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그렇게도 더디게 가던 시간이, 서른을 넘겨 마흔을 지나니 쏜살같이 느껴진다. 나이 먹을 만큼 먹고서도 시간은 여전히 알쏭달쏭한데 하물며 아이들에게야. 하지만 점점 더 ‘시간’이 중요해지는 이때, 시간에 대해 아는 것은 무척 필요하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간은 존재할까? 시간은 절대적인 것일까, 상대적인 것일까? 우리는 과연,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짐짓 철학적인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전 세계가 표준 시간을 만들어 쓴 지는 불과 100년도 채 안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이전에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었을까?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시간의 실체를 파헤치고 그 보이지 않는 질서를 찾으려 노력했다.

이 책은 종교, 문화, 역사, 그리고 과학의 바탕 위에서 저마다의 철학을 가지고 시간을 맞들어 온 인간의 역사를 들려주고 있다. 달력과 시계 속 시간만이 유일하다고 믿는 현대 청소년ㄴ과 어린이들에게 진정 시간이란 무엇이고, 인간은 시간을 어떻게 규정지어 왔으며, 시간이 어떻게 우리 생활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과 세상을 인간의 의지대로 경영하고자 했던 역사와, 그 과정에서 오히려 시간의 종속적인 관계가 되어 버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내심 ‘보이지 않는 질서’라는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문제의식의 무게감을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책은 구체적인 사례들로써 그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주제와 메시지의 무거움을 역사속의 생생한 사례와 친절한 어투로 풀어낸 것이다. 또한 이제껏 어린이 책이 무기로 했던 감성적인 접근을 과감히 버렸다. 총체적이고 인문학적인 접근과 논리적인 전개, 균형잡힌 시각은 어린이 책에서도 정공법이 통한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 더불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생각을 확장시키는 목판화와 시간에 관한 명언들은 이 책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

프랑스 책을 번역 출간하면서 ‘우리가 보는 시간의 역사’를 따로 집필해 부록으로 다룬 점이 돋보인다.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우리 민족의 시간관과, 조선 시대의 눈부신 과학적 업적을 보여주는 해시계와 물시계, 그리고 우리의 환경적 특징을 반영한 역법 등을 소개하는 친절은 이 책에 한 가지의 미덕을 더 보탠다.

그러면서 세계 여러 문화권이 가진 다양한 시간관과 시간 체계들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책의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바를 더 크게 확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책을 어린이/청소년 책이라도 만만히 볼 수만은 없는 건 메시지에서 편집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알차기 때문이다.

“태양은 ‘눈에 보이는 신’이자, ‘세계의 눈’이며,
‘낮의 창조자’이다. 어떤 신도 태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태양은 시간의 근원이다. 행성과 항성들, 자연력,
생명의 신들, 바람과 불의 주인, 그 밖의 모든 신은 태양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브라비시아-푸라나》

한국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선정 위원회 

 <인류의 작은 역사>시리즈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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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전 읽기, 정석은 없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역사 토픽 읽기


지금까지 어린이 역사책 대부분은 크고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위주로 서술해 왔다. 물론 역사의 큰 줄기를 만들어 온 사건과 인물 들을 통해 그 흐름을 파악하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왕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서술한 ‘위로부터의 역사’가 전부는 아니며, 당시 사람들의 삶이 담긴 작은 이야기 또한 역사임을 아는 것 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통한 기록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찾는 시도를 통해 역사를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이 역사책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다. 코에 쭈글쭈글하고 긴 살덩이를 매단 코길이(11쪽), 먹물 통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꺼먼 물소(49쪽), 약주 한잔 걸친 것처럼 얼굴이 발그레한 원숭이(71쪽), 몸뚱이에 솜뭉치를 두른 것 같은 양(96쪽), 열두 띠 짐승들 모습을 모두 지닌 낙타(115쪽) 등 조선 사람들에게 요상하게만 보이는 동물들이 나타나, 사람을 밟아 죽이는 사고를 치고(코길이, 25쪽) 천방지축으로 날뛰어 골머리를 썩게 하고(물소, 56쪽), 시름시름 죽어가 애간장을 태운다(양, 104~106쪽). 그리고 이 낯선 생명체들과 이 땅에서 함께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조선의 생활상과 문화, 사회 구조를 알 수 있게 했다. 일본과의 외교 관계(코끼리, 28~29쪽), 활을 만들기 위해 정책적으로 물소를 수입한 일(물소, 59쪽), 나라의 중요한 제사 때 제사상에 올린 짐승(양, 103쪽) 등의 역사적 사실이 이야기 곳곳에 잘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통해 조선 사회의 요모조모를 읽어 나갈 수 있게 해 준다.


역사를 …… 발견하고, 상상하고, 그리고 탐구한다!
 

코길이가 한성(서울의 옛 이름)땅에 첫발을 디딘 건 1411년 음력 2월 22일, 조선의 3대 왕인 태종 때였어. 왕 앞에 도착한 일본 사신은 머리를 조아리며 이 커다란 선물을 바쳤지.

"불교에서 상서러운 동물이라 일컫는 코길이이옵니다. 우리 국왕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오니 물리치지 마옵소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태종은 떨떠름하게 웃었어. 일본 사신을 물린 뒤, 태종은 신하들을 불러 모았지. (중략)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햇던가......

궁에서 코길이 먹이 때문에 씨름을 하는 동안, 코길이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팔도 사방으로 퍼져 나갔어. 이 소문이 경기도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코길이는 본디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

"한성에 코길이란 짐승이 나타났는데, 몸뚱이는 집채만 하고, 거죽은 환갑이 넘은 늙은이처럼 자글자글 주름살투성이고, 눈은 초승달같이 가늘고, 코는 엄청 길어서 꼭 다리가 다섯 개 같더라니까. 게다가 다리통도 어찌나 굵은지 족히 한 아름은 될 듯싶더구먼."

하지만 충청도를 지나면서 코길이의 모습은 달라지기 시작했지.

"한성에 코길이란 짐승이 나타났대유. 몸뚱이는 남산만 허구, 거죽은 백 살 넘은 노인네처럼 쪼글쪼글 주름살투성이구, 눈은 반달처럼 갸름허구, 다리는 다섯 개나 달렸는디, 코는 다리에 붙어 있다지 뭐예유. 게다가 다리통은 어찌나 굵은지 꼭 아름드리 낭구가 걷는 것 같대유."

전라도에 이르러서는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 짐승이 되고 말았어.

"아, 한성에 시방 쾨길이란 즘생이 나타났는디, 아, 몸집은 겁나게 커서 태산만 허고, 거죽은 천 살 넘은 산신령처럼 짜글짜글 주름살투성이고, 눈구녕은 보름달처럼 둥그렇고, 다리는 다섯 개나 달렸는디, 아, 글씨, 코는 발바닥에 붙어 있다는구만이라. 그라고 다리통은 월매나 굵직한지 꼭 천 년 묵은 낭구가 걷는 것처럼 보였단 말이시." (본문 15-17쪽)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사복시에서 청하기를, 잔나비를 위해 흙집을 짓고, 또 옷을 주어서 입히자 하옵니다. 잔나비처럼 상서롭지 못한 짐승에게 감히 사람의 옷을 입히다니요. 전하, 이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인 줄로 아뢰옵니다. "

"짐이 그리하라 일렀소."

성종의 말 한마디에 주위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지. (중략)

"그렇다면 추위에 떠는 잔나비를 전하께서 모른 척 지나치시는 게 옳다, 이 말씀이오? 사람의 목숨만큼, 짐승의 생명 또한 소중하다는 걸 왜 모르시오." (중략)

"예판 대감 말씀대로 짐승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왜 잔나비에게만 옷을 내리십니까? 말이나 개, 소 등 다른 짐승들도 추위를 타긴 매한가지일 터인데요." (중략)

보다 못한 성종이 "어험!" 하고 큰기침을 했지. 그제야 두 사람은 이야기를 멈추고 성종을 바라보았어.

"연어가 목숨을 걸고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것도, 철새들이 해마다 옛 둥지를 찾아오는 것도 다 자기가 나고 자란 고향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오. 고향을 더나 홀로 이곳에 온 것도 불쌍한데, 추위에 얼어 죽게 할 수는 없지 않겠소." (본문 77~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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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좀 더 긴밀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 한 권의 책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번 달에는 푸른숲의 인물열전, <BIOS 시리즈>를 만나봅니다. 이 시리즈를 기획하신 한예원 사장님의 사무실에 찾아가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교양인의 사장님으로 계신 분입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 어떻게 이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셨는지요.
- 푸른숲에서 평전을 쭉 진행했어요. 발자크 평전, 호치민 평전, 마르크스 평전, 히틀러 평전처럼 두꺼운 평전들이요. 사람을 느껴 보는 작업에 매력을 느꼈구요. 평전을 진행하다가 좀 더 대중적인 것들을 해보자 생각하던 차에, 미국 펭귄사에서 나온 펭귄 Lives 시리즈가 눈이 띄었어요. 펭귄 Lives의 저자들이 다 최고의 학자들이예요. 그리고 나와 있는 책을 보면 알겠지만, 기존 평전과는 약간 다른 인물들이라서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분량도 기존 평전보다는 얇은 편이고. 그래서 기획 회의에 올려서 멤버들끼리 궁금한 사람을 골랐어요. 처음에 시리즈를 시작할 때, 김용석 선생님께 작명을 부탁드렸어요. ‘BIOS'라고 지어주셨는데, 영어로 평전Biography의 줄임말이기도 하고 그리스어로 생명을 뜻한다고 해요.

 

- 평전의 매력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평전을 읽어보면 역사를 알게 되기도 하고,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는 거 같아요. 평전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쨌든 독특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인데, 멀게 보였던 사람들을 가깝게 느낄 수 있고, 뭘 고민했는가를 보면서 그 시대를 같이 겪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구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도 알 수 있고. 그냥 역사책은 거시적이고 한 단면만 보여주는데, 평전은 당시 상황 더 깊이 있게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 <BIOS 시리즈> 목록 중에 ‘말론 브랜도’가 굉장히 튀어요. (웃음) 어떻게 고르셨는지요.
- 관심이 갔어요. (웃음) 영화에서만 보던 사람이니까, 그 사람의 생애에 대해서는 모르니까, 몰라서 알고 싶었어요. 새로운 발견이었죠. 그리고 그 작가가 글을 굉장히 잘 썼죠.


- 프로필을 보면, 작가도 액터즈 스쿨 출신이더라구요.
- 네, 그렇죠. 배우 출신 저널리스트예요.

 

- BIOS 시리즈 소개를 보면 '최고의 인물, 최고의 저자, 최고의 번역자'라고 소개가 되어있던데, 번역자는 어떻게 선정을 하셨어요?
- 원래 쭉 저희랑 작업을 같이 했던 맡아주시던 분들이예요. (웃음) 그렇지만 그 분야에서는 최고라고 이름난 분들이구요. 시리즈 중에 버지니아 울프를 번역하신 안인희 선생님은 발자크 평전을 소개해 주신 분이예요. 발자크 평전이 굉장히 평이 좋았어요. 재미있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이 책을 보고 나서 푸른숲의 팬이 됐다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 문장 자체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나도 한번 그런 문장을 써보고 싶다…’같은 반응들? 그런데 책 자체가 많이 나가지는 않았죠. (웃음)


- 아마도 정치가가 아니어서 그랬나 봐요. 문인이라서.
- 네, 대부분 정치가나 체 게바라 같은 혁명가들을 다룬 평전이 반응이 좋죠. 평전 독자는 대부분 남성 독자니까. 그래서 정치의 기술이나 처세, 권력 투쟁 이야기들을 다룬 책들이 잘 나가죠. 문필가나, 음악가들보다는요.

 

- 문필가나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정치가 이야기보다 덜 재미있는 걸까요.
- 보면 재미있겠지만, 일단 인물 자체에 관심을 갖기까지가 어려우니까요. 평전을 읽으면 절반 앞부분이 재미있어요. 성공하기까지의 스토리이고, 성공 이후는 재미가 없더라구요. (웃음) 보면 좌절 없는 인물은 없어요. 앞의 절반이 그 좌절 극복기이죠. 부모를 일찍 잃는다던가, 불구가 된다던가, 사람에 따라서 실연도 굉장히 큰 좌절이예요. 성공 이후 권력을 가지게 되면 똑같이 못된 짓을 하죠. (웃음) 권력을 휘두르면서 균형 감각을 잃기도 하구요. 어쨌든 그래서 그 앞부분에 동일시하기가 쉬운 거 같아요. 훌륭한 인물이 그 권력을 획득하기까지,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 8권의 책 중에서, 어떤 인물이 가장 애착이 가시는지요.
- 다 관심이 가는데, 붓다 책을 내면서 붓다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원래는 카렌 암스트롱 (BIOS 시리즈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저자) 책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다른 책은 이미 나왔었고, 그래서 이 책으로 처음 작업을 하게 됐지요. 읽어보니까 인간 붓다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불교까지 관심 영역이 확대 되었죠. 그리고 이 책이 분량이 짧아도 내용이 굉장히 풍부해요. 또 붓다가 비유의 달인이잖아요. 자기가 스스로 깨닫고 나서 해주는 이야기들, 심오한 고민들을 간단한 비유로 풀어서 설명해주고 말이죠. 나에 대해서 알아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하는데, 요즘 심리학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과 같은 이야기죠. (웃음) 맥락은 다 같아요.

 

아직 한기가 다 가시지 않은 3월의 오후, 교양인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는 재미있었습니다. 한예원 사장님께서 '번역서라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 게 없네.' 하시며 미안해하셨는데요. 충분히 좋은 말씀 많이 듣고 왔습니다. 그리고 저도 조금이나마 평전과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바쁜시간 쪼개서 인터뷰에 응해주신 한예원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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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혼자 사는 여성들이 겪는 두려움과 심리적 혼란에 주목하다

 

세상에는 남자처럼 성공하는 법, 재테크 비법, 스타일 관리법 등 여성들이 화려하게 성공하는 비법들이 넘친다. 그러나 성공했다고 불리는 많은 여성들조차, 복잡한 심리적 혼란을 겪고 있다. 이제 그들의 내적 필요에 주목해야 할 때다.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기 원하는 현대 여성들이 맞닥뜨린 고민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여자도 남자 못지않게 성공할 수 있다며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을 내세우는 여성이 되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여성을 두고 여자답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더욱 심한데 아무리 학업과 직장 생활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여성이라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오래도록 애인이 없거나 결혼적령기가 지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면 주위의 안타까움과 의구심이 뒤섞인 시선과 노골적인 질문들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잃는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는 싱글 생활에 큰 불만이 없는 여성도 자신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자신이 뭔가 결격 사유라도 있는 게 아닌지 자문하는 경우가 많다.

 

영문학 교수에서 심리치료사가 된 저자 플로렌스 포크는 20년간 현장에서 여성들을 상담하면서 커플, 싱글을 막론하고 많은 여성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단지 남자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남자 친구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정신적으로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고, 남편의 폭력이나 집착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혼자 남게 될까 봐 계속 문제를 끌어안고 지내고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에게, ‘고독’이 ‘고립’의 유사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필요와 욕망, 본연의 자아와 만나고 창조력과 삶의 원동력을 얻을 수 있는 시간임을 알려준다. 이 책을 읽은 여성 독자들은 ‘혼자인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혼자 있는 시간을 자신을 성장시키는 환한 시간으로 바꾸어가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_‘우울한 혼자’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고독’으로 
 

그렇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만끽할 것인가?



이 책에는 저자의 경험을 비롯하여 여러 여성들의 내밀하고도 진실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안나는 오랜 외로움에서 비롯된 우울증으로 심리치료사를 찾았다가 한 가지 과제를 받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서 동행이 있는 사람과 혼자인 사람의 숫자를 세어보라는 것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혼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 순간 저주가 풀렸어요.”
안나가 미술관에서 발견한 것은 외로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우울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우울한 말들을 계속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렇다면 우울한 감정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리고, ‘혼자 있는 것’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우울한 시간’이 아니라, ‘고요한 자유가 흘러넘치는 시간’이자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성장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관점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힘도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안나의 사례는 보여준다. 그러한 깨달음으로부터 그녀는 외로움을 자기 자신을 위한 긍정적인 시간으로 바꾸어갔고 혼자 있는 시간을 만끽하는 법을 배웠다.
 
저자는 이밖에도 실연이나 이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은 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혼자 있는 법을 배운 뒤에야 자신의 사랑과 삶을 되찾은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현장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저자가 깨닫게 된 것은 싱글, 커플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은 혼자서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때,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설 수 있을 때 진정한 관계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혼자 있는 것이 여성의 삶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그리고 여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긍정적인 옵션과 가능성을 조근조근 들려주면서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자아와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한다.
 
 
책 속으로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나는 고독이 선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여성이 나와 같이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혼자라는 것이 외로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고립이나 소외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혼자 있는 것이 이런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혼자 사는 여자로서 나의 첫 번째 과제였고, 여성 내담자들과 상담을 할 때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혼자임이 무엇인지 이해함으로써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어떤 의미로든 혼자인 여성들이라고 확신한다. (본문 60-61쪽) 
 
이렇게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으로부터 소외된 채로 자라난다. (...) 자신과 분리되다 보면, 자신을 고의적으로 파괴하려는 시도에 대해 거부할 힘이 없기 때문에 여자는 외로움과 결핍감을 느끼게 된다. 나를 찾아온 어떤 여성은 “내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남자가 나를 예쁘다고 할 때 말고는 자신이 없어요. 키도 크고 금발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난 잘못 태어났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고백을 듣는 것이 내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본문 87-88쪽)

삐삐는 다듬어지지 않은 에너지를, 다루기 어렵고, 말을 안 듣고, 조숙하고, 모험을 즐기고, 인습에 반항하고, 터무니없고, 시적이고, 사물을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어린 소녀의 거친 면을 다 갖추고 있다.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역시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어린 소녀의 상상력을 잘 보여준다.(...) 삐삐는 세상에 나가 홀로 선다는 것, 즉 ‘자기’를 잊지 않고 그것을 선언하고 살아남는 것에 대한 하나의 은유다. (본문 105쪽)

지금까지 혼자 있지 않기 위해 줄기차게 도망 다녔지만, 이제 혼자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시점이 왔다고.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살아 있는 한 혼자인 때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사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던 구원의 환상을 버려야 했다. 그러자 점차 두려움이 걷히면서 혼자인 것이 더 이상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사는 삶에 숨겨진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수치와 외로움의 공간이 아니라 치유의 공간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내 안의 많은 것이 다시 깨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본문 25쪽)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서로의 고독을 지켜주는 사랑, 나란히 옆에 서서 가는 사랑, 그러면서 서로의 자유를 빼앗지 않는 사랑에 대한 시를 썼다. 이런 사랑은 결핍이 없는 사랑이다. 사실 엘렌과 로버트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혼자 있겠다는 결심,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감정을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바꾸어가고, 고독의 힘에 복종하기로 한 결심 덕분이었다. 그때서야 상대방의 모습을 투사를 거치지 않고 진정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원했던 진정한 파트너십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다음 해 발렌타인데이에 재결합했다. (본문 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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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25일 늦은 오후. 서울 충정로의 한 맥줏집으로 대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맑고 청명한 그날의 공기를 우리 모두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과학의 대중적 글쓰기에 뜻이 있는 대학생을 모집한다’는 정재승 선생님의 글을 보고 찾아온 이공계 학생들은 모두 28명.


그 자리에 모인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모두들 과학책 읽기를 즐기고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며, 무엇보다 과학을 사랑하는 친구들이었다. 매주 과학책을 함께 읽고 논쟁적인 과학 주제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할 만한 곳이 또 어디에 있던가! 내가 쓴 과학 글을 읽고 조언해 줄 친구들이 세상 어디에 또 있던가! ‘꿈꾸는 과학’은 모임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겐 하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 이화여대의 한 강의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우리가 했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있다면? 없다면!》이었다. 정재승 선생님은 과학적 상상력이 때론 만화적 상상력보다 더 기발할 수 있다며 우리에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하셨다.


내용은 단순했다. ‘만약 인간에게 꼬리가 있다면?’ ‘만약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 ‘만약 태양이 두 개라면?’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이 질문에 대해 강의실에 둘러앉은 학생들이 두 시간 동안 엉뚱한 상상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다시 합리적 이성과 비판적 사고로 꼼꼼히 검토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처음엔 엉뚱해도 좋으니 기발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쏟아내는 시간을 가졌고,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그 상상이 돼 불가능한지’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 뒤따랐다. 우리들의 상상이 몰고 올 또 다른 효과들을 고민하다보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의 브레인스토밍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손가락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손가락이 없으면 운동화 끝은 어떻게 묶지?”
“끈만 못 묶니? 리본이나 각종 매듭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매듭만 문제가 아니야. 정교한 수술처럼 고도의 손동작을 필요로 하는 일은 꿈도 못 꿀걸?”
“근데, 손가락이 없는 사람은 생긴 것도 이상할 것 같아. 먹고는 살아야겠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을 수는 없으니까, 음, 그러니까 늑대처럼 입이 비죽 나오고 이빨이 날카로워지지 않겠어? 음식을 뜯어먹어야 하잖아.”
“직립 보행에 대한 이점이 전혀 없겠군.”

 

브레인스토밍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혼자서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때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던 기발한 생각들이 함께 둘러앉아 조금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엉뚱한 생각의 단초들이 튀어나왔다. 뻔하거나 따분해 보이던 소재들도 그룹 토의를 거치고 나면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멋진 글감으로 재탄생했다.


브레인스토밍의 결과물은 우리 중 한 명이 정리해 에세이로 만들어 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모여 함께 그 글을 읽고 조언하고 고쳐 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덧붙였다. 퇴고를 할 때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날카로운 지적과 따끔한 조언이 여기저기서 날아와 원고를 낱낱이 해부했고, 그럴 때면 나의 머릿속은 친구들에게 벌거벗겨진 채로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속속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퇴고 과정에서 나온 다른 학생들의 지적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내가 쓴 글에 담긴 진짜 의도를 친구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체로 글에 대한 비평이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그것은 진실에 가까웠다.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글을 쓸 때에는 문을 닫고 글이 완성되면 문을 활짝 열어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읽혀라. 언제나 독자는 옳고 저자는 틀렸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의 《있다면? 없다면!》원고는 퇴고의 모진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다듬어졌다.


모임을 거듭하여 어느 정도 초고가 완성됐을 때, 우리는 제주도로 퇴고 여행을 떠났다. ‘꿈꾸는 과학’ 최초의 글쓰기 여행이었다. 중문 바닷가 근처에 있는 작은 호텔에 자리를 잡고, 두 조로 나누어 밤을 새 가며 글을 쓰고 또 썼다. 아침이면 모두 모여 밤새워 썼던 글을 돌려 읽었다. 그리고 다시 퇴고, 퇴고, 또 퇴고.


왜 볼 때마다 고칠 부분이 나올까? 왜 볼 때마다 더 좋은 문장이 떠오를까? 쓰면 쓸수록, 고치면 고칠수록, 글에서 모자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막막함이란 글 쓰는 감각을 서서히 익혀 가던 우리의 성장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에게 책으로 엮어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나 거대한 목표로만 느껴졌다. 《있다면? 없다면!》원고에 대한 퇴고는 제주도에서 돌아온 뒤에도 계속되었다.


《있다면? 없다면!》은 분명 과학책이지만,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상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과학은 과학적 상상력과 비판적 사고로 이루어진다.


“멀리 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는 T.S. 엘리엇의 말처럼, 과학적 상상력은 우리를 당대의 과학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과학적 합리성으로 길들여진 비판적 사고만 잃지 않는다면 엉뚱한 함정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은 존엄한 상상력의 산물이다.”라는 미국의 문학가 윌리스 스티븐스의 말처럼, 이런 노력들이야말로 ‘백 년 전 사람들에게는 엉뚱하게만 여겨질’ 지금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낸 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그리고 우리가 이 책을 쓰면서 나누었던 브레인스토밍 과정을-아직 과학이라는 상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청소년들에게 각별히 권해 주고 싶다.


놀랍게도,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상상력으로 가득 찬 이 책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왜 하늘에선 주스비가 내리지 않는지, 왜 얼굴은 음각이면 안 되는지, 왜 입이 배꼽 옆으로 이사 가면 안 되는지를 따져 묻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세상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데에는 나름의 과학적인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있다면? 없다면!》은 ‘꿈꾸는 과학’의 수많은 손을 거쳐 완성됐다. 1기였던 김민경, 김송희, 김승희, 김태양, 서재형, 이용일, 정유진, 조덕상은 모든 원고의 브레인스토밍에 참여하고 초고를 썼으며 글의 뼈대를 잡았다. 2기였던 김호식, 박찬석, 안성희, 이언경, 장승연, 전헤리, 최승원, 홍성준은 마무리 퇴고 작업에 열심히 참여해 1기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었다.


《있다면? 없다면!》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꿈꾸는 과학’모두의 아이디어를 흡수했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초고를 썼던 사람조차 몰라볼 정도의 다른 글로 변신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글 한 편 한 편은 어느 한 사람의 글이 아닌 ‘꿈꾸는 과학’ 모두의 집단 지성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읽어보면 여전히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이지만, 이 글에는 투박하지만 거칠게 꿈틀거렸던 우리의 젊음이 담겨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은 20대 때 무얼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기꺼이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라고 답하겠다. 계통 없이 책을 읽었고 혼자만의 몽상에 흥분했으며 질그릇처럼 투박한 글을 썼지만, 어쨌든 우리는 ‘꿈꾸는 과학’을 만났고 20대의 절반을 책과 글로 채웠다. 그렇게 풋사과처럼 시큼한 ‘날것의 젊음’을 공유했던 우리들이 빚어낸 첫 작품이 바로 이 책 《있다면? 없다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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