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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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는 시를 멀리 했단다. 시집을 읽고 나서 독서 편지를 쓸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구나. 지금도 사실은 아빠가 직접 시집을 고르라고 하면 쉽지 않아. 하지만 좋은 시들만 엮어서 소개하는 책들을 가끔 읽어 보면 시라는 것이 마음을 달래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그렇게 직접 좋은 시를 엮은 책들 중에 아빠가 늘 좋게 읽은 시집은 류시화님이 엮은 시집들과,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영희 교수님이 엮은 시집들이란다. 그분들이 엮어 주신 시집들은 좋은 시를 고르는 고생을 대신 해 주신 것뿐만 아니라, 그분들 아니면 평생 모르고 지나갈, 아주 좋은 시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단다.

이번에 류시화 시인이 오랜 시간 동안 골라 모은 시들을 엮은 책, <마음 챙김의 시>를 읽었단다. 작년 2020.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평생 잊지 못한 한 해가 되었을 거야. 코로나라는 듣도보도 못한 못된 손님이 찾아와 갈 생각을 하지 않아서, 우리들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었잖아.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죽고우리도 코로나 때문에 마음 놓고 여행도 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활동을 참은 것이 벌써 일 년이 되었구나. 코로나 블루라고, 사람들이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말이야. 다행히 너희들은 집에서도 즐겁게 잘 노니 다행이구나. 아빠도 좋게 생각하기로 했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지면서, 밀린 책 읽기도 할 수 있으니 말이야.

이렇듯 저마다 코로나19로 생각들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 소중함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세상을 보는 눈도 바뀌고 말이야. 이 책에서도 읽는 순간 코로나 시대를 그린 시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시가 있었단다. 코로나와 함께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도 늘었는데, 코로나가 끝이 나면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구나. 사람들이 지구를 더 사랑하고, 자연을 싫어하고, 경쟁보다는 서로 도와주기를 바라고 말이야. 이젠 우리 생각할 만큼 많이 하고 앞으로 잘 하겠다고 다짐도 할 만큼 했으니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코로나19가 어느 날 갑자기 싹 사라졌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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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휴식을 취했으며,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놀이를 하고,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배우며 조용히 지냈다.

그리고 더 깊이 귀 기울여 들었다.

어떤 이는 명상을 하고,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어떤 이는 춤을 추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치유되었다.

무지하고 위험하고 생각 없고 가슴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지구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리하고 위험이 지나갔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잃은 것을 애도하고,

새로운 선택을 했으며

새로운 모습을 꿈꾸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치유받은 것처럼

지구를 완전히 치유해 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키티 오메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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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시집의 이름은 <마음 챙김의 시>. 여러 시들 중에 특히 마음에 위로가 되는 시들이 많이 실려 있었단다. 아빠가 책 내용 중에 좋은 내용이 있으면, 책의 앞 면지에 조그맣게 페이지를 적어둔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 책은 시작부터 계속 연달아 페이지를 적게 되더구나. 이 책은 굳이 페이지를 적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어. 책도 그리 두껍게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지만, 모든 시를 가슴에 담고 싶더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모험과 도전에 담을 쌓게 하는 아빠에게, 모험이란 기쁨이라고 알려주는 시도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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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헙을 걸자.’

<눈풀꽃 루이스 글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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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쉬지 않고 뜀박질을 하고 있는 심장의 고마움을 일깨워진 시도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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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고마워, 내 심장

나를 다시 잠에서 깨어나게 해 주어서.

비록 오늘을 일요일.

안식을 위해 만들어진 날이지만

내 갈비뼈 바로 아래에서는

영원한 휴식 전의 분주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지.

<일요일에 심장에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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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의 몸은 나무처럼 평생 자라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평생 자랄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시도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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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당신의 나무가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잘라 버리는 게 두려워

당신 스스로

꼭대기를 자르는 일을

멈추기만 한다면.

<무제 타일러 노트 그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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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시도 고마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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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

세상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있으면서

새는 왜 항상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새와 나 하룬 야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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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밖에 모든 시가 좋았고, 그런 시들을 잘 모아서 소개해준 류시화님께 고맙구나.


2.

시 한 권을 읽어 보니, 시를 한 번 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 없으니, 내 마음대로 시를 지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너희들이 가끔씩 독후감을 시로 쓰는 것도 문득 생각이 났단다. 아빠도 독후감을 시로 써볼까?

마음을 챙겨주는 책 한 권

얇다고 탓하지 말라.

두꺼운 백과사전에 없는

사랑이 있고,

울컥함이 있고

휴식이 있고,

따뜻함이 있느니라.


PS:

책의 첫 문장 : 꽃피워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책의 끝 문장 : 비록 여기 이러한 삶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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