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이 내용이 쉽지는 않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심지어는 앞과 뒤의 말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작가도 그 사실을 인정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같이 모든 사람들이 (핸드폰에 달려있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시대에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내용인 것 같다.
1910년 어느 암살자가 총을 쏜 바로 그 순간, 뉴욕시장 윌리엄 게이너의 사진. 미국의 신문사 사진기자가 도착했을 때, 시장은 마침 유럽으로 휴가를 떠나기 위해 배에 승선하고 있었다. 사진기자가 시장에게 사진을 위한 자세를 부탁하고 난 뒤 사진기를 든 순간, 군중들로부터 두 발의 총탄이 발사됐다. 이 혼란 와중에서 사진기자는 침착했다. 그리고 피를 튀기며, 한 측근의 품안으로 쓰러지는 시장의 이 사진은 생생한 역사의 일부가 됐다.
˝사진은 피사체와 닮았을 뿐만 아니라 피사체에 대한 일종의 봉헌물이다.˝ 히틀러의 얼굴 사진이 들어 있는 ‘엽서 컬렉션‘을 들고 미소짓고 있는 저 히틀러 추종자에게도 이 말은 진실이리라. 히틀러와 비슷한 콧수염까지 기르고 있는 이 사람에게는 히틀러야말로 세속화된 신이며, 자기가 모아놓은 히틀러 엽서야말로 세속화된 예배당일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1930년 이전까지의 임정의 역할이 독립운동사에서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놀랐고, 공산당의 역할이 생각보다 커서 또 놀랐다. 그러나 독립운동 단체들의 분열이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는 달리 상당히 심각했다는 점은 안타까웠다.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 묻는 것은 근본적으로 오해의 여지가 있는 질문이다. 비록 사진이 예술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긴 하지만 예술이라고 불리려면 개성도 필요하고, 거짓말도 할 줄 알고, 미학적 즐거움도 줘야한다), 사진이 원래 예술의 형태를 띠었던 것은 아니다. 사진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것 중에서도) 예술 작품을 만들 때 활용하는 매개체이다. 우리는 언어를 활용해 과학 담론, 공무 문서, 연애 편지, 야채상점 명세서, 파리 풍경을 담은 발자크의 소설 등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진을 활용해 여권 사진 기상 사진, 포르노 사진, 엑스레이 사진, 결혼 사진, 파리 풍경을 담은 앗제의 사진 등을 만들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사진은 회화와 시 같은 예술은 아니다. 어떤 사진작가들은 순수 예술의 전통적인 개념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진작가들은 애초부터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독자적인 오브제 - 즉, 예술이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말해주는 예술 개념에 부합하는 사진을 생산해냈다. 사진의 힘, 그리고 오늘날 미학적 관심사에서 사진이 차지하고 있는 주된 역할은 사진이 예술의 이 두 가지 개념을 모두 강화시켜 준다는 데 있다. -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