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는 묻지 않으리
- 시천주 2014년 4월 16일
홍일선
길섶 풀 한 포기
외진 곳 몽돌 하나이
응달 습생들 벌레 한 마리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공경의 말씀 이 땅에 누대로 계셔서
은빛 갈대들이 기꺼이
마을숲이 되어주었던 강마을
앉은뱅이꽃으로 만든 집 울타리
아기들 옹아리도 뉘엿뉘엿 지는 노을도
그 마을 저녁 연기 만나 지극했으리라
그러하온데 갈대숲 너머
단양쑥부쟁이들이 스러지던 봄날
연둣빛 신생의 아픔이 그믐달처럼
그 집을 찾아주신 것
이기지 못하고 늘 지는 것들 쓰라린 것들
그것들 슬픈 눈빛들이야말로
온 생명 보듬어 안아야 할 대덕이시라고
어머니시라고 그리운 님이시라고
한 농부에게 조용히 일러주신 것
그 농부 그믐달이 이윽한 마당에서
그리하여 흙님 숲님 강님 햇빛님 곡식님께
삼가 무릎 꿇어 삼배 올린 것
하늘 아래 생명 가진 것들에게는
하늘님이 계시다고 그 농부 믿게 되었을 것이다
산천 오랜 기다림들이
꽃망울 터뜨리는 봄날
2014년 4월 16일 봄날
그 집에선 어미 닭들
줄탁동시 산고가 있더니
병아리들이 세 마리 다섯 마리
아홉 마리 열네 마리
목숨의 꽃들을 꼬옥 보듬어 안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거룩한 봄날을 뵈옵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 그러하온데 진도 어디라 했던가
어여쁜 꽃들로 가득 찬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청천벽력의 소리가 들려왔던 것
울음이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들려왔던 것
그 집 갓 태어난 병아리들도 들었을 것이다
앉은뱅이꽃 울타리 홍씨도 들었을 것이다
못자리 물을 대던 이장도 들었을 것이다
아욱 씨를 파종하던 새마을 지도자도 들었을 것이다
비닐하우스를 손보던 김씨도 들었을 것이다
배꽃이 영 글렀다고 한숨짓던 배씨도
밀린 사료값 때문에 밭 한 두락 내놓은 황씨도
4대강 공사가 끝난 뒤부터 양수장 물이 말렀다고
투덜대던 강씨도 들었을 것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 모두 들었을 것이다
살려달라는 소리 들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대저 에프티에이가 무엇이기에 난리를 치는 거냐고
묻고 또 묻던 구노인회장도 들었을 것이다
대처 나가 사는 아들 내외 온 김에
땅콩이며 강낭콩 옥수수까지 심어 한시름 놓았다는
홀로 사는 충주댁 할머니도 들었을 것이다
부녀회장님 당나귀 다정이도 들었을 것이다
언평 벙어리 내외도 들었을 것이다
오호라
거룩한 봄 날
꽃 피는 봄 날
소용없는 그리움이었을까
처음부터 부질없는 비나리였을까
이 나라 귀태鬼胎들의 시간 어디였을까
가여운 가여운 팽목항에
붉은 동백꽃들이 하나씩 하나씩 질 때
마침내 우리나라 꽃이 다 질 때
밭에서 일하는 게 큰 죄를 짓는 서 같아
일찌감치 집에 들어와 귀 세우는 시간
앉은뱅이 꽃집 어미 닭의 일곱 시간은
지극한 생명의 시간이었는데
꽃이 지기 시작한 오전 아홉 시부터
꽃이 가뭇없이 진 오후 다섯 시 그때까지
거룩한 생명의 시간이었으리
이제 다시는 박근혜 그에게 묻지 않으리
오늘부터 쓰러진 것들에게 물으리
아픈 강물에게 물으리
시든 풀들에게 물으리
깨진 몽돌들에게 물으리
쓰라린 생명들에게
공경의 말씀으로 물으리
누구는 봄날이 간다고 설워하기도 하지만
이 땅 또 찾아주신 붉은 진달래꽃이 고마워서
시천주로 고요히 호명하노니
봄날 어린 꽃들이여
우리나라 꽃들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