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스포츠다 - 문예창작 훈련의 현장
유용선 지음 / 갑을패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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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어본 전적이 있는 나. 제목을 보니 호기심이 동한다. 글쓰기는 스포츠다, 왜? 그렇게 시작된 의문은 첫 장을 넘기면서 서서히 풀려간다. 첫장을 넘기니 먼저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한계'라는 제목이 나온다. 옳거니. 이제부터 뭔가 흥미진진하고 재미난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올 것 같아 살짝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충실한 내용이 나와 오호 하고 다시 감탄하게 됐다.

 

그렇다. 문학이 죽어간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동시에 블로그와 홈페이지라는 매체를 통해 누구나 글을 쓰게 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작가와 시인들이 많아진 한국이라는 나라. 이런 풍조에 걸맞게 글쓰기에 관한 책들도 심심찮게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책 중에서 먼저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한계라는 주제를 먼저 치고 들어간 책은 이 책이 처음이라 참신했다. 그렇게 시작된 책은 인간이 인간을 언어로 이해시킬 수 있다는 자만 혹은 오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하는 계기를 주면서 글쓰기의 특징과 성격에 대해 조곤조곤 풀어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 부분은 구체적인 창작 요령을 저자만의 독특한 이론으로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언젠가는 나만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내게는 아주 유익한 방법들이 많아 흡족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것. 가능한 한 많은 장소와 캐릭터와 장면 묘사를 연습하고 수집해서 조합해보는 연습을 하는 것. 이 이론을 읽자니 몇십 권의 노트를 빽빽이 채워가며 만나는 사람들의 인물 묘사를 수집했다던 미국의 걸출한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구체적인 창작 요령을 넘어가면 시 감상과 시 작법 그리고 창의력을 키워주는 글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심리치료로의 글쓰기. 기쁘고 슬프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글을 써가며 마음을 달래던 나로서는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많은 글이었다.

 

 

글쓰기를 다룬 책은 많다. 그러나 이 책처럼 재미있으면서 저자의 인간미와 개성이 물씬물씬 풍기는 책은 드물다. 대부분의 글쓰기책은 뭔가 위압적이고 몰개성하다.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글을 고치고 써보라는 사무적인 글이 태반인 세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작법 요령을 부드럽게 말해주는 책은 흔하지 않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제는 알 것 같다. 글쓰기는 스포츠라는 말을. 글이란 천재가 영감을 받아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글도 있겠지만 나처럼 글을 잘 써보고 싶은 욕망을 가진 범인들에게 친절한 길라잡이가 되고자 하는 의미에서 그런 제목이 나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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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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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지하철 타고 왔다 갔다 할 일이 있어서 무심코 '바리데기'란 책을 가지고 나왔다. 원래 황석영이란 작가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이 분의 작품 중 기억나는 것이라곤 '삼포가는 길' 정도. 참, 좋아하는 단편은 '장사의 꿈'이었지만. 이 분이 '바리데기'란 소설로 또 한 방의 홈런을 날렸다고 해도 그저 시큰둥하기만 했었는데. 순전히 지하철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시간 때우자는 속셈으로 읽은 책이 재미있었다. 간만에 '과연, 이것이 소설이구나' 하는 감흥을 철저하게 맛보게 해준 책이랄까.

 

내가 이 책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이유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소설이 우리 나라 고대 전설인 바리데기의 신화를 차용해서 썼다는 말에 그랬지 싶다. 바리데기란 꾸질꾸질한(꾸질하단 단어를 쓴 이유는 딸 많은 집의 막내딸로 태어나 갖은 구박 받다가 결국 부모에게 효도하고 집안을 살린다는 설정 자체가 신파잖아.)소재를 현대물로 썼다면 그 바리데기가 현대적인 메이크오버(못생겼던 여자가 화장발과 옷발로 미녀가 된다고 해도)를 거친다고 해도 그 꾸질꾸질한 정체성은 숨길 수 없지 않겠냐는, 나의 옹졸하기 그지없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작가는 이런 나의 예상을 여지없이 깨뜨려줬다. 하긴 독자가 의도한 대로 끌고나가는 작가라면 홈런을 치지 못했겠지.

 

바리데기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첫째. 남한과 북한으로 갈려지긴 했으나 우린 한 동포라는 교묘한 환상 아래 사실 우린 북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점을 작가 황석영이 철저하게 깨닫게 해줬다는 점이다. 현대 북한에서 태어난 바리. 작가는 바리의 사연많은 유년기를 통해 북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묘사한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묘사했는지 난 소설의 첫 80페이지 정도를 읽을 때까지도 배경이 현대 북한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둔감한 것인가 -.-) 어쨌든 이념과 체제가 다르지만 바리네 식구들이 사는 모습이 우리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 사실 난 충격이었다.

 

 바리데기가 흥미로웠던 이유 두 번째는 신통력을 가지고 태어난 바리의 이야기이다. 대대로 무당이었던 집의 막내딸로 태어난 아이 바리는 신이 점지해준 아이로 영묘한 능력이 있지만 막상 그 능력은 그녀가 고난을 헤치고 나아가는 데 크게 도움을 주진 못한다. 다만 근근히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랄까. 그러나 그녀의 신통력이란 소재가 소설에 강렬한 색채와 이야기를 부여해줬다. 이사벨 아옌데가 즐겨쓰는 기법인 현실과 마법의 세계가 공존하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도 바리와 영혼들의 세계가 교접하는 부분이 아주 매혹적이었다. 사람들의 발을 만지면서 그 사람의 인생 역정을 보게 되는 바리. 그로인해 만나게 되는 여러 슬픈 사연들. 그 영혼들을 달래주는 바리의 사랑.

 

바리데기가 흥미로웠던 세 번째 이유는 이 소설이 드라마에서 쉽게 보는 '성공시대'의 허상을 쫓지 않고, 바리가 그토록 찾아 헤메는 '생명수'의 의미를 작가 자신의 융숭 깊은 철학으로 도도하게 풀어냈다는 것이다. 바리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 독자의 감동에 쉽게 영합하려는 작가였다면 바리의 그런 능력을 십분 살려 바리를 일약 신데렐라로 부상시켰을 것이다. 그녀의 능력과 연줄이라면 고관대작을 마음대로 부릴 수도 있었을 것이고, 수많은 돈을 갈퀴로 모아 재벌이 됐을 수도 있겠지만. 바리는 항상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아프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살아간다. 거기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는 것처럼. 그래서 현실은 환상이나 마법보다 더 강력한 세계가 됐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겹겹의 고난을 헤치며 바리가 찾아낸 '생명수'에는 작가 황석영이 보는 이 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진하게 녹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결국엔 작가가 이런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명수'가 뭐냐고요? 그건 여러분이 읽어보셔야죠.^^

 

바리데기... 소설의 정공법으로 독자를 케이오시킨 소설이 아닐까. 요즘 들어 보기드문 테크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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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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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일하다 검색할 게 있어서 예스 24까지 들어갔다가 무심코 화면 왼쪽에 뜬 베스트셀러 박스를 봤다.

'시크릿'이 부동의 일 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바로 그 밑에 뜬 제목에 눈길이 갔다. '사랑하기 때문에.'

진부하기 짝이 없는 제목이란 생각에 그냥 나가려다 왠지 호기심이 생겨 클릭해봤다. 기욤 뮈소... 그러고 보니 얼마전 신문 광고에서 본 책 같기도 하고. 줄거리를 읽어본다. 음... 이거 물건인 것 같다. 읽어보고 싶잖아. 그래서 내친 김에 서평을 읽어본다. 역시나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그 진부함이 또 끌린다.

 

그래서 칼바람을 맞으며 나간 시내에서 이 책을 샀다. 책의 도입부만 간단하게 설명해보자면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이쁜 아이도 하나 있는 미남 미녀 커플이 어느 날 5살 먹은 그 이쁜 딸을 잃어버린다는 내용이다. 그 충격으로 정신과 의사였던 아버지는 노숙자로 전락하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잃어버린 지 5년 후에 잃어버린 바로 그 장소에서 아이를 찾게 된다는 줄거리... 여기까지 읽게 되면 사실 누구라도 계속 읽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를 잃고 쟁쟁하던 정신과 의사에서 노숙자로까지 전락하게 된 아버지의 아픔과 그 5년 간 과연 그 아이는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라는 의문을 기필코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게 마련이니까.

 

 

그렇게 집어든 책은 과연 손을 떼지 못하게 했다. 매 챕터마다 제목 위에 한 두 줄씩 인용한 동서양의 작가와 철학가들의 잠언도 그 챕터의 내용과 어울리면서 동시에 다시 곱씹어보고 싶은 영혼의 지혜 같은 울림이 있었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감싸 안으며 치유하는 소설 내용이 뭐랄까. 동양적 철학과 서양의 스릴과 서스펜스를 절묘하게 섞은 이야기 전개가 무척이나 박진감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거의 식스 센스에 버금가는 반전도 있어 읽으면서 '앗, 뜨거워.' 하는 느낌도 받았다. 물론 지나친 우연(그중에서도 행운의 빈발)이 가끔 소설의 긴장감과 현실감각을 느슨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이만하면 잘 쓴 소설이라는, 베스트셀러가 될만한 자질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 읽고 나니 뭔가 허전하고 아쉽단 생각도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이것보단 별다른 이야기 전개나 박진감은 없어도 삶의 수많은 편린들을 자잘하게 펼쳐보이는 한국 소설들이 더 알차고 예술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왠지 이 소설은 현 시대가 요구하는 장점을 두루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의 박진감 있는 전개,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없는 구성과 화려한 등장인물들. 언제부터인가 소설과 영화가 정체를 분간할 수 없게 교접하고 있는 요즘 세태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 우리 작가들도 그 멋진 필력으로 이런 이야기를 써서 돈 많이 벌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 하나는 길게 여운이 남는다.

작가가 지그재그로 여러 등장인물을 출연시키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해결된 듯, 잊혀진 듯 보이지만 과거는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또아리를 튼 채 남아 있다. 그 과거를, 그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하지 않는 한 모든 행복은 허깨비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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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 성공인생을 이끄는 마인드포스
폴 매코믹 지음, 김우열 옮김 / 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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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은 365일이라는 날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1년 12개월 중에서도 1월하고도 초입은 항상 사람들에게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해주는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다이어리를 사고, 담배를 끊거나, 살을 빼거나, 애인을 구하거나, 집을 사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는 작년과는 다르리라 생각한다. 그런 선상에서 토정비결이나 점을 보며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점을 쳐보곤 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항상 이런 전철을 밟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매년 신년 통과 의례처럼 치루는 것이 바로 자기 계발서를 읽는 일이다.




사실 이 습관은 생각해보니 4-5년쯤 된 것 같은데 의도적으로 그랬다고 하기보단 우연히 선물을 받거나, 다이어리를 사면서 한 권씩 곁다리로 사서 읽고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올해는 이 책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책이 내게로 왔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만 봐도 뻔하군’, 하는 건방진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러나 인생의 묘미란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 우리 삶을 비틀어 놓을 때가 아니겠는가?




이 책 ‘생각을 바꾸면...’은 예상과 달리 참 읽기 퍽퍽한 책이었다. 그간 읽은 자기 계발서들은 이러저러 하면 삶에서 원하는 것들이 이렇게 저렇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실제적인 팁과 방법을 매끄럽고 읽기 쉽게 정리해서 단박에 읽어 제치게 만들고, 흡족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은 후 2주나 3주가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도록 만드는 신묘한 재주가 있었는데. 이 책은 좀 다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약속한 것처럼 철저하게 우리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와 고통의 해답을 찾으라고 다그치고 있다. 그리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되묻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쩜 이 책은 자기 계발서 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라던 부와 건강과 사랑과 미모를 얻으면 어쩔 건데? 그러면 행복해질 것 같니?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니? 이렇게 사정없이 회초리로 마음을 치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라고 엄격하게 물어보고 있다. 그래서 매끄럽게 읽히지도 않고, 가독성이 있는 편도 아니다. 어떤 면에선 불교의 참선이나 화두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는 착각마저도 든다.




그런데도 이 책은 뭔가 중요한 것을 일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서 어려워하면서도 계속 읽게 됐다. 읽어가면서 수긍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읽은 것은 나 역시 마음속에 해결되지 못한 상처와 아픔이 많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위로도 많이 받았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어난다는 점을 알면 어떤 일에서든 기쁨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고, 접하는 정보와 책이 더 많아지면서 이젠 뭔가를 맹목적으로 믿거나 추구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는 걸 느낀다. 마찬가지로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의 글자 하나하나를 스펀지 빨아들이듯 흡수하는 일도 이젠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이제는 거친 음식과 잠자리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배웠던 것처럼 매끄럽고 읽기 쉬운 글보다 어렵고 엄격하지만 영혼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언뜻 보면 새로운 내용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책이었지만 그간 내가 피하고자 했던 문제들을 직시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상 깊었다. 이 책 하나로 인생이 바뀌리란 기대를 할 만큼 더 이상 순진하진 않지만(그런 면에서 좀 슬프다.) 피하고 싶었던 문제들을 찬찬히 끄집어내서 생각해보게 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그 값어치를 했던 책이다. 한 2번 쯤 이 책을 더 읽어보고, 저자가 권하는 대로 해봐서 인생이 바뀐다면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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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는 곳 사는 곳
다이라 아즈코 지음, 김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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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이 우리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 그 이유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다양한 소재가 아닐까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의 직업만 하더라도 한국 소설에선 선뜻 접하기 힘든 그런 직업군들이 많다. 그렇다고 내게 그런 예를 들어주라고 하신다면 심히 난감하긴 하지만. 이 소설, 먹고 자는 곳 사는 곳, 도 그런 소재의 새로움을 산뜻하게 살린 소설이다.




주인공 리오는 서른 살난 노처녀로 모아 놓은 재산도 없고 미모라고 할 만한 외모도 아니고 딱부러진 애인도 없다. 여기까진 극히 평범한 설정이지만 그러나 생일 날 술 먹고 올라간 비계에서 극적으로 자신을 구조한 비계공 데쓰오에게 뿅 가버린다. 근데 데쓰오의 외모만으론 난 별로 공감이 안 가더만.(난 아직도 꽃미남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다. 불치병인 것 같은 예감이...) 어쨌거나 간만에 필이 꽂힌 데쓰오에게 접근도 할 겸, 지지부진한 인생을 확 개조할겸 건설 현장으로 뛰어드는 리오와 바람난 남편을 한 방에 차버리고 아버지가 하는 건설회사를 물려받은 이혼녀 사토코의 투쟁기가 이 소설의 뼈대이자 주 메뉴이다. 여기까지 읽고 느끼셨나요? 재미날 것이란 예감이 솔솔?




소설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참 놀랍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노처녀의 연애 이야기가 주이고 그에 대한 배경으로 건설 현장이 슬쩍 슬쩍 비치다 말 거라는 내 예상은 정통으로 빗나가고. 한 채의 집을 꿈꾸는 과정에서 완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아주 자세하면서 재미나게 그려진다. 그 집을 만드는 주인공들(시공업자, 건설회사, 목수, 도배공, 집주인)의 심리와 상황이 너무너무 현실적이어서 읽으면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내 집을 지어볼까 하는 황당한 생각까지 가졌드랬다. 이 소설은 참 건강한 소설이다. 여주인공은 으쌰으쌰 꿈을 향해 달리면서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남자 데쓰오를 공략한다. 그러나 집착하지 않고 안달하지 않는다. 먼저 고백하고 싫으면 관두라는 쿨한 태도까지(물론 마음은 쿨하지 않지만) 아주 이뻐 죽겠다. 거기에 전구를 못 갈아서 이혼한 것을 후회하며 우는 사토코의 인간적인 고뇌도 마냥 공감이 간다. 그래서... 295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을 아주 빠르게 읽어치웠다.




요즘은 소설을 한 편 읽고나면 이상하게 그 소설을 음식에 비유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소설을 읽은 느낌은... 가쯔오부시 국물이 시원하기 그지 없고 면발이 쫄깃한 우동을 한 그릇 확 비운 느낌이다. 짬뽕처럼 화끈하고 극적인 맛은 없지만 단정하면서 입에 착착 감기고 그러면서 마음이 은근히 데워지는 소설이다.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온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이 많아 짜증나는 요즘, 이 소설 한 번 읽어보시라. 후회하지 않으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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