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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2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3 0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디어 첫 책이 나왔다!

어지간히 마음 고생을 한 탓에 모두가 건넨 축하한다는 말에 흔쾌한 마음이 되지 못했다.그렇게 고생 고생하며 나와야 할 책이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아니었더라면 훨씬 쉽고 빨리 나왔을 것 같아서회사에 대한 죄책감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그런 게 먼저 솟구쳤다이렇게 고생하고 나온 책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어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면, 이 책을 받아들고서 참 예쁘다, 참 대견하다, 스스로에게 참 고생했다고 말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상쇄될 수 있으련만.. 그러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건, 이 책의 품질에 자신이 없어서는 절대 아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나 역시 우정과 친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절친한 친구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재 자체는 극적이지만 이들이 쌓아온 우정의 얼굴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 우리에게도 낯이 익다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난 우정이란 동 시대를, 비슷한 공간을 살아가느라 '너도 거기서 나처럼 살고 있는 거지?' 마음으로 묻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책임 지고 책임 지우는 가족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나약함이나 현실적 곤란함을 친구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테니까. 어떻게든 그걸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테니까. 약간의 시차와 사안의 경미한 차이가 있을 뿐.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그는 남은 가족에게 투정 한 번 부리지 않는다. 투정을 부린다고 안 받아줬을 가족이 아니겠건만, 가족은 그런 것이다대신 그는 친구에게 자신이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할 근심을 털어놓는다. 아무것도 안 먹는 남편에게 밀크셰이크를 만들어 가져다 주고서 먹지 못해서 어쩌냐고 대놓고 걱정하는 대신, 내가 애써 만들어주었는데 왜 안 먹느냐며 투정부리듯 눙쳐야 한다는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가족 행동 지침이다. 하지만 어두운 밤이 되면 슬프고 외롭고 불안한 마음을 그는 친구에게 흐느끼며 털어놓는다. "내년에도 내가 살아있을 수 있을까?" 하며

하지만 이런 친구가 거저 얻어질 리가 없다. 이 책 속의 두 주인공은 다섯 살에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다. 한 친구가 죽은 나이는 쉰 여섯. 무려 50년 넘는 추억을 함께했다. 자신과 친구를 구별하지 못하고 구별할라치면 배신이라고 받아들이며 일탈과 반항조차 공유하는 10대의 우정을 지나, 두 사람이 전혀 다르게 존재하는 두 객체라는 것을 힘겹게 받아들이는 스물 초입, 그리고 각자의 사랑과 일에 매몰되어 우정 따위는 잊고 지내는 3, 40.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런 세월을 함께하지 않는 한, 그들의 애틋한 우정이란 없었으리라

나는 열여덟 무렵, 다른 대학에 진학하면서 밥이 잭을 따라 대학 신입생 절차를 밟으러 가는 길에 둘 사이를 어색하게 가로지르던 침묵이 바로 우정이라고 생각한다우리는 이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고 인정하는 순간 친구관계가 깨지기라도 할 듯 조심스레 유지하는 그 침묵의 시간. 친구라는 건 어느 정도 배제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내가 너를 인정하고, 네가 나를 인정하는 순간 우정은 완성된다. 밥은 잭을 떠나보내기까지 9개월 동안 그걸 했다고 생각한다. 네가 아프지만 그 아픔을 너처럼 아파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만약 우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관계 가운데 가장 완전에 가까운 것이라면 나는 그 점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떠나 보낸 밥은 그런 우정을 축복한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아무리 어려운 일도 서슴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건, 친구가 타인이기 때문이다.              

                                                                2008.12.18

푸른숲 편집부 기획팀 양화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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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저 결혼해요!”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눈이 번쩍 뜨여서 바로 클릭을 했다. 최동헌이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 아들도 아닌데 그가 결혼한다는 사실이 왜 이리 흐뭇한지, 후훗...... 최동헌이 누구냐면? 객관적으로는 내가 만든 책 《교과서보다 쉬운 세포 이야기》의 번역자다. 주관적으로는 ‘내가 발굴한 번역자’쯤 될까?

내가 푸른숲에 입사한 2002년, 그러니까 청소년팀이 막 생겨났던 그때는 모든 것이 참 막막했다. 청소년 도서 시장이란 말조차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았던 시절..... 중학교 국어 교사 경력 몇 해, 중학교 월간지 경력 몇 해가 이력의 전부인 나에게 단행본 시장, 그중에서도 청소년 책 시장은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처럼 아득하게만 와 닿았다. 그 당시 팀원 없이 혼자서 일하는 독립군이었던 나는 외서 검토를 맡길 데조차 변변히 없어서 별의별 궁리를 다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갖은 궁리 끝에 각 대학교의 홈페이지로 들어가 게시판에 외서 검토자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예상 외로 수많은 이력서가 모여들었고, 그중에서 몇몇 사람을 추려서 외서 검토를 맡겼다. 그리고 또다시 언어권별로 몇 사람이 추려졌다. 최동현은 일본어권에서 추려지고 남은 두 사람 중 하나였다. 

유전 공학과 일본어를 복수 전공한 대학 4학년생. 그야말로 파릇파릇한 풋내가 온몸에서 풍겨나오는 청년이었다. 외서를 몇 차례 검토하더니, 나중에는 스스로 아마존을 누비며 청소년 책을 골라 오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우리 회사에 나와서 빈자리를 옮겨 다니며 검색을 하기도 했다. 《교과서보다 쉬운 세포 이야기》역시 그가 그렇게 해서 고른 책이었다. 준 푸른숲 직원임을 자처하면서 넉살좋게 웃던 그에게 나는 망설임 없이 《교과서보다 쉬운 세포 이야기》의 번역을 맡겼다.

 

 

 

 

 

내가 발굴한 번역자가 발굴해내서 만든 책, 
《교과서보다 쉬운 세포 이야기》

 

황무지를 개척(?)하느라 무지무지 힘들었지만 참 행복하게 일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댄 채 긴 시간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모으는 것. 지금 의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그 역시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무언가에 몰입해서 자기 안의 모든 것을 쏟아 붓던 시절의 기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것은 때로 삶의 충전기가 되어, 어려운 일이 닥쳐 한없이 바닥으로 까라질 때 다시 힘을 일깨워 주곤 한다. 

내게 책은 그런 것 같다.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호흡, 그 호흡이 가져다주는 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친다. 그들이 호흡의 한 박자를 놓치는 순간, 긴 시간 공들여 온 모든 것이 일시에 어그러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할 때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방점을 찍는다. 책을 만들 때 같이 일하는 사람은 참 많다. 저자나 역자, 화가 외에도 책의 꼴을 갖춰 가는 데 각각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디자인팀, 제작팀, 마케팅팀, 홍보팀 모두 한마음이 되어야 지향하는 곳으로 곧바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책을 만들 때마다 과정 과정에서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려고(?) 나름 무척 애를 쓴다.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제대로 된 책을 만드는 기본이자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그들의 마음을 얻고 나면 참 든든하다. 굳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는 대목이 많아지니까. 

‘어떻게든’ 앞에서 살짝 비굴해지는 건... 고백하자면 밥을 사 주겠다는 말을 여기저기 무지하게 날리고 다니기 때문에 가슴 한구석이 살짝 뜨끔해져서이다. 하지만 그 말이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한다. 주머니가 텅텅 비는 한이 있어도 인심(人心)만큼은 놓쳐선 안 되겠기에.....

나의 꿈은? 내가 “바담 풍” 했을 때 “바람 풍인데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지 않고 단박에 ‘바람 풍’으로 알아듣는 사람들과 함께 책을 만드는 것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최동헌이다.
“팀장님, 내일 여자 친구랑 놀러갈게요. 밥 사주세요.”
나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오케이를 날린다. 이렇듯 웃을 수 있게 해 주는 그에게 감사한다.



 푸른숲 편집부 청소년팀 팀장 책쟁이

"나는 욕심이 많다. 책을 만들 때마다 뼛속까지 샅샅이 훑어서 온 힘을 짜내어 들이부어야 속이 시원하다 그래야 이 세상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내 욕심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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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우들이 꼽는 잇(it) 브랜드

'제너럴 아이디어‘
 디자이너 최범석의 머릿속을 훔치다

폴더명: 최범석의 I.D.E.A.
패스워드: 패션을 향한 순수한 열망, 그리고 거침없는 패기

패션계의 핫 아이콘이자 악동, 끊임없이 진화하는 디자이너 최범석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전통적인 디자이너들이 모델이나 배우의 뒤에 숨어 그의 스타일을 완성해주는 데 그친 데 반해, 디자이너 최범석은 그 자신이 ‘제너럴 아이디어’를 상징하는 모델이자 자신의 꿈을 끊임없이 추동해나가는 21세기형 디자이너다. 동대문에서 시작해 파리 백화점까지 진출한 그의 이력은 맨손으로 바닥부터 시작하는 이들에게 많은 희망을 안겨준 바 있다. 강백호와 서태웅의 매력을 동시에 지닌 사람, 순수하게 디자인과 패션 자체를 즐기지만, 자신의 옷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싶은 야망을 숨기지 않는 남자. 그 남자의 머릿속엔 무엇이 들었을까?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디자인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디자인의 영감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은 디자이너 최범석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패션이라는 문화와 꿈의 시작이 되었던 빈티지의 세계, 디자인의 영감을 공급하는 혈관 팝아트, 뉴욕의 모마, 뉴뮤지엄, 아모리쇼(현대미술 박람회) 등 나와 다른 사고의 네비게이터를 발견하는 미술관 등 디자인의 영감이 샘솟는 근원들을 보여준다. 또한 마크 제이콥스와 안나 수이를 만나는 뉴욕 컬렉션 런웨이, 여행, 파티, 클럽 등 젊음과 놀이가 에너지가 창조로 이어지는 현장 등을 통해 패션을 호흡하며 사는 열혈 디자이너의 디자인 스피릿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머리로 먼저 디자인하라’‘옷이 있는 공간 전부로 승부하라’‘상상의 가지치기’ 등 원단과 호흡하며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현장 디자이너의 실질적인 충고가 들어 있다는 점. 더 나아가 이 책은 패션이 라이프스타일이자 자기 표현의 도구인 오늘날 이삼십 대에게 꿈과 자극, 영감을 제공하는 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본문 속으로

Inspiration- 영감(Inspiration)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Designer- 프로 디자이너(Designer)는 자신의 삶을 디자인한다
Entertain- 즐겨야(Entertain) 보인다
Action- 네 꿈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여라(Action)


-디자인에는 검정 띠가 없다. 어떤 수준에 도달했다 해서 노력과 시도를 멈추어선 안 된다. 즐거운 호기심과 용감한 시도가 없으면 디자이너는 사망. 새로운 맛이 궁금한 사람만이 새로운 맛을 찾을 수 있고, 결국 몸을 움직여 새로운 요리를 해보는 사람만이 새로운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이 만들어볼수록 점점 더 잘 만들게 된다.

-‘난 시대를 좀 앞서가서 사람들이 내 디자인을 좀 어려워해.’ 내 주위엔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그런데 그들이 간과한 게 뭔지 알아? 디자인은 그 시장에 맞는 것을 만들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거라는 점이야.

-전 세계 남자들의 운동 습관까지 바꾸다니! 유럽, 미국, 아시아의 수많은 남자들이 디오르의 옷을 소화해보겠다고 운동 습관을 바꿔가며 근육을 줄이고 있다. 디자이너의 파워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디자이너는 이처럼 세상을 바꾸고 시장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나도 더 넓은 시장과 소통하고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옷을 디자인하고 싶다.

-나는 자리가 없어 맨 앞쪽 계단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조명이 암전되면서 천둥소리가 났다. 관객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저기 길 건너편에는 햇빛이 쏟아지고 있는데,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퍼붓더니 도로를 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게 살수차가 있던 이유였다. 갑자기 건너 편 창고에서 모델들이 워킹을 시작했다. 그 옆으로 어떤 이들은 떠들며 우산을 쓰고 가고, 어떤 이는 비 맞은 개와 함께 지나갔다. 우산 하나를 같이 쓴 세 명의 여자들도 지나갔다. 정말, 비 오는 날 거리에서 만날 법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나는 그 상상력과 과감함에 감동했다. 내가 본 쇼 중 연출 베스트 10 안에 들 것이다. 음악 대신 비라니! 하지만 그날의 감동은 저녁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아이디어가 부족한 게 아닐까 괴로워해야 했다. 나도 이처럼 다른 이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는 컬렉션을 꼭 하리라.

-파이(Phi) 컬렉션에서는 우연히 앞줄에 앉은 사람들의 신발을 보게 되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마크 제이콥스, 랑방 등 여러 상표의 신발들이 보였다. 컬렉션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멋스러운 구두를 신는 편이다. 그런데 내 앞에 불쑥 캔버스 운동화가 보였다. 신선했다. 컬렉션에 올 때는 거의 다 멋을 부린다. 나도 그렇다. 컬렉션에서 트렌드를 읽고 아이디어를 얻는 것 못지않게 컬렉션에 오는 사람들의 차림새와 멋에서 신선한 룩을 배울 때가 많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컬렉션에 처음 온 에디터들은 말 그대로 ‘첫 출장’ 느낌이 난다는 점이다. 옷을 잘 차려입었다기보다 신경을 많이 쓴 냄새가 난다. 반면 오래된 에디터들은 빨리 일을 끝내고 어디 좋은 레스토랑이나 가서 맛난 것을 먹어야지, 하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들은 많이 꾸미지도 않고 그냥 편하게 입고 온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컬렉션에 올 땐 좀 더 신경을 쓰긴 한다.

-안나 수이의 컬렉션을 본 첫 느낌은 헤어 쇼 같다는 것이다. 옷은 전체적으로 블랙 계열이고 무거운 컬러를 많이 썼다. 가발이 각양각색이라 시선이 너무 헤어로 집중됐다. 컬렉션을 준비할 때 옷에 포인트가 많으면 헤어나 메이크업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하고, 옷이 단순하면 액세서리나 헤어, 메이크업으로 포인트를 주는 게 완성도를 높이는 길이다. 안나 수이 컬렉션은 요소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마지막 점검을 디자이너가 직접 하지 않은 걸까?

-그런데 쇼 시작 전에 마크가 뛰어나왔다. 그리고 인사를 한다. 순간 나는 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아! 피날레를 먼저 하는구나, 이거 전에 여러 번 했는데. 역시나. 모델들이 줄을 맞춰서 피날레로 쇼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한 벌씩 입고 나오며 쇼가 끝났다. 그것도 모두 짜증이 묻어 있는 얼굴이었다. 이건 뭐, 켄터키 할머니들이 흐린 봄날 차 마시러 가는 것 같은 쇼였다. 음악은 정말 좀 심했다. 꼭 미국 국가 같았다. 쇼를 보는 내내 다른 사람들의 표정 역시 그다지 감동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이건 아닌데, 하는 표정이었다.



저자 소개
최범석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스물한 살 나이에 동대문 시장에서 원단 장사를 하며 바닥부터 디자인을 배웠다. 이후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다'는 의미의 브랜드 ‘Mu’를 론칭해서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2003년 봄, 우연히 참관한 파리 컬렉션에서 옷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해 10월, 브랜드 ‘General Idea by Bumsuk’을 설립, 3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파리 프렝탕 백화점, 르 봉 마르쉐 백화점 등에 ‘제너럴 아이디어’ 매장을 오픈했다.
현재 대한민국 젊은 남성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 그는 지금 다시 한 번 세계 패션과 만나기 위해, 2009년 2월에 열리는 뉴욕 컬렉션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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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총수 김어준의 첫 책.


  <한겨레> ESC '그까이꺼 아나토미‘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연재한상담을 묶은 책. 매일매일 직면하는 선택의 순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20,30대 젊은이들을 위한 딴지총수 김어준의 진심어린 상담.

 우리 사회의 엄숙주의, 경건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김어준의 독설이 이번에는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김어준은 이 책에서 상담자들이 질문을 하면서도 교묘하고 숨기는 진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문제의 핵심을 드러낸다. 때문에 독설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답은 기본적으로 진지하고, 성실하다(그리고, 상담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겨레 아나토미 연재 시 밀려들었던 댓글이 이를 증명한다).

본문 미리보기
Q 벌써 나이 서른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학과 대학원 졸업하고 연구원으로 벤처기업에서 일한지 1년 8개월. 고등학교 때는 공대가 나랑 잘 맞는 줄 알았고, 또 한창 잘나가는 분야이기도 해 돈 벌고 성공하고 싶어 이쪽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깨닫고도 이왕 시작한 거 본전은 뽑자는 심산으로 취업해 2년 버티고 그담에 생각하자 했는데 슬슬 그 시기가 다가오니 일도 싫고 회사에 매일 나가는 것도 답답합니다. 그렇다고 때려치우자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격상 무작정 때려치우면 방콕폐인이 될 게 뻔하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한 마리 동물로서 자신이 생겨먹은 대로의 경향성을 깨닫자
0. 그거 아나. 당신 같은 사람 우리나라에 참, 많다. 나이 서른에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단 사람들, 부지기수다. 사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단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모른다는 거다. 당신 진로를 대신 택해줄 재준 없다. 하지만 후자의 문제라면, 지금부터 뭘 고민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다.

1. 지난 아테네올림픽 때다. 우리 리포터가 풍물 취재로 한 어부를 인터뷰했다. 잡은 생선 중 크고 좋은 놈들 따로 놓는 걸 보고 리포터는 당연하다는 듯 이쪽 상등품은 팔 거냐고 묻자, 어부는 무슨 소리냔 표정으로 먹을 거란다. 왜 값을 더 쳐줄 물건을 팔지 않느냐고 묻자 나머지 판 돈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단다. 좋은 놈들은 와이프랑 먹을 거란다. 행복관이 판이한 게다. 이런 어부, 우리나라엔 없다. 왜. 우린 그렇게 배우질 않는다. 스웨덴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간은 소유욕과 존재욕을 가지는데 소유욕은 경제적 욕망을, 존재욕은 인간과 인간이,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뜻한다고. 그런데 그 존재욕을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건 병적 사회라고. 공교육이 처음 가르치는 게 그런 거다. 사회 시스템 역시 그 가치관에 기초해 구축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건 그렇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그 기본 태도에 관한 입장이어야 한다. 우린 그런 거 안 배운다. 대신 성공은 곧 돈이라는 거. 돈 없으면 무시당한다는 거. 그 경쟁에서의 낙오는 인생 실패를 의미한단 거. 그렇게 경제논리로 일관된 협박과 회유로 훈육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초식동물처럼 산다. 초식동물의 군집은 가장 뒤처지는 놈이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 나머지의 안전이 잠정 담보되는 시스템이다. 거기에 공적 신뢰 따윈 없다. 결국 끝줄에 서지 않으려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는 왜소하고 불안한 낱개들만 남을 뿐.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시도할 겨를도 없고 엄두도 안 날밖에. 우리네 평균적 삶이 그렇다. 여기까진 위로다. 갈피를 못 잡는 건 당신만이 아니란 거다.

 2. 그러니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건지는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게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인간인지부터 아는 거다. 언제 기쁘고 언제 슬픈지. 무엇에 감동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뭘 견딜 수 있고 뭘 견딜 수 없는지. 세상의 규범에 어디까지 장단 맞춰줄 의사가 있고 어디서부턴 콧방귀도 안 뀔 건지. 그렇게 자신의 등고선과 임계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윤곽과 경계가 파악된 자신 중, 추하고 못나고 인정하기 싫은 부분까지, 나의 일부로,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전혀 멋지지 않은 나도 방어기제의 필터링 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는 지점, 그런 지점을 지나게 되면 이제 한 마리 동물로서 자신이 생겨먹은 대로의 경향성, 그런 경향성의 지도가 만들어진다.
 거기서부턴 더 이상 자신에 대해 관심이 없어진다. 더 이상 자기합리화나 삶에 대한 하찮은 변명 따위에 에너지 소모하는 일, 없어진단 이야기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에너지는 생겨먹은 대로의 나를 세상 속에서 구현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눈치 보거나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다음부턴 쉽다. 꿈이니 야망이니 거창한 단어에 주눅 들거나 현혹되거나 지배당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곳들, 만나보고 싶은 자들 따위의 리스트를 만들라. 그리고 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라. 사람이 왜 사느냐. 그 리스트를 지워가며 삶의 코너코너에서 닥쳐오는 놀라움과 즐거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만끽하려 산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건투를 빈다.

P. S. 행복에 이르는 방도의 가짓수가 적을수록 후진국이다. 747을 못 이룬 나라가 아니라.

Q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제가 하찮은 사람 같아요
1년 재수해 올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중·고등 시절엔 공부 잘한다, 모범생이구나, 소리에 항상 우쭐했고 얼떨결에 특목고로 진학해 가족들 기대는 더 커졌습니다. 거기서도 열심히 공부했고 완벽한 모범생이었죠. 가끔 내가 뭘 위해서 이러는가 생각도 들었지만 내 꿈을 위해서라고 되뇌었습니다. 큰 기대 속에 치른 첫 번째 수능에 실패해 실망하는 소리를 약간 듣긴 했지만 다시 큰 기대 속에 재수 시작, 다시 실패. 지금은 가족들이 생각했던 명문대와는 거리가 먼 대학에 입학해 다니고 있습니다. 삼수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다시는 그런 고생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래서 이 학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복수전공도 하면 된다 싶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 친척, 선생님, 주변 사람들의 실망에 힘이 듭니다. 이젠 두렵기까지 합니다. 내가 하찮은 사람 같고, 계속 누군가를 의식하게 되고 마음에 들게, 칭찬받게 행동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
1. 엉아 맴이 아프다. 웬만해선 남의 일로 마음 안 아파주시는 성정인데 말이다. 왜냐. 당신은 영문도 모르고 징집되어, 진군가에 홀린 채, 목적도 모르면서, 남의 전장에서 싸우다, 어느 날 낙오해버린, 인생 학도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우리나라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2. 라캉이란 자가 있었다. 정신분석에 기호학적 접근 시도해 업계에선 자기들끼리 쳐주는, 시쳇말로 ‘좀 짱인 듯한’ 프랑스 작자다. 이 양반이 그런 소릴 했다. 아이는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하여간 업자들 말로 가오 잡는 건 알아줘야 한다. 뭔 소리냐. 복잡한 거 다 빼고 말하자면, 아이는 엄마 만족시키려고, 엄마가 원한다 여기는 걸 자신도 원하게 된다는 거다. 이게 골 때리는 게, 내가 뭔가를 원하는 게 엄마가 원하니까 원하는 게 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냥 원하는 건지, 그 구분이 안 가는 거라. 어쨌든 어떤 아이나 거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걸 일반화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했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들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열 받은 건, 그 식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이 남성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인 거라. 여성들이 남성 욕망에 자길 맞춘다는 거지.
 여하간 골자는 이렇다. 당신은 여태 부모를 비롯한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당신 인생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게 다 자신의 욕망인 줄 알고. 말하자면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 아이였던 거지. 특히 우리나라는 10대에게 요구하는 게 오로지 학교 성적밖에 없는 야만적인 사회인지라 당신처럼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그 마인드 세트를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 당신이 가끔 내가 뭘 위해 이러나 싶다가도 그 궤도를 한 치도 못 벗어난 건 그래서다. 공부만으로 만사형통이었거든. 그런데 그 영광의 노정을 질주하던 당신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삐끗했다. 우리나라에선 그 노선, 하나밖에 없는 데. 어릴 땐 공부고 커서는 돈이고. 거기서 탈락한 당신에게 일순, 환호는 멈추고 박수는 거둬진다. 버려진 거다. 지금껏 다른 이들의 욕망을 좇아 단일 노선만 달렸던 당신, 공부 이외의 방법으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법도 모른다. 공포가 엄습할밖에. 날 입증할 방도가 사라졌으니. 안절부절. 이젠 칭찬을 구걸이라도 해야 한다. 비굴해지거나 혹은 친절해져서라도. 그렇게라도 누군가의 승인을 따내야 한다. 존재 가치를 그나마 느끼려면. 지금 당신 상태다.
3. 내 생각은 그렇다. 지금의 당신에겐 봉창 타격음이겠지만, 참 다행이다. 지금쯤 실패해서. 회복할 시간이 많아서. 아마 당분간 참담할 게다. 과거 영광과 낮아진 자존감 사이에서 방황도 할 게고. 그러나 그런 비용을 치르고라도 부모 욕망으로부터, 다른 이들의 기대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기회를 얻은 건, 당신 인생 전체로 보자면, 크게 남는 장사다.
 물론 부모 욕망에 응답코자 하는 건 모든 아이의 숙명이다. 그리고 거기 부응치 못한 자책감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자도 없고. 거기까진 정상이다. 사실 인간은 평생을 그렇게 누군가의 욕망에 호응하느라 부산하다. 삶 자체가 인정 투쟁이라고. 하지만 모든 건 결국 밸런스의 문제다. 우리나라엔 남의 욕망에 복무하는 데 삶 전체를 다 쓰고 마는 사람들, 자기 공간은 텅텅 빈 사람들, 너무나 많다. 당신만의 노선을 찾고 그리고 거기서 자존감, 되찾으시라.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쉽지도 않다. 하지만 그 길은 당신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다만, 결코 친절해지진 말라는 거. 오히려 이제부턴 차근차근,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거. 남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당신, 하찮은 사람 되는 거 아니다. 반대다. 그렇게 제 욕망의 주인이 되시라. 자기 전투를 하시라. 어느 날, 삶의 자유가, 당신 것이 될지니.


P. S.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Q 지금은 뜨거울 때 아닙니까?

여자친구와 이제 막 100일을 넘겼는데 얼마 전 여자친구가 “구속 좀 하지 마”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녀 말이 제가 너무 구속이 심한 편이라네요. 어떤 점이 그러냐고 물었더니 전화를 너무 자주 하고, 집에 일찍 들어가라고 하고, 심지어 일찍 자라고 하기까지 한다고요. 저는 그냥 관심의 표현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남들도 다 그 정도는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정말 제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 여자친구가 유독 예민한 건지, 제가 정말 남들보다 심하게 구속하는 건지. 사귀면서 이 정도의 구속은 필요한 거 아닌가요? 당장 이런 말을 들으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김지훈, 26세, 학생)


A 사랑은, 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하는 거다
1. 이런 문제에서 절대적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집에 일찍 들어가란 말조차 구속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지 않는다며 헤어지자는 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구속당하는 느낌을 사랑의 방증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신의 징표로 여기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 어느 정도가 구속이냐고, 이 정도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나한테 하소연해봐야 소용없다. 구속과 관심을 구분 짓는 ISO 인증 국제표준화기구 같은 거, 없다.
그러니 그녀가 구속이라고 느끼면 그건 구속이다. 이게 중요하다. 그녀 기준으로 그렇다면 그렇다는 거. 억울할 수 있겠지. 허나 당신이 직접 짝으로 선택한 그녀 기준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다만 이런 문제는 쌓이면 스트레스가 되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 있으니, 사전에 합의 보시라. 우선 당신 스스로 어디까지가 구속이고, 어느 정도가 관심의 표현인지 그 기준을 생각해보고 그녀에게 차분하게 설명해주시라.
여기서 다시 한 번 중요한 거, 결코, 설득하려고 하진 마시라. 그걸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그녀 맘이다. 그녀도 그게 구속이 아니라 느껴지면, 그럼 요구하지 않아도 수용한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2. 연인, 남이다. 연인이 남이라는 걸, 이 기본적인 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참 많다. 그들은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건 사랑이 부족해서라고, 울부짖는다. 이런 자들과 놀면 안 된다.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이런 자들은, 사랑과 폭력을 구분할 줄 모른다. 사랑이란 모든 걸 내 뜻대로 할 수 있어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건만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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