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저 결혼해요!”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눈이 번쩍 뜨여서 바로 클릭을 했다. 최동헌이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 아들도 아닌데 그가 결혼한다는 사실이 왜 이리 흐뭇한지, 후훗...... 최동헌이 누구냐면? 객관적으로는 내가 만든 책 《교과서보다 쉬운 세포 이야기》의 번역자다. 주관적으로는 ‘내가 발굴한 번역자’쯤 될까?
내가 푸른숲에 입사한 2002년, 그러니까 청소년팀이 막 생겨났던 그때는 모든 것이 참 막막했다. 청소년 도서 시장이란 말조차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았던 시절..... 중학교 국어 교사 경력 몇 해, 중학교 월간지 경력 몇 해가 이력의 전부인 나에게 단행본 시장, 그중에서도 청소년 책 시장은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처럼 아득하게만 와 닿았다. 그 당시 팀원 없이 혼자서 일하는 독립군이었던 나는 외서 검토를 맡길 데조차 변변히 없어서 별의별 궁리를 다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갖은 궁리 끝에 각 대학교의 홈페이지로 들어가 게시판에 외서 검토자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예상 외로 수많은 이력서가 모여들었고, 그중에서 몇몇 사람을 추려서 외서 검토를 맡겼다. 그리고 또다시 언어권별로 몇 사람이 추려졌다. 최동현은 일본어권에서 추려지고 남은 두 사람 중 하나였다.
유전 공학과 일본어를 복수 전공한 대학 4학년생. 그야말로 파릇파릇한 풋내가 온몸에서 풍겨나오는 청년이었다. 외서를 몇 차례 검토하더니, 나중에는 스스로 아마존을 누비며 청소년 책을 골라 오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우리 회사에 나와서 빈자리를 옮겨 다니며 검색을 하기도 했다. 《교과서보다 쉬운 세포 이야기》역시 그가 그렇게 해서 고른 책이었다. 준 푸른숲 직원임을 자처하면서 넉살좋게 웃던 그에게 나는 망설임 없이 《교과서보다 쉬운 세포 이야기》의 번역을 맡겼다.
내가 발굴한 번역자가 발굴해내서 만든 책,
《교과서보다 쉬운 세포 이야기》
황무지를 개척(?)하느라 무지무지 힘들었지만 참 행복하게 일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댄 채 긴 시간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모으는 것. 지금 의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그 역시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무언가에 몰입해서 자기 안의 모든 것을 쏟아 붓던 시절의 기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것은 때로 삶의 충전기가 되어, 어려운 일이 닥쳐 한없이 바닥으로 까라질 때 다시 힘을 일깨워 주곤 한다.
내게 책은 그런 것 같다.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호흡, 그 호흡이 가져다주는 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친다. 그들이 호흡의 한 박자를 놓치는 순간, 긴 시간 공들여 온 모든 것이 일시에 어그러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할 때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방점을 찍는다. 책을 만들 때 같이 일하는 사람은 참 많다. 저자나 역자, 화가 외에도 책의 꼴을 갖춰 가는 데 각각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디자인팀, 제작팀, 마케팅팀, 홍보팀 모두 한마음이 되어야 지향하는 곳으로 곧바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책을 만들 때마다 과정 과정에서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려고(?) 나름 무척 애를 쓴다.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제대로 된 책을 만드는 기본이자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그들의 마음을 얻고 나면 참 든든하다. 굳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는 대목이 많아지니까.
‘어떻게든’ 앞에서 살짝 비굴해지는 건... 고백하자면 밥을 사 주겠다는 말을 여기저기 무지하게 날리고 다니기 때문에 가슴 한구석이 살짝 뜨끔해져서이다. 하지만 그 말이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한다. 주머니가 텅텅 비는 한이 있어도 인심(人心)만큼은 놓쳐선 안 되겠기에.....
나의 꿈은? 내가 “바담 풍” 했을 때 “바람 풍인데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지 않고 단박에 ‘바람 풍’으로 알아듣는 사람들과 함께 책을 만드는 것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최동헌이다.
“팀장님, 내일 여자 친구랑 놀러갈게요. 밥 사주세요.”
나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오케이를 날린다. 이렇듯 웃을 수 있게 해 주는 그에게 감사한다.
푸른숲 편집부 청소년팀 팀장 책쟁이
"나는 욕심이 많다. 책을 만들 때마다 뼛속까지 샅샅이 훑어서 온 힘을 짜내어 들이부어야 속이 시원하다 그래야 이 세상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내 욕심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