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는 곳 사는 곳
다이라 아즈코 지음, 김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일본 소설이 우리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 그 이유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다양한 소재가 아닐까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의 직업만 하더라도 한국 소설에선 선뜻 접하기 힘든 그런 직업군들이 많다. 그렇다고 내게 그런 예를 들어주라고 하신다면 심히 난감하긴 하지만. 이 소설, 먹고 자는 곳 사는 곳, 도 그런 소재의 새로움을 산뜻하게 살린 소설이다.




주인공 리오는 서른 살난 노처녀로 모아 놓은 재산도 없고 미모라고 할 만한 외모도 아니고 딱부러진 애인도 없다. 여기까진 극히 평범한 설정이지만 그러나 생일 날 술 먹고 올라간 비계에서 극적으로 자신을 구조한 비계공 데쓰오에게 뿅 가버린다. 근데 데쓰오의 외모만으론 난 별로 공감이 안 가더만.(난 아직도 꽃미남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다. 불치병인 것 같은 예감이...) 어쨌거나 간만에 필이 꽂힌 데쓰오에게 접근도 할 겸, 지지부진한 인생을 확 개조할겸 건설 현장으로 뛰어드는 리오와 바람난 남편을 한 방에 차버리고 아버지가 하는 건설회사를 물려받은 이혼녀 사토코의 투쟁기가 이 소설의 뼈대이자 주 메뉴이다. 여기까지 읽고 느끼셨나요? 재미날 것이란 예감이 솔솔?




소설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참 놀랍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노처녀의 연애 이야기가 주이고 그에 대한 배경으로 건설 현장이 슬쩍 슬쩍 비치다 말 거라는 내 예상은 정통으로 빗나가고. 한 채의 집을 꿈꾸는 과정에서 완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아주 자세하면서 재미나게 그려진다. 그 집을 만드는 주인공들(시공업자, 건설회사, 목수, 도배공, 집주인)의 심리와 상황이 너무너무 현실적이어서 읽으면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내 집을 지어볼까 하는 황당한 생각까지 가졌드랬다. 이 소설은 참 건강한 소설이다. 여주인공은 으쌰으쌰 꿈을 향해 달리면서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남자 데쓰오를 공략한다. 그러나 집착하지 않고 안달하지 않는다. 먼저 고백하고 싫으면 관두라는 쿨한 태도까지(물론 마음은 쿨하지 않지만) 아주 이뻐 죽겠다. 거기에 전구를 못 갈아서 이혼한 것을 후회하며 우는 사토코의 인간적인 고뇌도 마냥 공감이 간다. 그래서... 295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을 아주 빠르게 읽어치웠다.




요즘은 소설을 한 편 읽고나면 이상하게 그 소설을 음식에 비유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소설을 읽은 느낌은... 가쯔오부시 국물이 시원하기 그지 없고 면발이 쫄깃한 우동을 한 그릇 확 비운 느낌이다. 짬뽕처럼 화끈하고 극적인 맛은 없지만 단정하면서 입에 착착 감기고 그러면서 마음이 은근히 데워지는 소설이다.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온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이 많아 짜증나는 요즘, 이 소설 한 번 읽어보시라. 후회하지 않으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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