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딴지총수 김어준의 첫 책.
<한겨레> ESC '그까이꺼 아나토미‘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연재한상담을 묶은 책. 매일매일 직면하는 선택의 순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20,30대 젊은이들을 위한 딴지총수 김어준의 진심어린 상담.
우리 사회의 엄숙주의, 경건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김어준의 독설이 이번에는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김어준은 이 책에서 상담자들이 질문을 하면서도 교묘하고 숨기는 진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문제의 핵심을 드러낸다. 때문에 독설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답은 기본적으로 진지하고, 성실하다(그리고, 상담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겨레 아나토미 연재 시 밀려들었던 댓글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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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벌써 나이 서른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학과 대학원 졸업하고 연구원으로 벤처기업에서 일한지 1년 8개월. 고등학교 때는 공대가 나랑 잘 맞는 줄 알았고, 또 한창 잘나가는 분야이기도 해 돈 벌고 성공하고 싶어 이쪽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깨닫고도 이왕 시작한 거 본전은 뽑자는 심산으로 취업해 2년 버티고 그담에 생각하자 했는데 슬슬 그 시기가 다가오니 일도 싫고 회사에 매일 나가는 것도 답답합니다. 그렇다고 때려치우자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격상 무작정 때려치우면 방콕폐인이 될 게 뻔하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한 마리 동물로서 자신이 생겨먹은 대로의 경향성을 깨닫자
0. 그거 아나. 당신 같은 사람 우리나라에 참, 많다. 나이 서른에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단 사람들, 부지기수다. 사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단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모른다는 거다. 당신 진로를 대신 택해줄 재준 없다. 하지만 후자의 문제라면, 지금부터 뭘 고민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다.
1. 지난 아테네올림픽 때다. 우리 리포터가 풍물 취재로 한 어부를 인터뷰했다. 잡은 생선 중 크고 좋은 놈들 따로 놓는 걸 보고 리포터는 당연하다는 듯 이쪽 상등품은 팔 거냐고 묻자, 어부는 무슨 소리냔 표정으로 먹을 거란다. 왜 값을 더 쳐줄 물건을 팔지 않느냐고 묻자 나머지 판 돈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단다. 좋은 놈들은 와이프랑 먹을 거란다. 행복관이 판이한 게다. 이런 어부, 우리나라엔 없다. 왜. 우린 그렇게 배우질 않는다. 스웨덴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간은 소유욕과 존재욕을 가지는데 소유욕은 경제적 욕망을, 존재욕은 인간과 인간이,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뜻한다고. 그런데 그 존재욕을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건 병적 사회라고. 공교육이 처음 가르치는 게 그런 거다. 사회 시스템 역시 그 가치관에 기초해 구축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건 그렇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그 기본 태도에 관한 입장이어야 한다. 우린 그런 거 안 배운다. 대신 성공은 곧 돈이라는 거. 돈 없으면 무시당한다는 거. 그 경쟁에서의 낙오는 인생 실패를 의미한단 거. 그렇게 경제논리로 일관된 협박과 회유로 훈육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초식동물처럼 산다. 초식동물의 군집은 가장 뒤처지는 놈이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 나머지의 안전이 잠정 담보되는 시스템이다. 거기에 공적 신뢰 따윈 없다. 결국 끝줄에 서지 않으려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는 왜소하고 불안한 낱개들만 남을 뿐.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시도할 겨를도 없고 엄두도 안 날밖에. 우리네 평균적 삶이 그렇다. 여기까진 위로다. 갈피를 못 잡는 건 당신만이 아니란 거다.
2. 그러니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건지는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게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인간인지부터 아는 거다. 언제 기쁘고 언제 슬픈지. 무엇에 감동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뭘 견딜 수 있고 뭘 견딜 수 없는지. 세상의 규범에 어디까지 장단 맞춰줄 의사가 있고 어디서부턴 콧방귀도 안 뀔 건지. 그렇게 자신의 등고선과 임계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윤곽과 경계가 파악된 자신 중, 추하고 못나고 인정하기 싫은 부분까지, 나의 일부로,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전혀 멋지지 않은 나도 방어기제의 필터링 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는 지점, 그런 지점을 지나게 되면 이제 한 마리 동물로서 자신이 생겨먹은 대로의 경향성, 그런 경향성의 지도가 만들어진다.
거기서부턴 더 이상 자신에 대해 관심이 없어진다. 더 이상 자기합리화나 삶에 대한 하찮은 변명 따위에 에너지 소모하는 일, 없어진단 이야기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에너지는 생겨먹은 대로의 나를 세상 속에서 구현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눈치 보거나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다음부턴 쉽다. 꿈이니 야망이니 거창한 단어에 주눅 들거나 현혹되거나 지배당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곳들, 만나보고 싶은 자들 따위의 리스트를 만들라. 그리고 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라. 사람이 왜 사느냐. 그 리스트를 지워가며 삶의 코너코너에서 닥쳐오는 놀라움과 즐거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만끽하려 산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건투를 빈다.
P. S. 행복에 이르는 방도의 가짓수가 적을수록 후진국이다. 747을 못 이룬 나라가 아니라.
Q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제가 하찮은 사람 같아요
1년 재수해 올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중·고등 시절엔 공부 잘한다, 모범생이구나, 소리에 항상 우쭐했고 얼떨결에 특목고로 진학해 가족들 기대는 더 커졌습니다. 거기서도 열심히 공부했고 완벽한 모범생이었죠. 가끔 내가 뭘 위해서 이러는가 생각도 들었지만 내 꿈을 위해서라고 되뇌었습니다. 큰 기대 속에 치른 첫 번째 수능에 실패해 실망하는 소리를 약간 듣긴 했지만 다시 큰 기대 속에 재수 시작, 다시 실패. 지금은 가족들이 생각했던 명문대와는 거리가 먼 대학에 입학해 다니고 있습니다. 삼수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다시는 그런 고생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래서 이 학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복수전공도 하면 된다 싶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 친척, 선생님, 주변 사람들의 실망에 힘이 듭니다. 이젠 두렵기까지 합니다. 내가 하찮은 사람 같고, 계속 누군가를 의식하게 되고 마음에 들게, 칭찬받게 행동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
1. 엉아 맴이 아프다. 웬만해선 남의 일로 마음 안 아파주시는 성정인데 말이다. 왜냐. 당신은 영문도 모르고 징집되어, 진군가에 홀린 채, 목적도 모르면서, 남의 전장에서 싸우다, 어느 날 낙오해버린, 인생 학도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우리나라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2. 라캉이란 자가 있었다. 정신분석에 기호학적 접근 시도해 업계에선 자기들끼리 쳐주는, 시쳇말로 ‘좀 짱인 듯한’ 프랑스 작자다. 이 양반이 그런 소릴 했다. 아이는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하여간 업자들 말로 가오 잡는 건 알아줘야 한다. 뭔 소리냐. 복잡한 거 다 빼고 말하자면, 아이는 엄마 만족시키려고, 엄마가 원한다 여기는 걸 자신도 원하게 된다는 거다. 이게 골 때리는 게, 내가 뭔가를 원하는 게 엄마가 원하니까 원하는 게 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냥 원하는 건지, 그 구분이 안 가는 거라. 어쨌든 어떤 아이나 거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걸 일반화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했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들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열 받은 건, 그 식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이 남성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인 거라. 여성들이 남성 욕망에 자길 맞춘다는 거지.
여하간 골자는 이렇다. 당신은 여태 부모를 비롯한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당신 인생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게 다 자신의 욕망인 줄 알고. 말하자면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 아이였던 거지. 특히 우리나라는 10대에게 요구하는 게 오로지 학교 성적밖에 없는 야만적인 사회인지라 당신처럼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그 마인드 세트를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 당신이 가끔 내가 뭘 위해 이러나 싶다가도 그 궤도를 한 치도 못 벗어난 건 그래서다. 공부만으로 만사형통이었거든. 그런데 그 영광의 노정을 질주하던 당신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삐끗했다. 우리나라에선 그 노선, 하나밖에 없는 데. 어릴 땐 공부고 커서는 돈이고. 거기서 탈락한 당신에게 일순, 환호는 멈추고 박수는 거둬진다. 버려진 거다. 지금껏 다른 이들의 욕망을 좇아 단일 노선만 달렸던 당신, 공부 이외의 방법으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법도 모른다. 공포가 엄습할밖에. 날 입증할 방도가 사라졌으니. 안절부절. 이젠 칭찬을 구걸이라도 해야 한다. 비굴해지거나 혹은 친절해져서라도. 그렇게라도 누군가의 승인을 따내야 한다. 존재 가치를 그나마 느끼려면. 지금 당신 상태다.
3. 내 생각은 그렇다. 지금의 당신에겐 봉창 타격음이겠지만, 참 다행이다. 지금쯤 실패해서. 회복할 시간이 많아서. 아마 당분간 참담할 게다. 과거 영광과 낮아진 자존감 사이에서 방황도 할 게고. 그러나 그런 비용을 치르고라도 부모 욕망으로부터, 다른 이들의 기대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기회를 얻은 건, 당신 인생 전체로 보자면, 크게 남는 장사다.
물론 부모 욕망에 응답코자 하는 건 모든 아이의 숙명이다. 그리고 거기 부응치 못한 자책감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자도 없고. 거기까진 정상이다. 사실 인간은 평생을 그렇게 누군가의 욕망에 호응하느라 부산하다. 삶 자체가 인정 투쟁이라고. 하지만 모든 건 결국 밸런스의 문제다. 우리나라엔 남의 욕망에 복무하는 데 삶 전체를 다 쓰고 마는 사람들, 자기 공간은 텅텅 빈 사람들, 너무나 많다. 당신만의 노선을 찾고 그리고 거기서 자존감, 되찾으시라.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쉽지도 않다. 하지만 그 길은 당신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다만, 결코 친절해지진 말라는 거. 오히려 이제부턴 차근차근,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거. 남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당신, 하찮은 사람 되는 거 아니다. 반대다. 그렇게 제 욕망의 주인이 되시라. 자기 전투를 하시라. 어느 날, 삶의 자유가, 당신 것이 될지니.
P. S.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Q 지금은 뜨거울 때 아닙니까?
여자친구와 이제 막 100일을 넘겼는데 얼마 전 여자친구가 “구속 좀 하지 마”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녀 말이 제가 너무 구속이 심한 편이라네요. 어떤 점이 그러냐고 물었더니 전화를 너무 자주 하고, 집에 일찍 들어가라고 하고, 심지어 일찍 자라고 하기까지 한다고요. 저는 그냥 관심의 표현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남들도 다 그 정도는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정말 제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 여자친구가 유독 예민한 건지, 제가 정말 남들보다 심하게 구속하는 건지. 사귀면서 이 정도의 구속은 필요한 거 아닌가요? 당장 이런 말을 들으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김지훈, 26세, 학생)
A 사랑은, 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하는 거다
1. 이런 문제에서 절대적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집에 일찍 들어가란 말조차 구속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지 않는다며 헤어지자는 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구속당하는 느낌을 사랑의 방증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신의 징표로 여기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 어느 정도가 구속이냐고, 이 정도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나한테 하소연해봐야 소용없다. 구속과 관심을 구분 짓는 ISO 인증 국제표준화기구 같은 거, 없다.
그러니 그녀가 구속이라고 느끼면 그건 구속이다. 이게 중요하다. 그녀 기준으로 그렇다면 그렇다는 거. 억울할 수 있겠지. 허나 당신이 직접 짝으로 선택한 그녀 기준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다만 이런 문제는 쌓이면 스트레스가 되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 있으니, 사전에 합의 보시라. 우선 당신 스스로 어디까지가 구속이고, 어느 정도가 관심의 표현인지 그 기준을 생각해보고 그녀에게 차분하게 설명해주시라.
여기서 다시 한 번 중요한 거, 결코, 설득하려고 하진 마시라. 그걸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그녀 맘이다. 그녀도 그게 구속이 아니라 느껴지면, 그럼 요구하지 않아도 수용한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2. 연인, 남이다. 연인이 남이라는 걸, 이 기본적인 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참 많다. 그들은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건 사랑이 부족해서라고, 울부짖는다. 이런 자들과 놀면 안 된다.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이런 자들은, 사랑과 폭력을 구분할 줄 모른다. 사랑이란 모든 걸 내 뜻대로 할 수 있어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건만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