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플라시 전투는 영령인도사(英領印度史)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프랑스 세력이 인도에서 쇠퇴하고 유럽의 여러 세력을 제압한 영국은 이제 종래의 무역활동에서 벗어나 인도 경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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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갈제국의 시조는 차가타이 터키계인 바부르로서 카불 주변지역에 그의 지배권을 강화한 후 인도로 침입해 들어왔다. 바부르는 스스로 자신을 아버지 편으로는 차가타이 한국의 지배자였던 티무르의 후손으로, 또 어머니 편으로는 칭기즈 칸의 후손으로 불렀다. 바부르는 네 차례의 공격 끝에델리 부근의 빠니파트 전투에서 승리하고 델리를 평정한후 아그라 에 입성하였다(1526). 이때부터를 무갈제국의 시작으로 본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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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수천 년 동안의 인도 역사를 통하여 가장 넓은 통일제국을 건설했던 인물이 아소카 대왕이었다. 그는 아쌈 지방과 최남단 일부를 제외한 현재의 인도 전부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네팔 등을 대체로 포함하는 실로 인도아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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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라는 말은 포르투갈어인 카스타(Casta, 종족, 혈통)에서 유래하며, 인도어로서는 바르나(Varna, 색체)가 여기에 해당되지만 이 말의 뜻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같은 성(姓)을 갖고 있는 가족집단><신화적인 조상을 모시는 같은 후손><세습적인 천직(天職)을 갖고 있는 사람들> 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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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팔을 지닌 이 거대한 관음입상은 머리 위에 십면을
올리고 양 미간에 눈을 조각한 십일면삼목천수(十一面三目千手)의 형태를 하고 있다. 양 어깨에서 뻗어나온 천 개의 팔은 가슴 앞에서 합장한 손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펴져나오고 있는데, 과장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 안정된 체구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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