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그러니까 내 말의 포인트는 이거야. 인간은 자꾸 동물을 인간화시키려고 해. 그것도 자기와 친한 동물들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동물화는 참지 못하는 게 또 인간이야. 그러니까 개만도 못한 인간, 돼지 같은 인간, 이런 말에 심한 모욕을 느끼잖아. 나는 말이야. 그게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무언가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수치심과 모욕을 느끼게 하는 거. 내 말 이해했어?”


(470)

물론 왕세자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가, 나폴레옹이, 도무지 자신을 왕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었다. 스페인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총사령관 뮈라 장군에게(그는 나폴레옹의 매제이기도 하다) 소식을 넣었으나, 그는 새 국왕을 예방하러 오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핀토 마을로 프랑스군을 보내 모든 도로의 출입을 막아버렸다(그게 어디 뮈라 개인의 뜻이었겠는가!) 아란후에스 별궁에 갇혀 있던 카를로스 4세 국왕은 양위 각서는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고(아들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고, 이래서 자식 교육이 중요한 것이라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일주일 넘게 핀토 마을에 잘(?) 갇혀 있던 고도이의 호벅지 상처는 차츰차츰 아물고 있었다(고도이는 프랑스군의 호위를 받으며 핀토 마을에서 비야비시오사 마을로 옮겨졌다. 그곳은 고도이의 영지이기도 했다). 왕세자는 분노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나폴레옹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추리에 골몰했지만 쉬이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당연히 그럴 수밖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할 줄 아는 게 부모에 대한 반항이 전부인, 그저 그런 애새끼에 불과했다).


(511)

박유정은 루시를 집 앞마당 양지바른 텃밭에 묻었다. 루시를 묻고 있는 동안 루시의 자손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녀 옆에 서서 구경했다. 어린 강아지들은 까불거리며 서로 쫓고 쫓으면서 담벼락 근처에서 뛰어놀았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버린 자두와 가을이, 보름이는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는 루시를 다 묻은 후, 그 옆에 작은 동백나무 하나를 심었다. 그 나무가 루시의 묘비가 되어주었다. 누군가의 묘비를 세워주는 일. 박유정은 그것이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책이라고. 그녀는 계속 그 일을 내나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