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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교양 ㅣ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인성기 옮김 / 들녘 / 2001년 11월
평점 :
동네 도서관에 가서 무슨 책을 읽을까 한참 행복한 고민을 하다 이 노란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책이라면 잠시 잠깐 틈을 내서 읽을 수 있겠지만 제목부터 무지 부담스런 이런 책은 그나마 시간을 낼 수 있는 방학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절대 이 한권으로 교양을 정복하겠다는 그런 간특한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은 채, 이 책을 택했다.
읽으면서 난 상상외로 너무 재미있는 이 책에 열광하게 됐다. 사실 번역을 시작하면서 너무나 자주 통감하는 나의 부족한 인문학적 소양에 이 책은 마치 다디단 단비와도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너무 오래전에 읽어 기억도 가물가물한 세계사와 서양의 종교 그리고 정말로 원시인적인 상상력밖에는 갖추지 못해 슬프기까지 한 나에게 건축과 회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골고루 갖추고서 즐겁게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 길라잡이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의 놀라운 박학다식함 보다도 그 많은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면서도 독자들을 웃기는 저자의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 그리고 위트였다. 흔히 이런 분야의 입문서나 교양서들이 의무적으로 갖추고 있는 교조적인 어투나 권위적인 문체로 독자를 내리누르는 식이 아니라 우리끼리인데 말이야 하는 식으로 역사와 문화 속에 근근히 뿌리내린 어리석음과 무지를 한껏 꼬집어내면서 독자를 안심시키고 웃기는 저자의 능력이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물론 힘껏 성실하게 읽었다고 해서 감히 한번의 독서로 책에 나오는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하면 난 거짓말장이가 될 것이다. 희곡편에서 나오는 작가가 허구적으로 구성한 극작가들의 대화는 작년 이학기에 서양 연극사를 통해 나름대로 지식을 갖춘 나로서도 오리무중으로 이해하기 힘들었고, 철학편에서는 정말 무슨 귀신이 씨부렁거리는 소리인가 곤혹스럽게 읽어간 부분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를 관통한 거인들의 생애와 철학에 대해 무척 재미있게 배웠고 르네상스의 핵심인 예술과 건축을 읽으면서 르네상스 화가들은 왜 그렇게 풍만한(요즘 관점으로 보면 정말 뻔뻔스럽게 뚱뚱한) 여인들에 집착했나 하는 의문을 풀 수 있었던 점도 큰 소득이었다. 그리고 유럽의 지리적 정치적 역사와 독일의 광기 그리고 그 결벽한 참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던 멋진 책이었다.
그리고 교양이라는 게임에서 능숙해 질 수 있는 법이란 짧은 강좌로 또 나는 눈물이 나도록 웃어야 했다.
작가는 교양을 의사소통으로 정립했다. 교양은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하는 것이며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려는 시도로 행해서도 안되며 '교양' 그 자체로 독립해서도 안되고 테마가 되어서도 안되며 다른 사람들의 거울 속에 자기를 비추어보는 형식이라고 했다.
이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갑자기 세상 만물에 도가 트이진 않았겠지만 최소한 전시회를 갈때면 갑자기 밀려오는 그 막막함은 좀 덜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보며 책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