BMW Z4)를 운전하게 해주고, 아픈 기억에 눈물 흘리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손을 그녀의 가슴에 살포시 대준다.
그런 면에서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순간의 몸짓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연애의 모든 재미가 바로 사랑이 시작되기 전의 아슬아슬하고 가슴이 간질거리는 순간에 달려 있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좀비 소년과 인간 소녀가 비행기 안에서 사랑에 빠져 들게 되는 순간들이 참신하고 귀엽다. 또 한 가지 재미라면 그들의 사랑을 통해 멈춰 있던 심장이 다시 뛰게 되는 좀비들이다.
심장이 뛰지 않고, 아무런 감흥이 없이, 살아도 산 게 아닌 시간 속에서 떠돌고 있던 좀비들은 두 손을 맞잡은 그 어린 커플을 보면서 가슴이 뛰게 된다. 여자 친구가 '아직도 날 보면 심장이 뛰니?'라고 했을 때 '우리가 사귄 지 얼만데 아직도 가슴이 뛴다면 그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거지.'라고 대꾸하는 인간 남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반성할 일이다.
지구를 구하는 문제, 인류를 구하는 문제에서도 사랑을 답으로 제시한다는 건 진부하기 짝이 없다고
짱돌을 던져도 할말 없겠지만 이 영화는 그 진부한 메시지를 제법 예쁘고 귀엽게 담아냈다.
무엇보다 좀비처럼 살아가지 말고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는 인간의 삶을 살아가라는, 무언의 메시지에 한 번 귀를 귀울여 본다면 그것만으로 본전은 뽑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