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옥타비아 버틀러의 대표작 <>을 재미있게 읽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두어 권 더 구매했단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주로 SF 소설을 썼는데, 이번에 읽은 <와일드 시드> SF 소설이란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 여성 작가로 <>에서도 흑인과 여성이라는 주제가 책에 녹아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와일드 시드>도 그런 내용을 의식하고 읽게 되더구나. 그래서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들은 다른 SF 소설과 다른 영역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페미니스트, 흑인, 거대 도시에 사는 은둔자, 그리고 열 살 때의 꿈을 잊지 않고 여든 살이 되어서도 계속 글을 쓰고 있기를 꿈꾸는 작가이다.” 이 말은 옥타비아 버틀러가 한 말이란다.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시면서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58세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지셨다고 하더구나.

….

 

1.

주인공의 이름은 도로. 보통명사 도로와 똑같아서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책을 읽으면 보통명사 도로인줄 아는 경우도 있으니,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유의해야 함. 주인공 이름을 '도오로'로 번역해도 괜찮았을 텐데... 아무튼 도로는 초인이란다.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 소설의 시작 시점인 1690년 기준으로 도로는 삼천 년을 넘게 살아왔단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한 육체로 그렇게 살아온 것이 아니라, 다른 육체를 죽이고 그 육체에 자신의 혼이 들어가는 방식이란다. 마치 오래된 옷을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는 것처럼 말이야.

도로는 세계 이곳 저곳에 자신과 비슷한 종족을 만들기 위해 부족을 키웠는데, 아프리카에 만들어 놓은 일족이 모두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어. 1690년대 아프리카라면 한창 노예 사냥을 하던 시기였는데, 아마도 노예 상인들이 그들을 납치해 간 것 같았단다. 이곳 저곳 자신의 일족들을 찾으러 다니다가 도로는 아냥우라는 여자를 만났단다. 아냥우도 초인이었어. 아냥우도 300년 넘게 살았으며,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었단다. 사람뿐만 아니라 표범이나 돌고래 같은 동물로도 바꿀 수 있었어. 이 소설의 장르가 SF라는 점을 명심하자꾸나.

도로는 아냥우에게 함께 가자고 했어. 그리고 함께 강력한 동족을 만들자고 했어. 일종의 청혼 같은 거지... 아냥우는 고민을 하다가 도로가 싫지 않았는지 알겠다고 했단다. 도로와 아냥우는 또 다른 도로의 일족이 있는 곳을 갔단다. 도로에게는 아들 아이작이 있었고, 아냥우에게는 손자 오코예가 있어서 함께 길을 갔단다. 오코예는 노예로 팔릴뻔한 것을 도로가 구해주었단다. 그들은 배를 타고 다른 대륙으로 갔단다. 그 대륙은 얼마 전에 유럽인들에게 발견된 아메리카 대륙이었던 거야.

....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그들은 도로의 일족들이 살고 있는 휠러라는 마을에 도착했단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왔기 때문에 아냥우도 그곳 사람들에 맞게 옷도 드레스로 바꿔 입었단다. 그리고 휠러 사람들의 풍습에 따르려고 했단다. 아냥우에게 있어 이해 가지 않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우유를 먹는 것이었단다. 짐승이 먹는 것을 왜 사람들이 먹냐면서 말이야. 생각해 보니, 그렇네.

...

한편, 휠러에 와서 도로가 아냥우에 대한 태도를 바꿨어. 사실 도로는 아냥우를 데리고 온 것은 그저 자신의 배필로 데리고 온 것이 아니었단다. 도로는 오직 우수한 능력을 가진 이들을 낳는데 첫 번째 목적을 두고 있단다. 그렇게 데리고 온 외지인을 그들은 와일드 시드(wild seed)라고 불렀단다. 이 소설이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될 때는 제목을 wild seed를 번역하여 <야생종>으로 출간한 적도 있었단다. 아무튼 도로의 목적으로 우수한 후속은 낳는 것이기 때문에 아냥우를 자신과 이미 잠자리를 가졌지만, 자신의 아들 아이작과 결혼시키려고 했단다. 도로를 남편으로 생각하고 왔던 아냥우는 도로의 그런 비도덕적인 행동에 결혼을 거부하려고 했단다.

 

2.

시간은 흘러 1741년이 되었어. 소설의 시작 시점으로부터 50년이 흘렀지. 도로와 아냥우는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이를 먹었어. 도로가 자신과 똑같은 초인의 능력을 가진 후손을 낳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다른 범상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많았지만 그처럼 영생하는 하는 이는 아직 없었어. 삼천 년 넘게 노력해서 없으면 없는 거지, ... 다른 범상한 능력은 가진 이들을 보면, 생각을 읽을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사람 등이 있었단다. 50년 전에 아냥우가 아이작과 결혼을 거부했지만 결국 결혼하게 되었단다. 아이작은 도로와 달리 아냥우에게 잘 대해주었단다. 그래서 아냥우도 아이작을 믿고 사랑하게 되었어. 하지만 아이작은 점점 늙어갔지. 아지작은 아냥우를 도와주려다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아냥우는 더 이상 도로의 폭력성과 권위를 참지 못하고 도망가기로 했단다.

....

시간은 또 흘러 1841.. 백 년이 흘렀어. 1741년 때 이야기했던 이들은 모두 죽고 사라지고, 도로와 아냥우만 여전히 살고 있었어. 도로는 여전히 자신을 따르는 일족을 만들고 여러 우수한 야생종들을 데리고 와서 또 후손을 만들었어. 도로는 왜 자신의 후손을 만드는 일에 집착을 할까. 도로는 한편 도망간 아냥우를 추격하하게 되는데 결국 다시 만나게 되었어. 그들이 떨어져 있던 100년의 시간 동안 아냥우도 나름 자신의 일족을 만들어 평화롭게 살고 있었어. 하지만 도로가 다시 와서 갈등을 빚었지만, 도로도 아냥우를 대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단다. 이해하려고 했고, 그런 변한 도로를 본 아냥우도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 싹텄어. 교배가 아닌 진정한 사랑 말이야. 그러나 아냥우는 사는 게 지쳤다고 자살하기로 했단다.

도로뿐만 아니라 아냥우의 일족들은 아냥우의 자살을 만류하게 되고, 아냥우는 도로에게 약속을 하나 하면 자살하지 않겠다고 했어. 도로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폭력을 하지 않고 살인도 하지 않는다면 자살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결국 아냥우는 자살하지 않았어. 도로도 진정한 사랑을 얻은 다음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그 진정한 사랑을 얻는데 삼천 년이 넘게 걸린 거야?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것이 영원할까? 그 사랑이 변하고 식는다면 예전의 도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백 년도 못사는 사람들도 성격 변하기 쉽지 않은데 삼천 년 넘게 산 사람의 성격이 과연 변할까. 아빠는 부정적으로 본단다. 소설은 도로와 아냥우가 이해와 사랑으로 끝을 맺었지만, 그 이후의 삶에는 큰 기대가 안 가더구나.

....

이 소설은 남성 우월주의를 빗댄 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 소설이었어. 옥타비아 버틀러의 전작 <>을 재미있게 봐서 기대치가 높은 상태에서 <와일드 시드>를 봐서 그랬는지 아빠는 별로였단다. 도로가 왜 이렇게 자손 번식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그런데 도로와 같은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자꾸 다른 사람의 몸을 옮겨 타야 영생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쌓이는 죄책감으로 정신질환이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냥 아냥우처럼 자신의 몸으로 영생하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가끔씩 되고 싶은 동물이나 사람이 되어도 좋고.. 그러고 보니 아냥우의 능력이 더 뛰어난 것 같은데, 왜 도로를 제압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도망다니지 말고 거대한 동물이나 포악한 동물이 되어 도로를 제거했으면 된 거 아닌가? .. 이래저래 기대에 조금 못 미친 소설이었어.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도로는 자신의 종자(seed) 마을 한 곳을 수습(收拾)하러 떠난 여행길에서 우연히 그녀를 발견했다.

책의 끝 문장: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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