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크린셀러 열풍 시대다.
건국 이래 불황이란 말이 끊이질 않았던 출판계지만
힘든 작년을 어찌어찌 버티고 맞은 올 해는 곡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흉흉한 출판계를
그나마 스크린셀러가 먹여 살리고 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니.
자기 계발서와 경제경영서가 떠난 자리를 스크린셀러가 메워주고 있다는 걸
그나마 고맙게 생각해야 하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서 기획에서는 영화화 될 조짐이 보이는 작품부터
섭외하는 경향이 짙어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보다 발 빠르게 작가들이
소설을 쓰는 단계에서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며 박진감 있고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경향도 있다.
사실 영화보다는 책쪽에 애정이 조금 더 기울어 있는 나로선
이런 현상이 좀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다. 과거엔 책과 영화는 나란히 갈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좀 더 짙지 않았나?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책이 담고 있는 깊이와 그 원대한 상상력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다는 평이
대체적이었는데. 어쩌면 그 인식을 뒤집게 된 최초는 바로
‘반지의 제왕’시리즈가 아니었나 싶다.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달한 기술로 ‘반지의 제왕’은 마니아들도 감탄시킬 만큼 화려하고
역동적인 화면으로 관객을 매료시켰으니까.
그 후로 차츰차츰 동반 성장세를 보이던 책과 영화는 요 몇 년 새 놀랍게 친밀한 파트너가
된 듯하다. 작년엔 '완득이', ' 화차', '용의자 X의 헌신', '밀레니엄 시리즈 1'편이 성공을 거두더니
올 해는 '파이 이야기', '클라우드 아틀라스', '남쪽으로 튀어', '웜바디스', '레미제라블'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금도 '안나 카레니나'가 극장에서 선전하고 있고. 앞으로 개봉될 '위대한 개츠비', '월드 워 Z', '호스트'등이 숨을 고르고 있다.
그야말로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 가쁠 만큼 많은 작품들이 스크린셀러란 장르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출간된 후 어느새 관객에게서 잊혔던 작품들이 개봉 영화를 통해 다시 주목 받게 된 건
기뻐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활자로 음미하고,
또 가끔씩은 책장을 덮고 생각에 잠겨 보며 경험해야 할 책이란 존재가 어느새 화려한
은막의 힘에 기대야 할 정도로 힘이 빠졌나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다. 반짝거리는 것들만 주목받는 세상에서 이제 책은 더 이상 반짝거리지 않나 보다. 그렇게 스크린으로도 주목받지 못한 많은 좋은
책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날 것이라(아니, 뜨거운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지)생각하니 마음 한 편이 아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