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나중에 알아볼 것들을 생각하는 일도 근사하지 않나요? 살아 있다는
게 기쁘게 느껴지거든요.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아요. 우리가
모든 걸 다 안다면 사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 거예요. 안 그래요? 그러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일도 없겠죠? 그런데 제가 말이 너무 많나요? 모두들
그렇게 말해요. 제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으세요? 아저씨가
그렇다면 조용히 할게요. 전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그만둘 수 있거든요.
(62)
이런 아침에는 세상이 온통 사랑스럽지 않나요? 시냇물의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와요. 시냇물이 얼마나 유쾌한지 아세요? 언제나
웃고 있어요. 겨울철에도 얼음 밑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요. 초록
지붕 집 근처에 시내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어차피 여기서 살지도 못할 건데 무슨 상관이냐
싶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다시는 보지 못한다 해도 전
초록 지붕 집에 시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거예요. 만약 없었다면 그곳에 시내가 꼭 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늘 따라다닐지 모르거든요. 전 오늘
아침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지 않아요. 아침엔 절대 그럴 수가 없어요. 아침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무척 슬퍼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주머니가 바라시던 아이는 바로 저이고, 여기서
언제까지나 살게 되었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상상을 하는 동안에는 큰 위로가 됐어요. 하지만 상상의 가장 나쁜 점은 깨어날 때 마음이 아프다는 거예요.
(168)
어머, 어떤 일이든 기대하는 데 그 즐거움의 반이 있는 걸요. 혹시 일이 잘못된다 해도 기대하는 동안의 기쁨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거예요.
물론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실망할 일도 없으니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전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쪽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397)
전 초록 지붕 집에 온 뒤부터 실수를 많이 저질렀는데, 그 실수들은
하나같이 저의 큰 단점들을 고치게 해줬어요. 자수정 브로치 사건으로 제 것이 아닌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게 됐고요. 유령의 숲 일은 상상에 너무 빠져 드는 버릇을 고치게 해줬어요. 진통제 케이크 사건으로, 요리할 때 신중하지 못한 습관을 버리게
됐고요. 염색 사건을 겪으면서는 허영심이 없어졌어요. 이젠
더 이상 머리나 코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적어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오늘 실수는 지나치게 낭만을 찾는 습관을 고쳐 줄 거예요.
(428)
지난 한 해 동안 다들 열심히 잘해 주었어요. 여러분은 즐겁고 신나게
방학을 보낼 자격이 있어요. 밖에서 마음껏 뛰어 놀면서 다음 학년을 위한 건강과 활기와 포부를 가득
채우도록 하세요.
(472)
글쎄, 난 다이아몬드가 없어 평생 위안받지 못하더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긴 싫어. 난 진주 목걸이를 한 초록 지붕 집의 앤으로 충분히 만족해. 분홍 드레스를 입은 부인의 보석 못지않게 이 목걸이에 담긴 매슈 아저씨의 소중한 사랑을 난 알고 있으니까.
(475)
전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그저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 내고 새 가지를 뻗었을 뿐이에요. 초록
지붕 집에 있는 진짜 제 모습은 한결같아요. 제가 어디를 가든 겉모습이 어떻게 변하든 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요. 마음속엔 항상 어린 앤이 있어서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와 정겨운 초록 지붕 집을 날마다
더욱더 사랑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