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114)
어느 시대가 더 행복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때도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이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다만, 이런 맥락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는 현재 소설을 읽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소설은 갈등을 겪으면서 시작해요. 문제적 자아가 집을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하면서 ‘나는 누구?’라는 답변을 찾는 거예요. 답을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찾았다고 생각한 답이 오답일 수도
있고, 나중에 바뀔 수도 있죠.
(217)
여기서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인생, 그러니까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이야말로 에세이 쓰기가 밀접하게 접목되어 있습니다. 에세이는 나의 기억을 갖고
내가 쓰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에서 중요한 사물, 인물, 사건 등을 떠올리면서 잘 표현되지 않았던 내 감정이나 포착되지 않았던 내 생각을 다시 잡아서 쓰는 거예요. 즉,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합심해서 만드는 일종의 ‘자아 찾기’, 이것이 바로 에세이입니다. 우선 자아를 찾아야지만 쓸 수 있냐고요? 아뇨, 쓰면서 찾을 수 있습니다!
(224-225)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大地)의 소작(小作)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대로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_이상국 <혜화역 4번 출구> 전문
(242)
그런데 일단 써보시면 아실 겁니다. 과정 자체가
힐링이 된다는 사실을요. 에세이를 쓰는 시간은 감정의 디톡스 시간이 됩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타인에게
보여주어야만 글입니까. 가장 소중한 내가 볼 건데요. 그러나
쓰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기쁨을 느끼실 거예요. 조금 더 열심히 쓰면 책으로 출간도 가능합니다. 요즘은 대량 생산만 하는 게 아니라 책 한 권만 출간해 주는 업체도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