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빠졌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자고로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을 얻으려면 지금, 단어의 정의에 입각해서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 베이스가 갖춰져 있어야만이 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1바이올린이 없거나, 관악기가 없거나, 북이 없거나, 트럼펫이 없거나, 그 밖에 다른 악기가 갖춰져 있지 않은 오케스트라는 있습니다. 하지만 베이스가 없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결국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콘트라베이스가 오케스트라 악기 가운데 다른 악기들보다 월등하게 중요한 악기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서슴없이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지만 말입니다.

(18)

이 악기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이렇게 많은 속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음을 끄집어내어 들을 수가 없을 뿐이지요. 음악의 속성상 그렇다는 겁니다. 현악기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경우는 더구나 더 그렇지요. 그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보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마음속에 온 우주를 품고 있는 듯이 자로 잴 수 없을 만큼 넓은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런 속성을 다 밖으로 표출해낼 수는 없지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건 그 정도로 해두고.

현이 네 개면 이렇게 됩니다. - - - .

(26)

콘트라베이스는 인간이 악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이한 악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속성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악기이기도 합니다. 여기 좀 보세요. 저는 여기 우리 집에 사방 벽과 천장과 바닥에 방음판을 다 붙여 놓았습니다. 문은 이중으로 만들었고, 이중문 사이는 비어 있지 않도록 속을 꽉 채워 놓았습니다. 창틀의 틈을 완전히 밀봉시킨 창문에는 특수 이중 유리로 된 유리창을 끼워 놓았습니다.

(51~52)

그럴 때면 저는 이 녀석을 저쪽에 있는 등받이 의자 위에 올려 놓고, 활은 그 옆에다 놓고, 저는 여기 이렇게 안락의자에 앉습니다. 그렇게 해놓은 다음 저는 이것이 아주 볼품이 없는 악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이것을 한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한번 자세히 봐주십시오. 꼭 살이 피둥피둥한 아줌마 같지 않습니까. 엉덩이는 축 처졌고, 허리 부분은 잘록하지도 못한 것이 위쪽으로 지나치게 길게 뽑아 올라져서 도대체가 못마땅합니다. 게다가 가늘고 축 늘어져 곱사등이 같은 어깨 부분 좀 보십시오. 정말 못 말립니다. 이렇게 외모가 엉망으로 보이게 된 원인은 콘트라베이스가 음악 역사상으로 보면 일종의 잡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랫부분은 큰 바이올린과 같고, 윗부분은 커다란 저음 4현금 겜브와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콘트라베이스는 이제까지 발명된 악기 가운데 가장 못생기고, 거칠고, 우아하지 못한 악기입니다. 악기의 돌연변이지요. 종종 저는 이것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톱으로 토막을 내고 싶기도 하고, 잘게 부숴 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잘게 가루를 내거나, 톱밥처럼 만들어 목재를 가스로 바꾸는 기계에 집어 넣거나….. 아무튼 결판을 내고 싶기도 합니다. 제가 이 악기를 사랑한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녀석은 연주하기도 무척이나 까다롭습니다. 반음을 세 개만 내려고 해도 손가락을 쫙 펴야만 하거든요. 겨우 반음 세 개를 가지고 말입니다.

(67~68)

음악은 사실 어떤 의미로 해석해 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했을 겁니다. 정치나 역사와는 반대되는 성격을 띠는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음악을 아주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적인 영혼과 정신에 따라 본질적으로 구성된 결정체 말입니다. 그러므로 동양이든 서양이든, 남아프리카이든 스칸디나비아 반도이든, 브라질이든 수용 군도이든지 간에 한결같이 어느 곳에서든 음악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음악은 형이상학이니까요. 형이상학이라는 말 아시지요. 실제적인 존재 이상 혹은 그 이면, 다시 말하면 시간과 역사와 정치와 빈곤과 부귀와 삶과 죽음 그 이면의 것들을 말하는 겁니다. 일찍이 괴테는 음악은 영원하다라는 말한 바 있습니다. <음악은 지극히 지고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해력도 그것과 같은 수준에 있을 수가 없고, 그것은 모든 것을 통치하며, 어느 누구도 감히 그것을 말로 설명하려는 용기를 갖기 못할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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