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맨 플라이 -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2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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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에는 가끔 털이 지나치게 많이 난 사람들이 태어난다. 예전에 텔레비전인가 신문에서 그런 소년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아주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였지만 그 아일 보며 못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CSI에서 그렇게 털이 부숭부숭한 남매의 이야기를 본 적도 있다. 세상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형태의 일반인과는 다른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이렇게 털이 많다는 것도 역시 복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온몸이 털로 뒤덮인데다 안면이 좌우 비대칭인 흉측한 외모의 남자가 자신보다 몇 분 늦게 태어났지만 조각같은 완벽한 미남으로 태어난 쌍동이 남동생(출생부터 아주 드라마틱한 형제다)과 함께 미모의 여성들에게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바로 이 데드맨 플라이이다. 흠... 시쳇말로 죽이는 설정이다. 기괴하고 엽기적인 소재에 눈돌리기 쉬운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봤다고나 할까.

 

 

이 추남과 미남 형제는 여러 건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다 추남인 형 장 밥티스트 샤도니는 완벽녀 검시관인 스카페타 덕분에 눈이 먼 채로 감옥에 들어가고, 미남이자 형의 곱절로 악독한 동생인 제이 톨리는 베브 키핀이라는 뚱뚱하고 멍청한 정부와 함께 계속 살인에 몰두하고, 이 형제를 잡기 위해 스카페타와 그녀의 천재 조카인 루시(역시 완벽한 지능과 미모를 겸비)와 신비의 인물인 벤턴과 마리노 형사와 닉이라는 여형사가 팀을 이뤄 활약하는 것이 이 스릴러의 전체적인 얼개인 셈이다.

 

 

대체로 스릴러는 스토리가 자극적이거나, 아니면 정교한 플롯을 무기로 삼거나, 그도 아니면 주인공의 매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은 누구 한 명을 딱히 주인공이라고 짚어낼 수 없는 상황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고 각자 깊은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충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의 동기와 사연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보기에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바로 벤턴과 장 밥티스트 샤도니였다. 사건에 몰두하다 과거의 모든 지위와 배경을 잃어버리고 그림자로만 살아가던 시간 동안 살인마들을 잡기 위한 거대한 시나리오를 구상해서 차근차근 실천해가는 벤턴이란 인물. 그리고 눈이 멀어서까지도 미국과 프랑스를 자유롭게 상상 속에 오가며 시를 써내리는 범죄 예술가 장 밥티스트 샤도니. 미치광이지만 어딘가 음울한 매력이 있다.

 

 

이 소설은 이렇게 화려한 소재와 개성이 넘치다못해 가끔은 지나치게 전형화된 캐릭터들이 총출동해서 전개되지만 아쉽게도 뒷심이 좀 약하다. 거의 몇 페이지 안 남은 시점까지 이야기를 팽팽히 끌고 가다가 갑자기 악당들이 죽어버리니 허탈하달까. 퍼트리샤 콘웰의 의학 스릴러를 처음 본 나로서는 약간 실망스럽기도 한 책이지만 그래도 며칠 밤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꽤 실한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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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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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주인공이 수집한다는 링컨 차가 궁금해서 네이버 검색을 쳐봤다. 나오는 이미지가 한 개 밖에 없었다. 나의 검색 방법이 잘 못된 것인지. 하여튼 그렇게 네이버가 토해내는 사진으로 본 링컨은 음... 앞 대가리가 무지하게 긴 것 말고는 별다른 매력을 못 느끼겠던데. 그러나 재규어를 겉모습만 번지르레한 포드라고 한 주인공의 차에 대한 개똥철학을 보자면 링컨이 실용적이긴 한가 보다. 그 길이로 봐서는 절대 실용적일 수 없을 것 같은데.

 

 

어쨌든 주인공을 사로잡은 링컨은 날 매료시키지 못했지만 이 책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맘에 들었다.

생각해보니 존 그리샴 이후로 법정 스릴러를 읽은 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그동안은 평범한 사람이 위기상황에 닥치면 괴력을 발휘하는 스릴러 아니면 원래 지옥 훈련을 거친 온몸(미소까지)이 근육뿐인 특수부대원(아니면 그 비슷한 자격을 갖춘)주인공을 나쁜 놈들이 잘 못 건드려서 왕창 깨지는 그런 스릴러만 보다가 간만에 법정 스릴러를 보니 참신했다.

 

 

주인공은 그야말로 인생의 밑바닥에서 헤메는 사람들-마약에 절은 갱들과 창녀을 주고객으로 하면서 가끔씩 홈런도 날리는 유능한 변호사. 이혼을 두 번이나 했지만 두 명의 전처와 훈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설정에서 주인공이 사실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작가의 테크닉도 대단하다. 돈만 밝히면서도 은근히 배어나오는 인간미가 아주 현실적인 주인공이란 말. 철저한 악인도 철저한 선인도 없는 게 현실 아니던가 말이다. 그렇게 인간적이면서도 '난 돈이 좋아'를 온 몸으로 외쳐대는 주인공이 어느날 대박 사건을 물어서 흥분하다가 점점 깊은 사건의 수렁으로 빠진다는 플롯이다.

 

 

요즘은 드라마건 영화건 반전을 지나치게 좋아해서 탈이라는 말이 많은데. 그렇게 반전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보니 독자나 관객도 영악해질만큼 영악해져서 영화나 소설 중간에 이미 범인을 알아보고 시시해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극 초반이나 중간에 범인을 밝히고 들어가면 그만큼 극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긴장이 높아지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용두사미 격으로 퉁퉁 불은 국수 면발처럼 결말이 힘없이 풀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정말 화려한 반전의 엎치락 뒤치락이 압권인 작품이다.

범인과 주인공의 한판 대결을 지켜보면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 이 변호사가 시리즈로 나온다고 하는데 첫 권이 이 정도라면 다음 시리즈를 고대하게 하는 성공적인 첫 데뷔인 셈이다. 책을 다 읽고 작가의 말과 번역가의 말을 읽어봤다. 두 사람 모두 이 작품을 쓰고 번역하기 위해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이렇게 잘 익은 스릴러 한 편을 수확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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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 키 1 - 스티븐 킹 장편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8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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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처음 스티븐 킹의 소설을 접한 것은 대략 14,5년 전쯤. 어학연수 받으러 갔던 나라에서 우연히 사게 된 한 권의 페이퍼백 소설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왕무식하여 스티븐 킹이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다만 표지가 그럴듯하게 음산하여 골랐던 기억이 나는데. 여튼 처음 몇 페이지를 보고 그때의 그 짧은 영어 실력에도 사전을 무시하고 읽어내려가게 만든 그의 필력에 황홀해하며 끝까지 책을 붙들고 있던 기억이 난다. 그후로 스티븐 킹이란 작가에 대해 조금 공부해보니 전세계 독자들이 장시간 비행기 여행을 하게 될 때 가지고 가는 책 1위가 킹의 소설이란 걸 알게 됐다. 그 후로 나도 10시간이 넘는 비행기를 탈 때는 항상 킹의 소설을 가방에 챙기곤 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킹에 대한 애정은 드림 캐처 이후로 약간 시들해졌다. 그러다 점점 게을러지기 시작하면서 소설보다는 영화로(미저리-쇼생크 탈출-그리마일과 같은 작품들로) 그를 만나게 됐다. 이 와중에 항상 드는 생각은 킹은 최고이자 따봉이자 짱이라는 것이었는데. 한편으로 이상한 점은 세계 초특급 대박을 내는 이 작가의 책이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그리 열렬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은 아직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긴 하지만... 그러다 2년 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으며 셰익스피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다작의 제왕이자 이야기의 마법사의 창작 비결을 잠깐 훔쳐보고 즐거워하기도 했고 중간 중간 '애완동물 공동묘지'도 읽고 셀도 읽기도 했지만 처음과 같이 무조건 반한 감정은 아니었는데.

 

 

며칠전 '듀마 키'가 내 손에 들어왔다. 그래서 오늘 아침 책을 잡았다. 처음에는 초반만 살짝 읽어보고 일을 하자는 속셈이었는데 읽다보니 점심도 건너뛰고, 가끔은 다음에 나올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리고, 또 가끔은 실제로 심장이 쪼그라들 만큼 섬뜩한 공포에 시달리면서 책장을 넘겼다. 아침 먹고 9시 30분에 시작한 독서는 점심도 건너뛰고 오후 6시가 넘어서 드디어 끝장을 넘기게 됐다. 다 읽고 나니 지독한 허기가 밀려왔다. 마치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나면 찾아드는 엄청난 허기에 익히지도 않은 생 스테이크를 씹었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그리고 드는 생각은 왕의 귀환이라는 출판사 선전 문구가 과장이 아니었다는 반가운 확인이었다. 킹의 이번 작품은 이를테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간의 문학적 성과를 '해변의 카프카'라는 소설에 쏟아 부은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내가 이런 비교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사실 '듀마 키'는 킹의 작품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이라면 100% 새롭고 신선하고 충격적인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 초반부에 나오는 교통사고에 이은 재활과 고통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충분히 맛본 내용이고, 사랑하는 자식을 잃는 아픔은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 소름끼칠 정도로 묘사됐으며, 듀마 키를 둘러싼 악마란 존재는 킹의 작품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악역이고. 듀마 키 해변의 여왕과 그 여왕을 섬기는 전직 변호사이자 집사와의 관계는 돌로레스 클레이븐에 나오는 두 여인의 관계와 흡사하다. 그러나 이번 작품 '듀마 키'는 그 모든 유사성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후 정교한 플롯으로 가늘고 촘촘하게 각각의 캐릭터들을 단단하게 엮었고 그러면서도 킹 특유의 공포와 유머감각을 감칠나게 정확히 반반으로 버무려 놨다.

 

 

그 결과 듀마 키를 읽으며 나는 주인공이 머무르고 있는 별장 빅 핑크 밑에서 수런거리는 조개들의 수다가 들리는 듯 했고, 우리 집 아파트 13층 창문으로 플로리다의 오렌지와 적색 석양이 밀려드는 착각이 들었고, 주인공 에드거가 매일 아침 하는 해변의 산책길에 밟히는 모래가 내 발치에서 버석거리고, 사고로 잃은 오른쪽 팔이 가려워 미치는 주인공처럼 갑자기 내 한쪽 팔이 스멀스멀 가려워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듀마 키’는 한 마디로 소설 쓰기라는 분야에서 절정의 기량에 이른 장인이 그 기량을 한껏 발휘한 작품이다. 어쩌면 스티븐 킹은 다시는 이런 작품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슬픈 예감마저 들게 하는 소설. 그래서도 이 작품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이 한 권의 소설 속에 킹의 재능의 정수, 그 무궁무진하고 광막한 상상력의 세계가 아낌없이 펼쳐져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자면 이 소설은 그야말로 해변에서 읽어야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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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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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에는 이동 도서관 차가 2주에 한 번 온다. 이레저레 게을러서 도서관까지 가느니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서 보곤 했는데 고맙게도 아파트 앞까지 차가 오니 빌려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빌린 책 중에 '캐비닛'이 있었다.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소설이었는데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 작가가 '김연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난 김연수의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딱 하나 좋아한 게 있긴 하는데 그건 바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후기였다. 후기를 어찌나 감동적으로 썼던지 처음에 읽다가 던져버린 그 책이 그리 재미있나 하고 다시 읽고 또 후회하긴 했지만. -.- 어쨌든 김연수의 후기 때문에 그 소설이 많이 팔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오는 내 번역서의 후기도 또 써주면 좋으련만. ㅎㅎ

 

 

좌우당간 그래서 이 참에 '김연수'란 작가의 글을 연구해보자(란 거창한 심리는 아니었지만)란 작심을 품고 이 소설을 빌렸다. 그런데 어랍쇼. 며칠 궁글렸다 막상 읽으려고 이 책을 펼쳐보니 작가 '김언수'였다. 이럴수가. 인터넷 서점을 찾아보니 김연수가 아니라 김언수 맞았다. 학교 다닐때도 가끔 시험 문제 잘 못 읽어서 틀린 적이 있긴 하지만 번역가가 이렇게 띄엄띄엄 읽어도 되나? 어쨌든 이렇게 내 손에 들어온 책 '캐비닛' 재미있어 환장하는 줄 알았다. 가끔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설을 왜 이리 열심히 읽나, 싸부님 말대로 그 책 읽는 시간에 번역을 하면 돈이라도 벌텐데... 라는 생각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재미있어서. 그 소설을 읽는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오롯히 그 책 하나에 몰입해서 이 지겨운 세상을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설 '캐비닛'은 발랄하고 발칙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슬프고 심각하기도 한 소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의 입담이 대단하다. 이 정도의 입담이라면 박민규와 천명관 정도의 체급에 비유할 수 있겠다. 작가는 수상 소감에 이런 말을 썼다. 자기가 어렸을 적에 살던 동네에 환상적인 자장면을 파는 중국집이 있었는데 가난한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 자장면을 먹으며 행복해했노라고. 그래서 자기 소설이 그 자장면 한 그릇 정도의 행복감은 사람들에게 줘야 하는데 정작 자기는 그 자장면은 커녕 단무지만도 못한 소설을 쓴다고. 그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 당신의 소설은 자장면 정도가 아니라 입에서 살살 녹는 탕수욕 같은 소설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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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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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한 시나리오 작가의 연애 이야기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연애와 사랑에 관한 시나리오 전문작가인 그녀가 요즘은 글을 못 쓰고 있다고. 왜냐. 요즘엔 사랑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니, 사랑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모두 눈치 보고 계산기 때리느라 너무 바빠서 정작 속속들이 내주고 빠져드는 사랑을 하지 않는 시대에 무슨 사랑 영화를 만들겠냐고. 그 말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었다.

 

어제부터 잡은 이 책 '막스 티볼리의 고백' 이 책이 사랑에 관한 이야긴줄 알았더라면 맹세코 책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하나의 멋진 이야기를 못 읽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뭐, 그래도 내 인생 살아가는 데 별로 달라지는 건 없지만. 어쨌든 태어날 때 7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점점 어려지는 남자라는 설정. 그래서 70 나이의 절반이 되는 35세에는 딱 제 나이로 보이는 육체를 갖게 된다는 주인공을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내 호기심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그래서 유달리 힘들었던 이번 마감을 끝내고 동네 서점에 달려간 나는 사탕 가게에 들어간 아이처럼 달콤하고도 어려운 고뇌에 시달리며 표지도 화려한(요새 책들은 왜 이리 표지가 이쁜지 원) 신간 소설들을 하나하나 고르다가 마침내 올 해 초부터 읽고 싶었던 이 책을 사고야 말았다.

 

고백컨대 소설의 첫 부분은 읽기 쉽지 않았다는 걸 정직하게 써야 할 것 같다. 그동안 한국 소설과 일본 소설 그리고 외국 소설은 주로 스릴러나 공포와 추리물만 보던 터라 주인공의 심리와 배경을 수놓듯이 길고도 아름답게 그러면서도 이해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게 묘사한 첫 부분을 읽으며 그냥 덮을까 생각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의 필생의 연인 엘리스를 만나 그녀 옆을 맴도는 주인공을 보며 마치 롤리타를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늙은 남자인 주인공이 14살 소녀에게 정신없이 빠져들면서도 그 뜨거운 열정을 고백하지 못하고 소녀의 어머니와 엉뚱하게 엉키게 되는 줄거리가 언뜻 롤리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 막스 아버지의 신비로우면서도 수상쩍은 행방불명 이후 이야기는 탄력을 받아 박진감이라고까지는 말 못해도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점점 호흡을 가다듬어가는 이 소설은 중반부 이후로 갈수록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판타지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고, 여주인공 앨리스의 운명을 보면 시대를 앞서가서 너무 일찍 집을 뛰쳐나간 입센이 낳은 여인 노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후반부로 가서 아들을 보고도 아비라 밝히지 못하는 주인공의 서글픈 운명이 홍길동을 살짝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거, 왜 있지 않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슬픔 비슷한 슬픔이 이 소설에도 있다. 그리고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해서 자식을 낳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은유한 부분도 나온다. 걸출한 작가들이 모두 극찬했다는 이 소설은 읽어보면 왜 그런 칭찬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결말이 가까워질수록 내 눈시울을 가렵게 만든 건 바로 시간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도 공평하지 않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들자면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서글픔, 인간조건의 가장 큰 비애를 이토록 뛰어난 플롯에 담아낼 수 있는 작가의 역량에 놀랬기 때문이다. 막스 티볼리의 고백은 슬픈 소설이며 사랑 소설이며 시간에 관한 소설이다.

그리고 사랑을 할 수 없는 메마르고 불안한 심장을 가진 현대인들에게 주는 플라시보 즉 위약과 같은 소설이다.

'나는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했다 해도,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란 거짓 효과를 주는 소설.'

소설을 읽고서 막스 티볼리의 슬픈 운명에 눈물 흘려준다면 당신도 위약 효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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