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일본은 섬나라이면서도 해군이 아닌 육군이 일으킨 나라입니다. 육군이라는 게 너 죽고 나 살기로 대거리를 해야 하는 군대입니다. 바다에서 싸우는 해군과는 적과의 거리가 다릅니다. 해군은 배가 깨지면 지는 거지만 육군은 손으로 찌르고 칼로 베어서 상대를 죽여야 합니다. 일본제국주의를 이끈 주도세력이 육군이었기에 또 바다가 아니라 육지로 기어올라올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조선의 고통이 거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97)

원자폭탄은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는 연쇄적 핵분열을 통해 발생하는 에너지의 파괴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원폭 에너지의 50퍼센트는 충격파를 만들며 폭풍으로 변한다. 2.5킬로미터 안에 있는 모든 목조건물이 산산조각 나고 2층 벽돌건물이 무너지며 불이 붙었다. 철골 건축물은 지붕이 날아가버리고 철교의 상판은 뒤틀렸다. 폭심지에서 15킬로미터 밖의 건물 유리창까지 부서져내렸다.

 

(404~405)

이날 단 한발의 원자폭탄에 의해 24만명으로 추산되던 나가사끼 인구 가운데 7 4천명이 그해 연말까지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그들의 죽음을 사몰(死沒)이라도 표현한다. 시신조차 찾을 길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무너져내린 시가지의 폐허 속에 매몰되거나 한순간에 타버려 가루가 되어 흩어졌기 때문이다. 이 비극적인 수치 안에 2만여명의 조선인 피폭자가 포함된다. 사망 1만명에 부상자 구조활동을 위해 투입되어 2차 방사능 피해를 입은 1만명의 징용공들을 합친 숫자이다.

나가사끼에서 원폭으로 죽어가야 했던 징용공들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되는 속에서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그때 거기 있었다는 우연과 미쯔비시의 수많은 군수공장이 포진한 나가사끼에 끌려온 징영공이라는 필연이 교직하면서 만들어낸 나가사끼 조선인 피폭자의 죽음은 그토록 허무하고 무구하다.

 

(413)

나를, 저 일본사람들을, 아니 우리 모두를 이렇게 내몰리게 한 것은 무엇일까. 전쟁, 일본이라는 나라, 그리고 저편에 B29를 번득이며 폭탄을 쏟아붓는 미국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만든 것이 우리를 죽이고 불태우고 절멸시키고 있다. 대가리가 꼬리를 물어뜯으며 짓씹어 제가 제 몸을 죽이는 꼬락서니다. 이 혼돈을 어떻게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는 거다.

 

(468)

여기서 흘러간 날들이여. 나가사끼는 나에게 조국이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잊지 않으리라. 나가사끼는 나에게, 나라가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나가사끼에서의 날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걸 이처럼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거다. 이제 돌아가서, 젊은 아이들을 가르치자. 내 나라 글, 내 나라 말, 내 나라 풍습과 역사를 가르쳐서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나라가 있음을, 아니 되찾아야 할 조국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겪은 고난을 가르치고 기억하게 할 거다. 어제를 잊은 자에게 무슨 내일이 있겠는가. 어제의 고난과 상처를 잊지 않고 담금질할 때만이 내일을 위한 창과 방패가 된다.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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