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

오디세우스는 고개를 숙인다. “맞는 말일세. 하지만 명성이라는 게 희한한 물건이란 말이지. 죽고 난 다음에 영예를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희미해지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이 세대에서는 존경의 대상이었던 것이 다른 세대에서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는 넓은 손바닥을 편다. “기억의 대량학살 속에서 누가 살아남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야.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그는 미소를 짓는다. “나중에 내가 유명해질지도 모를 일이지. 자네보다 더 유명해질지.”

글쎄요.”

오디세우는 어깨를 으쓱한다. “아무도 알 수 없지 않겠나. 우리는 잠깐 타오른 횃불의 불길과도 같은 인간에 불과하지 않은가. 후손들은 자기들 내키는 대로 우리를 추켜세우거나 깍아내리겠지. 파트로클로스도 나중에는 추앙을 받을지도.”


(423-424)

당신은 케이론이 그를 망쳐놨다고 했죠. 냉정한 여신이라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그를 망쳐놓은 사람은 당신이에요. 그가 이제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됐는지 보세요. 헥토르를 죽이고 트로일로스를 죽이고. 비통한 마음에 저지른 잔인한 일들로 기억되잖아요.

그녀의 얼굴은 돌과 같다. 꼼짝하지 않는다. 해가 뜨고 저문다.

신들 사이에서는 그런 것들이 미덕으로 간주될 수 있겠죠. 하지만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어떻게 영광스러운 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인간들은 워낙 쉽게 목숨을 잃는 것을요. 그를 또 한 명의 피로스로 만들 작정입니까? 그의 이야기는 그보다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세요.

더 풍성하게라니?” 그녀가 묻는다.

이제는 그녀가 두렵지 않다. 그녀가 내게 또 무슨 짓을 할 수 있겠는가.

헥토르의 시신을 프리아모스에게 돌려줬잖습니까. 내가 말한다. 그것도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야죠.

그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리라를 연주하는 솜씨가 훌륭했죠. 목소리도 듣기 좋았고요.

그녀는 계속 기다리는 눈치다.

그리고 여자들. 다른 왕들 손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그들을 데려왔잖습니까.

그건 네가 한 네가 한 일이었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