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명품 수집 이야기 - 쓰레기? 나에겐 추억
전갑주 지음 / 한국교과서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수집을 즐기는 사람들을 두고 '수집광'이라고도 이른다. 수집, 그것은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열광하며 스스로 그것을 자신의 관념과 생활 속에 넣어 두길 원한다. 마치 아름다운 새가 럭셔리한 새장 속에서 아침마다 자기를 깨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즐기는 새의 주인과도 같이, 이 같은 공유에는 낯선 이가 방해할 수 없는 깊은 골이 있다. 

 

 

어느 수집가의 32년 수집 여행 이야기

 

책의 저자 전갑주교과서 출판인이다. 예전 문교부 산하 기관 국정교과서(주)에서 19년, 자신이 창업한 한국교과서(주)에서 16년 지금까지 총 35년을 교과서 출판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IMF 외환 위기 시절, 알거지 신세로 전락한 후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실업계 고등학교를 살리겠다는 포부로 실업계 전문 교과서 회사인 한국교과서(주)를 창업했다.

 

한편, 그는 23살 때부터 지금까지 32년째 수집광狂으로서 옛 교과서와 교육자료, 6.25 전쟁 흔적 자료, 역사사료, 근현대 생활 사료 총 20만여점을 수집했다. 이제 그는 영인본 출판, 전시회, 추억을 파는 문화 장사꾼이다. 추억장사 마수걸이 상품으로 자신의 32년 수집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출간했다. 책에는 '쓰레기? 나에겐 추억'이라는 부제副題가 달려 있다.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 유한준, <석농화원> 중에서

 

자신에게 유용한 것, 기쁨을 주는 것을 사모하고, 그것을 따라 삶을 영위해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수집가의 자질을 지닌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이 수집가가 되려고 한다. 담배를 수집하는 사람에 대해 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즉 담배 수집가들은 진귀한 담배를 금쪽같이 여기지만, 흡연을 경멸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저자는 문교부(현, 교육부) 산하 국영기업체인 국정교과서(주)에 근무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어 매년 발행되는 교과서와 교육 자료들을 남들보다 쉽게 수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돈 걱정 없이 한두 권씩 모은 지 30년이 훌쩍 넘어 다른 수집품들과 함께 이제 많은 양이 되었다. 오죽하면 수집품 창고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그의 아내는 머리가 아프다고 할 정도란다.  

 

이 책에는 우리들이 쉽게 만날 수 없는 개화기 최초 3종 국어 교과서, 1948년~1951년 사이에 간행된 '바둑이와 철수(국어1-1)'4종 교과서, 한석봉 천자문, 조선어독본, 최남선 소년잡지, 6·25 한국 전쟁 당시 전시 교육 체제 교과서 9종 등 다양한 희귀 국내 교과서들을 소개한다.

 

 

 

 

교과서를 수집하다

 

교과서는 교육의 도구이다. 저자는 처음에 '교과서는 중요하다'고 판단해 무작정 교과서 위주로 수집 활동을 했다. 교과서 한 권 한 권은 그 시대의 상황을 나타내는 조각이다. 각 시대에 발행된 교과서의 과목, 편찬자(저자), 내용과 문투, 편집, 제책 형태 등을 종합해 공통점을 추리면 그 시대의 통치 교육 이념, 교육 행정 방향 등을 알 수 있다.

 

올해는 근대 교과서 탄생 120주년이다. 1895년 당시 학부(교육부) 편집국의 <국민소학독본>을 기준으로 해서다. 통합형 국어 교과서인 셈이다. 이듬해 <신정新訂 심상소학尋常小學>엔 '김지학'과 '박정복'이란 어린이가 등장한다. 그런데 1922년 조선총독부 발간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의 첫 페이지에 소牛가 나온다. 이는 조선인을 마치 순종하는 소처럼 일본의 식민지 노예로 세뇌하려는 의도로 느껴져 분개가 치밀어 오른다.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 조선어독본>(1922년) 

 

'너는 소다. 너는 소다. 소는 주인에게 순종한다. 소는 주인에게 순종해야 여물도 많이 받아먹고 귀염을 받는다. 너는 소다. 너는 소다'


문교부는 1948~1951년 사이에 <바둑이와 철수(국어1-1)> 4종을 발행했다. 저자는 이중 2종을 수집했지만 나머지는 수집못한 상태였다. 그는 전국을 찾아 헤맨지 30여 년 만에 건축가이자 수집가인 사람으로부터 나머지 2종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수집은 기다림과 인내심의 결정체이다. 일제가 교과서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지학과 박정복이 철수와 영이로 새롭게 탄생한 셈이다.

 

조선 시대에도 <명심보감>, <동몽선습>, <삼륜행실도>, <이륜행실도>, <오륜행실도>, 그리고 <천자문> 등이 교육용 교재로 있었다. 물론 당시엔 신분제도가 철저했기에 누구나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1583년, 선조는 당대 명필 석봉 한호를 궁 안으로 불러 천자문을 쓰게 하고, 어제御製 초간初刊 천자문을 1601년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이것이 바로 '석봉 한호 어제 천자문'이다. 아직까지 초간본은 국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기타 사료들

 

일제의 암흑기를 지나 해방을 맞았지만 이후 한국전쟁이란 불행한 사건을 겪으며 한국 사회에는 글을 미처 깨우치지 못한 문맹자들이 많았다. 특히,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기 때문에 당시의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배움의 기회가 훨씬 적었다. 1954~1958년, 정부는 전국 문맹 완전퇴치 계획을 결의했다. 교육부, 내무부, 국방부, 공보실, 농림부, 보사부 등이 교육을 주관했고, 기독교계도 이에 동참했다. 1961~1962년에는 국가재건운동본부가 이를 주관했다.

 

개화기開化期 이래 각종 잡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읽을 수 있는 각종 교육자료, 생활사 물품도 모았다.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과 학도병들에게 지급된 목총, 전쟁통에 사용된 이동용 책상 등 정말 다양하다. 새마을운동과 혼분식 장려 관련 포스터, 쥐잡기 운동에 동원된 쥐덫도 있다.

 

가족계획 관련 포스터는 시대별로 다르다. '알맞게 낳아 잘 기르자', '덮어 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벗는다(1960년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신혼 부부 첫 약속은 웃으면서 가족계획'(1970년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1980년대), '사랑으로 낳은 자식 아들 딸로 판단말자'(1990년대) 등의 표어가 그 때를 대변하는 듯하다.

 

수집품 중에는 한국전쟁 때 발간한 '전시戰時 똥지 교과서'도 있다. 거무튀튀한 재질에 제본도 안 된 책이다. 국민학교 1~2학년용 교과서의 제목도 <탕크>, <비행기>, <군함>이다. 전쟁통에 질이 나쁜 인쇄용지를 부르는 속어인 '똥지'를 사용했다. 문교부는 제본도 못한 상태로 학생들에게 보급하며, 학부모에게 직접 제본하여 사용하라고 안내했다. 그는 문교부가 1951년에 임시 발행한 전시교과서 12종을 30년에 걸쳐 수집했다.

 

 

 

문맹퇴치운동 포스터(위)

1950년 6월 국어교과서 (아래 왼쪽)

 

 

향후계획과 꿈

 

이제까지 여러 종류의 수집품을 사들이는데 들어간 돈이 빌딩 한 채 값이란다. 수집품이 넘쳐나 시골 폐교를 사들여 10개 교실을 꽉 채워도 모자라 회사 창고 세 곳과 사무실에도 수집품을 갖다 놓았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수집품은 생명'이라며 하나도 팔지 않은 그는 한국의 성공신화를 보여주는 60~70년대 마을을 만들고, 비무장지대에 분단과 6·25 전쟁을 기억할 수 있는 평화통일 문화 공간을 짓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모두 20만여점 됩니다. 수집은 무수히 흩어진 기억의 편린을 모으는 재미입니다. 수집품들은 삶의 곡절마다 나를 지탱해준 버팀목이었고, 깊고 마르지 않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저자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수집가에겐 돈과 열정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 세가지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인내심이 아닐까. 최소한 10년은 인내해야 수집가라고 불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21세기는 꿈과 감성과 이야기를 사고파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저자의 꿈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수집은 역사를 모으는 놀이다"

- 야나기 무네요시, <수집 이야기>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