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모든 게 다 끝나는 날, 태양과 우주도 죽는 그날, 어째서 인류만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야 하지? 이 세상은 지금 편집증에 빠져 있어. 어리석게도 아무 희망도 없는 전쟁에 집착하고 있어. 삼체 위기에 대응하려면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해. 모든 고민을 떨쳐버려야 해. 위기와 관계된 것이든, 위기 이전의 모든 고민이든 다 떨쳐버려. 남은 시간은 오로지 인생을 즐기는 데 써야 해. 400년 동안, 아니 마지막 전쟁을 포기한다면 거의 500년 가까운 시간이 되겠지. 500년이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야. 500년 동안 인간은 르네상스 시대에서 IT 시대로 발전했어. 그러니까 그 세월 동안 지금껏 한 번도 누리지 못한 걱정 없는 행복한 생활을 만들어내야 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배제한 전원의 시대를 누려야 해. 인간의 유일한 의무는 삶을 누리는 거야.”

 

(671)

틀렸어요. 우주는 아주 크지만 생명은 그것보다 더 커요. 이건 두 번째 공리로 알 수 있어요. 우주의 물질 총량은 변하지 않지만 생명은 지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요! 지수는 수학의 악마예요. 바닷속에 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30분마다 한 번씩 분열한다고 가정해보세요. 그 세균들의 양분이 충분하기만 한다면 며칠 만에 그놈들이 지구상의 모든 바다를 가득 채울 거예요. 인류와 삼체 세계에 현혹되어 착각되지 마세요. 두 문명 모두 아주 작아요. 그저 갓 태어난 문명일 뿐이에요. 문명이 장악하고 있는 기술이 어떤 임계를 넘어가면 생명이 우주에서 확장된다는 건 아주 무서운 일이에요. 예를 들어 현재 인류의 항해 속도라면 100만 년 후면 지구 문명이 은하계 전체를 가득 채울 수 있어요. 우주의 기준에서 보면 100만 년은 아주 짧은 시간이에요.”

 

(677)

우주는 암흑의 숲이에요. 모든 문명이 총을 든 사냥꾼이죠. 그들이 유령처럼 숲속을 누비고 있어요. 길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살며시 치우고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숨소리조차 낮추고…… 조심해야 해요. 숲속에 곳곳에 사냥꾼들이 숨어 있으니까요. 다른 생명을 발견하면 그게 사냥꾼이든 아니든, 천사든 악마든, 갓난아기든 꼬부랑노인이든, 소녀든 소년이든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에요. 총을 쏴서 없애버리는 거죠. 이 숲에서 타인은 그 자체만으로 지옥이고 영원한 위협이에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그 어떤 생명도 곧바로 없애버려야 해요. 이것이 바로 우주 문명이고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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