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4)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수년 전 아버지에게 알츠하이머가 닥친 것, 그 때문에 아버지가 기약 없이 입원한 전문 클리닉에 매일 찾아가야 했던 것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끝나지 않는 기나긴 시련이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녀가 스무 살에 결혼한 이래 무언가 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바라보는 것에 처음으로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홀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어머니는 나이 들어 신체가 쇠약해짐에 따라 거동의 자유를 새로 방해받기 전까지 얼마 동안 되찾은 자율성을 여유롭게 누렸다.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난 그 손님이 자기 남편의 요양원 입소를 유사한 감상으로 환영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마침내 자유다!’라는 감상 말이다.


(58-59)

어머니 자신도 틀림없이 이런 쇠락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내심 확신하고 인정했다. 해결되지고, 개선되지도 않을 문제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가 나아지면…” 또는 내가 회복되면…”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마치 생물학적인 사태의 추이를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쫓아버리려는 듯 말이다. 어머니는 무력감에 굴복하기 힘들어했지만 건강 상태가 좀처럼 저항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뻔히 거짓말인 줄 알면서 , 어머니가 괜찮아지시면…” 또는 그래요, 어머니가 다 나으시면…”하고 대답했다. 사실 어떻게 자기 어머니에게 아뇨. 어머니는 회복 못 하실 거예요. 낫지 못하실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60)

우리는 집으로 되돌아가길, 혹은 진짜 자기 집을 되찾길 기다리며 다소 긴 기간 동안 임시 체류하러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영구히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죽을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서인지는 안다. 블라디미르 장켈베비치는 이 라틴어 격언을 즐겨 인용했다. ‘죽음은 확실하나, 시간은 불확실하다.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 적시할 수 있다. 일단 그런 시설에 들어가면 장소는 확실하다, 설령 시간이 아주 머지않은 듯 보인다 해도, 시간보다 훨씬 확실하다고.


(74)

엘리아스는 계속해서 말한다. “해로하는 노부부를 제외하면,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은 오랜 감정적 유대가 최종적으로 끊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어떤 긍정적 정서적 관계도 맺은 적 없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건강을 돌봐주는 의사와 간호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노인들은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격리되고 낯선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그것은 개인에게는 외로운 일이다. 내가 여기서 걱정하는 점은, 아주 고령이 될 때까지도 매우 활발하게 지속되는 성적 욕구의 문제뿐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을 즐기고 같이 있으면서 정서적 만족을 느끼는 인지상정의 문제다.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런 종류의 인간관계 역시 줄어들고 거기에서는 대체물을 찾기 어렵다.”


(100-101)
우리는 공공서비스 관할의 모든 부문에서 그랬듯, 돌봄 인력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의해 프랑스의 병원에서 얼마나 많이 감축되었는지 안다. 그 정책들은 언제나 강력한 비용 절감 계획을 작동시켜왔고, 지금도 그렇다. 병원 근무자들이라면 직종에 관계없이 프랑스의 보건 공공서비스가 파산 상태(다른 나라들이라고 썩 사정이 낫진 않다)에 다다랐다고 자주 강력하게 규탄해왔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았고-반대로 사정은 계속 악화해, 프랑스 정부는 심지어 코로나19 위기 동안 병상 폐쇄라는 살인적인 정책을 추진했다-우리는 그런 상태를 거의 정상으로 받아들이며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듯 보인다. 기필코 이런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 지치지 말고 계속 분노해야 하며, 이 분노를 소리 높여 강하게 외쳐야만 한다.


(117)

전체주의적성격은 매일매일 두드러져만 갔다. 어머니의 삶 전체가 구획되고 통제되었으며, 그녀를 대신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어머니는 자율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 사람으로서의 지위까지 상실했다. 그렇다. 탈인간화로 인해 노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지경까지 다다른다.


(119-120)

산다는 것은 시간, 시간성 그리고 당연히 공간성과 관계 맺는 것, 즉 시간 속에 스스로를 투사하고 공간 안에서 움직일 능력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는, 말하자면 고령, 노년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 존재론적 관계를 수정하고 무화하며 파괴한다. 공간성의 상실, 시간성의 소멸은 인간 실존의 조건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을 점차 사라지게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수많은 인잔 존재의 실존과 관련된다. 어떤 면에서는 거의 모든 인간 존재의 실존과 관련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늙는 것이 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한 말이다. 정치 담론과 행정보고서에서 이야기되는 기대 수명의 상승과 이른바 인구 고령화는 나이가 아주 많고 의존적인 사람들의 수가 계속 엄청나게 증가할 것임을 함축한다. 삶은 건강한 삶뿐만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삶, 쇠약해진 삶이기도 하다.


(131-132)

이 짧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서 난 어머니의 이미지를 본다. 그녀는 버림받은 아이였고, 열네 살에 무슨 일이든 하는 하녀, 가정부로, 공장노동자로 위치지어졌다그녀는 스무 살에 결혼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55년 동안 함께 살았다그리고 이제 여든 살이 넘어서 자유를 발견했고, 모든 순간을 즐기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녀를 책망할 권리를 가로챌 수 있겠는가?


(149)

난 죽음-지워짐에 관한 푸코의 말을 좋아한다. 그는 아리에스의 탄식과 힘 있게 결별하는 발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죽음은 사건 아닌 것이 되었다. 대개 사람들은 사고사가 아니라면 약품들의 덮게 아래 죽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몇 시간, 며칠 또는 몇 주간 의식을 완전히 잃는다. 그들은 지워진다. 우리는 의료와 제약이 죽음과 동반하면서 죽음으로부터 고통과 극적 성격을 앗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난 무언가 통합적이고 극적인 거대 의례로 되돌려지는 죽음의 정화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관 주변의 소란스러운 눈물들이 언제나 모종의 냉소주의에서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상속의 기쁨이 뒤섞일 수도 있다. 난 이런 종류의 예식보다는 사라짐의 부드러운 슬픔을 더 좋아한다.

지금 우리가 죽음을 맞는 방식은 내계는 오늘날 통용되는 어떤 가치 체계, 어떤 감수성을 명확히 나타내는 듯 보인다. 향수 어린 충동 속에서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관행들을 되살리고자 하는 데는 몽상가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보다는 차라리 죽음-지워짐에 의미가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181-182)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암묵적이든 잠재적이든 어머니를 통해 유지되어온 내 과거와의 연속성이 이제 끊어져버렸다. 혹은 몹시 느슨해져버렸다.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청소년으로 자라났는지에 얽힌 일화들을 앞으로 누가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가족의 지형도, 조상의 계보도를 누가 내게 그려줄 수 있을까? (중략) 내 젊은 시절의 기록 보관자이자 역사가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


(195-196)

자기 어머니를 애도하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잃어버린 젊음을 애도하는 것이라고 알베르 코엔은 쓴다. 내게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망각되거나 부인된 모종의 면모들, 구체적으로 우리가 수치스러워했던 것들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소개한다.” 코엔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을 소개한다.” 코엔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은 동양식 억양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은 프랑스어 오류를 자랑스러워하며, 고상한 예법에 대한 당신의 무지를 미치도록 자랑스러워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인다. “약간 뒤늦은, 이 자부심.” 그는 모두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아들들이여, 당신의 어머니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만일 당신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내 죽음의 노래를 읽고 어느 날 저녁 어머니에게 더 부드럽게 대한다면, 나와 내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내 글쓰기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이 말들은,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아들들이여, 내가 나 자신에게 표할 수 있는 유일한 조의다. 아들들이여, 시간이 있는 동안,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는 동안이다, 서두르시라. […] 하지만 난 당신들을 안다. 그 어떤 것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한 오래도록 당신들의 그 끔찍한 무관심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어떤 아들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아들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며, 이 바보들은 곧 벌을 받는다.


(237)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공장을 다시 보러 갔다. 외벽은 국민전선의 포스터와 그라피티로 뒤덮여 있었다. 내부는 모든 것이 황폐한 인상을 주었다.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바닥엔 짙은 녹색의 깨진 병 조각들, 유리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병뚜껑을 고정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금속 링을 거는 빨간 고무 패킹들 또한 오렌지색으로 바랜 채 흩어져 있었다. 이 황량한 무대를 두고 나는 어머니의 것이었던 세계에서 어머니의 실존이 어떠했을지 생각했다. 오늘날 바람이 쓸고 간 텅 빈 공간을 한때 가득 채웠던 유기체들에게는 숨 막힐 정도로 격렬했을, 물론 [유리 제품] 제조용 가마들에서 내뿜던 열기에 대해. 지옥같이 참기 어려운 소음에 대해, 온갖 직무의 극단적인 난도에 대해, 자재들에서 나오는 분진의 위험성에 대해, 떄로는 심각했을 숱한 노동 재해에 대해지나간 과거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를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 난 생각했다. , 이것이 어느 서민 여성의 삶이었고, , 이것이 그녀의 노년이다. 난 그렇게나 빨리 세번째 단어를 덧붙여야만 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263)

엘리아스가 쓴 이 말을 틀렸다고 하기란 불가능하다. “아직도 활기차고 가끔은 기분 좋은 느낌으로 가득한 자신의 몸이 느릿해지고 쉬 피로하며 어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다시 말해 노인들, 죽어가는 사람들과의 동일시는 다른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자신이 늙고 죽을 것이라는 관념을 극구 부정하려 하며 그에 저항한다.”


(299)

결국 근본에 있는 정치적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발언할 수 있는가? 이 기본이 되는 정치적 행위가 가장 극심하게 지배받고 박탈당하고 취약한 사람 가운데 그렇게 많은 이에게 여전히 접근 불가능하다면 그들에 관해서, 그들을 위해서 말하고 그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예술가에게, 지식인에게 돌아오는 과제가 아닐까?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 또는 어쩌면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또는 그들에게 이제는 없는, 아니면 의존적인 고령자들의 경우처럼, 그들이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그 목소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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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걸로 슈마허에게 가르쳐줘. 전봇대를 받아 탑승자를 다치게 할 바에야 길고양이를 치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걸. 애들한테 걷어차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가르쳐주듯. 세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이미 다 있는 거, 우리 다 하고 있는 거야. 보험사에는 평가액, 은행에는 신용 점수가 있고, 결혼 정보 회사에도 입사 시험에도 학교 시험에도 다 있잖아. 등급, 석차, 점수, 우리 이마엔 이미 바코드가 찍혀 있어. 리더기만 들이대면 하고 얼마짜린지 다 나와.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할 뿐이지.


(164)

사랑만이 고통에도 의미를 주니까요. 그 고통엔 의미가 있어 더욱 고통스러워니까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디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거예요. 무의미하기만 한 고통은 그걸 겪고 견디는 우리들끼리 무의미하게 만드니까요. 오로지 휘몰아치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고 우리도, 다른 모든 것도 거기에 이리저리 휘날리기만 하는 티끌들인 거예요. 영인은 쓸쓸히 창밖을 봤다.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다들 그러죠. 자기 인생을 쓰면 책 한 권은 너끈히 될 거라고 하지만 그 책의 대부분은 지루하고 하찮기만 할 거예요.


(198)

어떤 것이 자율이라는 건 필연히 다른 것들이 타율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한 논리의 문제죠. 무버에 적혀 있는 말처럼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필연히 움직이지 않는 단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밭솥을 생각해보면 쉽죠. 인공지능이 알아서 밥을 짓는다고 우리가 자율밥솥이라고 하나요? 자동밥솥일 뿐이고 자율주행도 결국엔 자동주행일 뿐이죠. 그 반대라면 우린 밥솥이 무슨 밥을 짓든 먹을 수밖에 없고 차들이 어떻게 주행하든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명백한 횡포고 억압이며 사실 별로 낯선 것도 아니죠. 늘 가장 강력하고 악독한 횡포와 억압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왔으니까요. 우리가 지금 얼마나 자율적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배척하는지 생각해보면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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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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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6<얼음 속의 여인>을 이야기해줄게.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그 동안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 곧바로 6 <얼음 속의 여인> 이야기를 할게.

6권은 1139 11월에 시작한단다. 이전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잉글랜드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에 내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어. 내전의 전선은 계속 이동했는데, 이 시기에는 우스터 시라는 곳까지 이어져서 이곳 사람들의 많은 피해를 입었단다. 특히 힘없는 여자들이 많은 피해를 입어서 거의 절반이 죽었다고 했어. 나머지 사람들은 도망을 가서 그들 중 일부는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왔단다. 그들 중에는 부상자들도 많아서 수도원 진료소에서 치료를 했는데, 진료소 자리가 부족해서 일반인들의 집에서도 치료를 받았단다. 내전이 길어지면서 국경 지역의 일부 영주들은 이를 이용하여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이들도 있어서 나라는 점점 혼란에 빠지게 되었어.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와 그의 지인 휴 베링어는 이 일에 대해서 논했지만, 그들이라고 뾰족한 해결책은 있는 것은 아니야.

어느날 우스터 시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의 보좌수사 허워드 수사가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왔단다. 허워드 수사는 사라진 귀족 자재 남매를 찾으러 왔다고 했어. 그들은 18살 에르니마 위고냉과 13살 이브 위고냉이었어. 그들도 내전 때문에 피난을 가는 길이었고, 힐라리아 수녀가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고 했어. 그들은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오기로 했는데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던 거야. 한편 그 남매의 외숙 로랑스 당제는 현재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도착했어. 이 일은 프레스코트 행정장관도 보고를 받았으나, 프레스코트 행정장관은 위고냉 집안과 반대 진영이라서 비협조적으로 나왔어.

인근에 있는 브롬필드 수도원에서 도움 요청이 왔어. 길에서 발견된 의식 잃은 중상자를 브롬필드 수도원에서 보호하고 있는데, 치료를 해달라는 도움이었어. 이에 캐드펠 수사가 브롬필도 수도원으로 가게 되었지. 그 중상자의 이름은 엘리어스로,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브롬필드 수도원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에 다친 것이라고 했어. 문득 캐드펠은 엘리어스가 사라진 위고냉 남매를 알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캐드펠은 엘리어스를 치료하기 시작했어. 캐드펠의 정성스런 치료로 엘리어스는 의식을 되찾았지만, 아직 기억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였어. 그러면서도 엘리어스는 가는 길에 소녀의 일행을 만났다고 했어. 엘리어스가 위험한 위기를 넘기고 안정을 되찾은 다음, 캐드펠은 엘리어스가 이야기한 곳을 정찰해 보았단다. 그리고 숲에 숨어 있는 동생 이브 위고냉을 찾았어. 이브 위고냉이 이야기하기를 누나 에르미나는 애인을 만나 함께 떠나고 자신은 누나를 뒤쫓다가 길을 잃었고, 함께 가던 힐라이아 수녀님과도 헤어졌다고 했어. 이브는 누나의 그런 행동해 불만이 가득했단다. 캐드펠은 이브를 데리고 브롬필드 수도원에 오다가 얼음 속에 갇혀 죽은 한 소녀를 발견했는데, 나이대로 보아 안타깝게도 에르미나 같았어. 하지만 이브에게는 이 사실을 모르게 그의 시선을 막아가면서 일단 브롬필드 수도원으로 데리고 왔어.

브롬필드 수도원에 도착하니 그곳에 휴 베링어가 와 있었어. 캐드펠은 휴 베링어와 함께 다시 얼음 속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갔단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얼음을 깨고 시신을 브롬필드 수도원으로 데리고 왔단다. 이브도 그 시신을 보게 되는데, 그 시신은 자신들을 데리고 왔던 힐라리아 자매라고 했어. 캐드펠도 얼음을 깨면서 시신을 꺼낼 때 추리를 해서 그 시신의 주인공은 에르미나가 아닌 힐라이아 자매라는 것을 알았단다. 그렇다면 에르미나는 어디로 간 것인가? 정말 애인과 어디로 떠난 것인가?

 

1.

캐드펠과 휴 베링어는 이브 일행이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농가를 찾아갔단다. 그런데 그 농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에 다 타버리고, 개들은 누군가에서 도살당하고 폐허가 되어 있었어. 인근에 있는 농가를 찾아가 물어보니, 힐라리아 자매는 엘리어스 수사와 함께 브롬필드 수도원으로 갔다고 했어. 그렇다면 그들은 함께 브롬필드 수도원으로 오다가 괴한을 만나 힐라리아 자매는 죽고, 엘리어스 수사는 중상을 입은 것으로 추측했어. 농가 주인이 이야기하기를 그들이 떠난 다음 날 어떤 검을 숨긴 젊은 남자가 위고냉 남매 일행을 찾으러 왔었다고 했어.

의문의 인물이 드디어 등장하는구나. 에르미나가 애인과 도망간 쪽은 휴 베링어와 부하들이 순찰하기로 했는데 그곳에서 캘롤리스 장원이라는 곳이 다 폐허가 되었고 시신들도 그대로 있었어. 그런데 이 약탈은 우스터 시에서 난리가 나기 전에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으니 그 일과는 관련 없는 일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캐드펠은 숲에서 에르미나의 머리장식을 발견했는데 에르미나가 애인과 말을 타고 가다가 떨어뜨린 것 같았어. 그리고 그 애인은 불에 탄 장원의 젊은 주인 에브러드 보터레이로 추정되었단다. 에브러드는 피신하는 길에 약탈자와 싸움이 붙어 부상을 입고 또 다른 장원에서 머물고 있는 것을 캐드펠이 발견했단다. 하지만 그곳에 에르미나는 없었어. 에브러드에게 물어보니 에르미나는 동생을 찾아야 한다며 그곳을 떠났다는 거야. 에르미나는 젊은 혈기를 가진 아가씨답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그런 스타일인 것 같구나.

캐드펠은 다시 브롬필드 수도원으로 왔어. 엘리어스는 여전히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어. 아빠는 이 사람이 좀 의심스러웠단다. 아빠의 추리가 잘못될 수도 있겠지만, 엘리어스가 무엇인가 숨기면서 기억을 못하는 척 하고 있는 것 같았어. 엘리어스는 이브와 이야기를 하면서 기억을 하나하나 되찾는 듯 했어. 그러다가 힐라리아 자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터뜨리고 흥분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했단다. 그러고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미친 듯이 눈보라 속을 뚫고 숲으로 달려갔단다. 이때 그의 곁에는 이브만 있었어. 이브는 캐드펠 수사를 불러오게 되면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서 혼자서 엘리어스 수사를 쫓아갔단다.

엘리어스는 계속 달려가서 숲 속에 있는 어떤 움막에 가서야 쓰려져 정신을 잃었단다. 뒤늦게 캐드펠은 엘리어스 수사와 이브가 사라진 것을 알고 그들을 수색했어. 휴 베링어의 도움을 받아 밤새 수색했지만 찾지 못하고 수도원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그날 아침 에르미나가 수도원에 나타났단다. 그런데 에르미나가 수도원에 나타나기 전에 캐드펠은 에르미나가 어떤 남자와 같이 오는 걸 봤어. 그런데 수도원에는 혼자 도착했어. 그럼 그 남자는 또 누구인가.

에르미나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했어. 에르미나는 어떤 부부가 도와주어 그들의 집에 있다가 동생의 소식을 듣고 수도원으로 온 것이라고 했어. 그러면서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잘못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에브러드와 다신 만나지 않겠다고 했어. 그런데 수도원 근처까지 함께 온 남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캐드펠은 에르미나에게 유도 질문을 해서 스스로 말하게 했단다. 그제서야 에르미나는 그 남자는 외숙이 그들을 찾으라고 보낸 사람이었다는구나.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 남자와 좋은 감정을 갖게 된 모양이구나.

한편, 엘리어스 수사를 쫓아가던 이브는 엘리어스 수사와 함께 움막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하필 그때 약탈자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어. 이브는 약탈자들에게 붙들려 가게 되었어. 이브는 그들 몰래 포도주를 한 방울씩 떨어뜨렸어. 눈길에 떨어진 포도주는 마치 핏방울처럼 보였어. 움막에서 정신을 잃었던 엘리어스는 깨어나고 이브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고, 포도주 방울을 따라 길을 떠났단다.

캐드펠도 다시 수색을 하여 엘리어스와 이브가 머물렀던 움막을 발견했어. 그곳에 사람이 머물던 흔적이 있어서 캐드펠은 엘리어스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았어. 그 곳에서 수사의 망토뿐만 아니라 힐라리아 수녀의 망토도 발견했단다. 그런데 수녀의 망토에는 핏자국이 있었어.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다가 캐드펠 역시 이브가 남긴 포도주 흔적을 발견하고 포도주 방울을 따라 갔단다. 그리고 약탈자들이 산 속에 세운 성채 같은 요새를 발견했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여 다시 돌아와서 휴 베링어의 부대를 이끌고 다시 성채 밖에 진지를 구축했고, 공격하기 시작했어.

약탈자들의 리더는 알랭이라는 사람이야. 알랭은 이브를 인질극에 이용하자, 휴 베링어의 군대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어. 이브는 요새에 갇혀 있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데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려고 잠입한 것을 알았어. 그 누군가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단다. 그 누군가는 적군을 제압하고 이브와 함께 도망치다가 그만 발각되었어. 그래서 다시 반대로 도망치다가 요새의 감시탑 꼭대기에 갇히게 되었단다. 약탈자들이 그곳에 오지 못하게 통로를 봉쇄했지만, 그들 또한 도망 나갈 방법이 없었어.

그제서야 그 누군가는 자신을 소개했어.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 앞서 에르미나를 수도원까지 데려다 준 외숙의 부하였어. 올리비에와 이브는 방법을 찾았어. 그들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장비를 이용하여 계속 소리를 했고, 그 소리는 캐드펠이 듣고 감시탑에 이브가 있는 것을 보았어. 그리고 이브의 상황을 알아채고 휴 베링어에게 공격을 지시하여 휴 베링어의 군대는 대대적인 공격을 했단다. 그러다가 요새에 불이 났어. 그 불은 곧 크게 번져 이브와 올리비에도 도망가야 했어. 약탈자들이 화재로 인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도망을 갔는데 이브가 다시 약탈자의 우두머리 알랭에게 잡혔단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몰골이 말이 아닌 엘리어스가 나타났어.

그의 모습은 몰골이 말이 아닌 점이 오히려 알랭을 더욱 놀라게 했단다. 알랭은 엘리어스가 자신들이 공격하여 죽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살아나서 나타났으니 귀신인 줄 알고 깜짝 놀라 당황을 한 거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브가 그로부터 탈출하고 올리비에는 알랭을 공격을 했어. 알랭은 결국 올리비에와 결투 끝에 칼에 찔려 죽고 말았어. 알랭이 죽자 남아 있는 부하들은 모두 항복을 했단다. 그런데 그 싸움이 끝나고 올리비에는 곧바로 사라졌단다. 올리비에는 모드 왕후 측 사람이고 이곳은 스티븐 왕의 지역이기 때문에 사라진 거야.

….

 

2.

브롬필드 수도원에 돌아와 이브는 누나 에르미나와 만났단다. 사건이 다 해결된 것 같은데 캐필드는 뭔가 찜찜함이 남아있었단다. 자신의 추리하기에 알랭의 동선과 힐라이아 수녀의 동선이 맞지 않는 것이었어. 요새에서 있던 일로 보아 엘리어스를 다치게 한 것은 알랭이 맞지만 힐라리아 수녀는 그의 짓이 아닌 것 같은 거지. 엘리어스는 이제서야 기억이 하나둘 되살아나면서, 자신이 수녀를 죽였다고 괴로워했단다. 그러면서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단다. 엘리어스 수사는 힐라리아 수녀와 단 둘이 추운 겨울 오두막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너무 추우니 둘은 체온으로 몸을 녹이기로 했어. 그런데 그 순간 엘리어스는 욕정이 일어났다는 거야. 그런 상황에서 욕정이 일어나는 자신을 질책하면서 엘리어스 수사는 더 나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수녀가 잠든 뒤에 옷으로 덮어주고 오두막 밖으로 나와서 거닐다가 도적떼를 만나 부상을 당했다는 거야. 그렇다면 누가 힐라리아 수녀를 죽인 것일까.

….

캐드펠의 마음에 또 하나 찜찜함이 있었어. 에르미나가 갑자기 에브러드에게 마음을 접은 이유가 마음에 걸렸어. 그런데 그 에브러드가 브롬필드 수도원에 자신이 잃어버린 말을 찾으러 왔다고 했어. 그런데 그 자리에 에르미나가 이상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어. 다름 아닌 힐라리아 수녀처럼 분장을 하고 나타난 것이야. 에브러드는 힐라리아 수녀로 분장한 에르미나를 보고 기겁을 하면서 혼잣말을 했단다. 그 옆에 있던 캐드펠은 그가 한 혼잣말을 들었어. 에르미나는 에브러드가 힐라리아 수녀를 죽였다고 의심을 하고 있어서 그런 일을 꾸민 거야.

결국 정황 증거들을 늘어 놓자 에브러드는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게 되었단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에르미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캐드펠에게 이야기했어. 적들이 쳐들어왔을 때 농장 사람들을 다 나두고 에브러드는 혼자 도망가버렸다고 했어. 이걸 보고 에브러드가 겁쟁이라는 것을 알고 에르미나는 그를 버렸다고 했어. 에르미나가 돌아가려고 하자 에브러드는 강제로 추행하려고 했어. 에르미나는 저항하다가 몸에 품고 있던 단검으로 에브러드를 부상 입히고 그 사이에 도망갔단다. 캐드펠이 에브러드를 처음 만났을 때 부상 중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약탈자에게 입은 부상이 아니고 에르미나에게 입은 부상이었어. 에르미나는 그곳을 곧바로 떠나지 않고 나무 뒤에 숨어 살펴보았다고 했어. 섣불리 도망갔다가 그에게 다시 붙잡힐 수 있으니 말이야. 얼마 후 상처를 치료한 에브러드는 말을 타고 집을 떠났어.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돌아왔는데 붕대에는 다시 피가 많이 난 상태로 돌아왔어. 그때는 몰랐는데, 그가 에르미나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움막에 잠들어 있는 힐라리아 수녀를 보고 강간을 하고 살해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대. 그래서 할라리아 수녀를 죽인 사람이 에브러드라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던 거야. 에르미나는 힐라이라 수녀가 죽은 것은 자신의 책임이 크다가 크게 자책했단다. 에르미나가 젊은 혈기로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막가파인줄만 알았는데, 침착하고 영리한 아가씨가 진짜 모습이구나.

이틀 뒤 올리비에가 브롬필드 수도원에 찾아왔어. 에르미나와 이브를 보호해서 그들에게 외숙에게 데려가려고 온 거야. 캐드펠은 올리비에와 이야기를 하다가 깜짝 놀랐단다. 올리비에가 자신의 출신이력과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했는데, 캐드펠이 십자군 원정 당시 사랑에 빠졌던 시리아 여인 마리암이 올리비에의 엄마였던 거야. 그러니까 올리비에는 캐드펠의 아들이었어. 하지만 캐드펠은 이제 와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안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그저 속으로만 건실한 청년이 된 자신의 아들을 보고 뿌듯해 했을 것 같구나. 올리비에는 에르미나와 이브를 데리고 길을 떠났단다.

….

여기까지가 <얼음 속의 여인>의 이야기란다. 이번으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여섯 권을 읽었는데, 실망을 주지 않는 작품들이 없구나. 이 시리즈는 셜록 홈즈, 뤼팽, 포와르 시리즈에 결코 꿀리지 않을 것 같은데 왜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니지, 아빠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아무튼 아직도 15권이나 남아 있어 행복하구나. 천천히 아끼면서 읽어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139 11월 초, 후에는 지지부진해지고 말았으나 처음에는 그토록 갑작스러웠던 내전의 파도는 우스터시를 엄습하여 가축과 재산과 여자들의 절반쯤을 휩쓸어 가버렸다.

책의 끝 문장: 그래, 캐드펠 자신 또한 자랑하기에 부족함 없는 아들을 얻지 않았는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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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스스로 만든 지옥은 흥미로운 구조물이다. 누구나 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만들게 되어 있다. 어떤 이들의 삶은 그런 지옥일 뿐이다. 성격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롤런드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자기 손으로 고문 기계를 만들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특정한 작업 혹은 술이나 마약 중독 혹은 발각될 위험이 있는 범죄 등 각자에게 맞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금욕적인 종교도 선택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전체적인 정치체제가 고통을 자초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그때 한때 동베를린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결혼은 이인용 고문 기계로 킹사이즈의 가능성, 공유 정신병의 모든 변종을 아우른다.


(104-105)

유럽 전역에 자기기만의 구름이 드리웠다. 서독의 한 텔레비전 채널은 방사능의 독기가 복수라도 하듯 소비에트 제국만 오염시키고 서구는 안전할 거라고 확신했다. 동독의 한 정부 대변인은 인민의 발전소를 파괴하려는 미국의 음모에 대해 언급했다. 프랑스 정부는 방사능구름의 남서쪽 가장자리가 프랑스와 독일 사이 국경과 일치한다고, 그 구름은 국경을 넘을 권한이 없다고 믿는 듯했다. 영국 당국은 대중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사천 개의 농장을 폐쇄하고, 사백오십만 마리의 양을 판매 금지하고, 수천 톤의 치즈를 거둬들이고, 어마어마한 양의 우유를 배수로로 흘려보냈다. 모스크바에서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아기들과 아이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우유를 마시게 내버려뒀다. 하지만 곧 이기주의가 만연해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상사태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고, 그런 일은 비밀리에 일어날 수 없었다.


(150)

천재가 인생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연주도 하고, 요트도 타고, 명성도 좋아하고, 자신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순수한 기쁨도 느끼며 충분히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지저분하게 이혼하고, 양육권 싸움을 하고, 여자 문제로 골치를 앓으며, 다비트 힐베트르가 자신의 업적을 가로챌 거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양자역학을 비판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진 뛰어난 시달리고, 양자역학을 비판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빚진 뛰어난 젊은이들과 갈등을 빚었다. 차라리 멍청하거나 평범한 게 나을까?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멍청이도 불행에 이르는 자기만의 길이 있다.


(227-228)

베를린과 저 유명한 앨리사 에버하르트는 어떻게 그의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롤런드는 그의 일상에 정착한 과대망상적인 기분에 젖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하고 결정지은 크고 작은 개인적이고 세계적인 사건 사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곤 했다. 그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모든 인간의 운명이 그런 식으로 정해지니까. 전쟁만큼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적인 사건은 없었다. 만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해 이등병 베인스가 소속된 스코틀랜드 사단이 이집트 주둔 계획을 철회하고 북프랑스로 가서 됭케르크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그가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전투 부적격 판정을 받아 올더숏에 배치되어 1945년에 로절란드를 만나는 일이 없었더라면, 롤런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젊은 제인 파머가 전후에 영국 식단을 개선하겠다는 시릴 코널리의 뜻에 따라 후딱 알프스를 넘어갔더라면, 앨리사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흔하면서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344-345)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몰라. 난 완전히, 그리고 빨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잔인한 짓이었고, 미안하게 생각해. 정말 미안해…… 그게 늘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야. 당신이 매일 섹스를 요구하는 거. 하지만 아기는…… 아기의 요구는, 아기는 나를 소멸시켰지. 아기와 당신……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어. 생각도, 인격도, 바라는 것도, 바라는 건 잠뿐이었지. 난 침몰하고 있었어. 벗어나야만 했어. 집을 떠난 날 아침……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그게…… 그 이야긴 안 할래. 당신은 좋은 아빠고 래리는 어리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당신도 괜찮아질 거라고, 조만간. 난 괜찮지 않았지만 이미 선택을 했으니 내가 해야 하는 걸 했어. 이거.”

그녀는 다시 토트백에 손을 넣어 그가 카페에서 본 책을 꺼냈다.


(393)

현대 가정의 중심은 더 이상 거실이나 응접실, 가장의 서재가 아니다. 이제 주방이 중심이며, 주방의 중심은 식탁이다. 아이들이 대화와 관련된 무언의 규칙, 타인과 어울리는 법 같은 기본적인 예의를 배우는 곳이니까. 아이들은 평생 습관이 될 규칙적인 식사의 중요한 리듬과 의식을 습득하고, 식사 후 정리를 도와주는 간단한 첫 의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식탁은 우편물을 뜯어보고, 주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손님으로 온 친구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467)

요란한 논쟁, 떠들썩한 분석, 두려운 예언, 축하, 분노 어린 한탄, 그의 삶이 그에게서 흘러나가고 있었다. 삼 주 전 일이 벌써 희미해지거나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걸 조금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안 그러면 살아갈 가치가 거의 없을 테니까. 그가, 그리고 최근에 만난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읽고, 보고, 이야기한 것. 사적이거나 공적인 삶. 자신의 실패와 불만과 꿈은 담지 않기로 했다. 마침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거나 하는 날씨 이야기도,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쏜살 같은 시간이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에 대해서도, 오직 그가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한 말만 담기로 했다. 적어도 하루에 반시간은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정신. 해마다 새 노트를 쓰는 것이다. 다 채우든 못 채우든. 일 년에 노트 세 권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십 년, 지극히 운이 좋으면 삼십 년. 그럼 아흔 권이 된다! 아주 장대하고 단순한 프로젝트였다.


(472-473)

롤런드는 이십대 후반, 독학에 전념할 때 과학에는 미지근한 정도의 관심만 있었다. 공부는 계속하면서도 과학에는 인간미가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다. 화산, 떡갈나무 잎, 성운 같은 것의 숨겨진 작용-다 좋지만, 그를 매료시키지는 못했다. 과학은 인간이 혼자 또는 함께 번영하거나 실패하고, 사랑이나 미움을 느끼고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영역에 자리잡았을 때, 미약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제안만 내놓았다. 이미 알려진 것, 정신의 평행우주에서 오래전부터 이해되거나 뇌 안의 사건들에 대해 자명한 이치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물리적 설명을 제공했다. 이를테면 개인적 갈등 같은 일에. 그건 오디세우스가 이십 년 동안 집을 떠났다가 절룩거리며 돌아왔을 때 그와 페넬로페 사이에 부부싸움이 벌어진 후로 문학에서 이천칠백 년 동안 알고 논쟁해온 문제였다. 이것도 이타카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쩌면 그들이 나중에 화해할 때 페넬로페의 동맥에 다른 많은 물질과 함께 옥시토신이 흐르고 있었음을 아는 건 흥미로울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우리에게 그들의 사랑에 대해 무엇을 더 말해주겠는가?


(600)

소중한 내 사랑, 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 나를 강에 뿌려줘. 이십 년이 걸린다 해도 상관없어. 당신 혼자 힘으로 다리까지 와서, 우리가 서 있었던 곳에 서서 우리에 대해, 그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만 하면 돼. 난 십대 때 불가리아인과 사랑에 빠졌지. 그는 언젠가 유명한 시인이 되겠다고 했어. 그 꿈을 이뤘는지 궁금하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나는 사십 년 넘게 지난 뒤 같은 장소로 돌아가서 당신과 사랑에 빠졌지. 아니, 오래전까지 당신을 사랑했음을 깨달았지. 차를 몰고 당신과 함께 산길을 달리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옆에 앉아서 지도도 봐주고, 펜션의 조율도 안 된 피아노로 내가 신청한 감상적인 곡을 연주해준 당신, 정말 고마워. 다 고마워. 이 여행이 당신에겐 고통이리라는 거 나도 알아.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할 또하나의 이유지. 이 아름다운 강을 당신 혼자 찾아오게 해서 정말 미안해. 내 사랑,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지 마! 대프니.


(674)

롤런드에게 죽음의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은, 이야기에서 제외된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를 이렇게 멀리까지 따라왔으니,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에게 필요한 책은 한 해에 한 장씩 백 개의 장으로 구성된 21세기 역사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는 그 책의 4분의 1도 읽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저 목차를 훑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재앙적인 지구온난화는 막을 수 있을까? 중국과 미국 간의 전쟁이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까? 전 세계로 퍼진 인종차별적 민족주의가 더 관대하고 건설적인 무언가로 대체될 수 있을까? 우리는 현재 진행중인 대멸종을 되돌릴 수 있을까? 열린사회가 번영할 수 있는 새롭고 더 공정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우리를 현명하게 만들어줄까, 아니면 미치거나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까? 우리는 이 세기를 핵미사일 교환 없이 관리할 수 있을까? 그가 보기에는, 그저 무사히 21세기의 마지막날, 책의 마지막 장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승리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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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전승희 옮김 / 강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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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책관련 SNS에서 자주 노출이 되어 알게 된 책이란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가 쓴 <사소한 일>이란 책이야. 책 제목은 사소한 일이라고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내용으로 책 제목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정한 것 같구나. 팔레스타인 문제는 강대국들의 의해 희생된 약소국의 아픔이라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단다. 우리나라도 강대국들의 다툼으로 인해 나라가 둘로 갈려졌으니 그들의 아픔에 더욱 공감이 가는구나.

그들은 여전히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지만 가지고 있는 땅마저 계속 넘보며 싸움을 걸어오는 못되고 돈 많은 이웃이 있어 늘 전쟁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어. 멀쩡한 자신의 땅에 2000년 전에 산 적이 있다면서 빼앗으려고 오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맞을까. 당연히 자신의 땅을 지키려고 맞서 싸웠지.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막강한 후원자와 돈이 있었단다. 결국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고 말았어. 아빠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자세히 알지 못하니, 이 정도만 이야기하고 혹시 너희들이 관심이 있다면 유튜브 등을 통해서 찾아보렴.

소설 <사소한 일>은 팔레스타인의 문제의 시작점과 오늘날 희생된 두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알리려는 것 같았어. 책은 두껍지 않지만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묵직했단다.

 

1.

1부는 1949 8 9일 네게브 사막에서 시작한단다. 1949년이면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게 땅을 빼앗긴 전쟁을 벌인지 일 년이 지난 즈음이란다. 네게브 사막에서 작전 수행하는 이스라엘 군대를 통솔하는 소대장의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된단다.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는 끝간 데 없는 사막을 정찰하고 있었어. 사막 어딘가에 숨어 있는 첩자를 색출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단다. 한 여름 사막의 작전 수행은 더위와 가뭄과 싸움으로 너무 힘들었단다. 거기에 이름 모를 물것들이 공격해와 더 피곤했어. 소대장은 막사에서 잠을 자다가 이름 모를 물것에 허벅지를 물리게 되는데 곧바로 자제 소독을 했지만, 상처는 덧나고 몸은 열이 나는 등 계속 고생을 했단다.

어느 날 그의 부대는 낡은 집에 개와 단둘이 있는 팔레스타인 소녀를 발견했어. 소대장은 그 소녀를 처음에는 식당에서 일하게 했단다. 병사들이 그녀에게 수작 부린다는 보고를 받고 소녀를 자신의 숙소에서 자라고 했어. 깔끔쟁이인 소대장은 소녀를 목욕시키고 그의 숙소 한쪽 켠에 자라고 했어. 그래서 그 이성적인 사람인줄 알았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물것에 물린 상처에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소녀를 겁탈했단다. 그 이후 소대장이 없는 사이, 병사들이 소녀를 겁탈했단다. 그리고는 소녀를 총살하고 구덩이 묻어버렸어. 이유도 없었어. 그들에게는 사소한 일인 양 정찰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거야.

….

그 일이 있고 수십 년이 지났어. 이번에는 라는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단다. ‘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우연히 오래 전 사막에서 이스라엘 군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고 죽음을 당한 소녀를 알게 되고 진실을 찾아 나서기로 한단다. 조사를 하다 보니 그 소녀가 살해된 날로부터 정확히 25년 뒤에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공감을 갖게 되었어.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는 이스라엘에 위치한 역사박물관을 가려고 계획했어.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인 는 이스라엘에 가는데 제약이 있었어. 그래서 친구한테 신분증까지 빌려서 이스라엘에 들어간단다. 역사박물관과 기록보관소에 가보고 소녀가 살았던 니림 마을에서 살고 계신 나이 많은 할머니를 만났지만,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했어. 좀더 위험을 무릅쓰고 군사 지역까지 가다가 검문소에서 군인들에게 붙들린단다. 그리고 그 군인들의 총에 그만 죽고 말았어.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 수십 년 전의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으로 소설이 끝날 줄 알았는데, 충격적인 결말로 끝이 났단다. 이런 결말로 인해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던 것 같구나.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의 아픔을 같이 공감해주고 관심을 가져주어야 이스라엘이 섣불리 그 심한 짓을 못 할 것 같구나. 팔레스타인에도 영원한 평화가 오길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마친다.

 

PS,

책의 첫 문장: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아득히 총성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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