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에는 이동 도서관 차가 2주에 한 번 온다. 이레저레 게을러서 도서관까지 가느니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서 보곤 했는데 고맙게도 아파트 앞까지 차가 오니 빌려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빌린 책 중에 '캐비닛'이 있었다.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소설이었는데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 작가가 '김연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난 김연수의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딱 하나 좋아한 게 있긴 하는데 그건 바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후기였다. 후기를 어찌나 감동적으로 썼던지 처음에 읽다가 던져버린 그 책이 그리 재미있나 하고 다시 읽고 또 후회하긴 했지만. -.- 어쨌든 김연수의 후기 때문에 그 소설이 많이 팔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오는 내 번역서의 후기도 또 써주면 좋으련만. ㅎㅎ 좌우당간 그래서 이 참에 '김연수'란 작가의 글을 연구해보자(란 거창한 심리는 아니었지만)란 작심을 품고 이 소설을 빌렸다. 그런데 어랍쇼. 며칠 궁글렸다 막상 읽으려고 이 책을 펼쳐보니 작가 '김언수'였다. 이럴수가. 인터넷 서점을 찾아보니 김연수가 아니라 김언수 맞았다. 학교 다닐때도 가끔 시험 문제 잘 못 읽어서 틀린 적이 있긴 하지만 번역가가 이렇게 띄엄띄엄 읽어도 되나? 어쨌든 이렇게 내 손에 들어온 책 '캐비닛' 재미있어 환장하는 줄 알았다. 가끔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설을 왜 이리 열심히 읽나, 싸부님 말대로 그 책 읽는 시간에 번역을 하면 돈이라도 벌텐데... 라는 생각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재미있어서. 그 소설을 읽는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오롯히 그 책 하나에 몰입해서 이 지겨운 세상을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설 '캐비닛'은 발랄하고 발칙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슬프고 심각하기도 한 소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의 입담이 대단하다. 이 정도의 입담이라면 박민규와 천명관 정도의 체급에 비유할 수 있겠다. 작가는 수상 소감에 이런 말을 썼다. 자기가 어렸을 적에 살던 동네에 환상적인 자장면을 파는 중국집이 있었는데 가난한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 자장면을 먹으며 행복해했노라고. 그래서 자기 소설이 그 자장면 한 그릇 정도의 행복감은 사람들에게 줘야 하는데 정작 자기는 그 자장면은 커녕 단무지만도 못한 소설을 쓴다고. 그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 당신의 소설은 자장면 정도가 아니라 입에서 살살 녹는 탕수욕 같은 소설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