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나는 기다린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내 자아는 지금부터 내가 구성해야만 하는 물건이다. 연설을 짜맞춰 구성하듯이. 지금부터 내가 내놓아야 하는 것은 선천적인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무엇이다.

 

(126~127)

우리는 기다리고, 복도의 시계는 똑딱거리고, 세레나는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 불을 붙인다. 그 사이 나는 자동차 속으로 들어간다. 토요일 아침이고 9월이다. 우리한테는 아직 자동차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사정이 나빠져서 자동차를 다 팔아야만 했다. 내 이름은 오브프레드가 아닌 다른 이름이다. 지금은 금지된 이름이라 아무도 불러주지 않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이름이란 건 전화번호와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나 쓸모 있는 거라고. 하지만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일 뿐 사실이 아니다. 이름은 중요한 문제다. 나는 그 이름의 기억을 숨겨놓은 보물처럼 언젠가 다시 돌아와 파낼 나만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 이름이 묻혀 있다고 여기고 있다. 나의 진짜 이름에는 마력이 있다. 상상할 수도 없이 아득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부적 같은 마력이. 밤마다 내 싱글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감으면 그 이름이 눈앞에 어른거미려 떠다닌다. 손에 닿을락 말락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떠다닌다.

 

(256)

대재앙 직후, 그들은 대통령을 쏘아죽이고 의회를 기관단총으로 쓸어 버렸고, 군대는 계엄령을 선언했다. 당시 그들은 이슬람 광신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침착하십시오. 그들은 텔레비전에 나와 말했다. 상황은 완벽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누구나 충격을 받았을 거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부 전체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다니. 그들은 어떻게 침입했을까.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때가 바로 그들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켰을 때다. 그들은 한시적인 조치라고 했다. 거리에선 소요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밤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지시를 기다렸다. 사태의 주범이라고 지목할 수 있는 확실한 적도 없었다.

 

(293)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아침이면 우리 집에서 눈을 뜰 테고 전부 옛날로 돌아가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일은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327~328)

그러나 단 한 사람의 여성이라도 침묵을 깨고 감히 가르치려 들거나, 남자들의 권위를 침범하려 한다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최초로 창조되었고, 그 다음에 이브가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속지 않았지만, 여자가 속아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자비와 신성함의 길을 지켜나가기만 하면, 여성은 출산으로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출산으로 구원을 받다니, 나는 생각한다. 구시대에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구원해 줄 거라 믿었던 걸까?

 

(336)

옛날 우리의 사고 방식을 돌이켜 보면 낯설기만 하다. 손만 뻗으면 뭐든 가능할 것처럼 생각했다. 우연이라든가 한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한없이 뻗어가는 우리 삶의 경계를 마음대로 빚고 수정하는 일을 영원히 계속할 수 있을 것처럼, 우리는 믿고 생각했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다. 루크는 내게 첫 남자가 아니었고, 어쩌면 마지막 남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얼어붙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시간 속에, 허공 한가운데, 그때 그 나무들 사이에 떨어지는 모습으로, 그렇게 정지해 죽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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