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렇게 푹 쌓인 눈 위를 걸으니 옛날 산 친구 생각이 난다. 백두대간은 물론이고 전국의 명산을 두루 다녀본 후 그가 던진 한마디.

앞으론 눈 쌓인 겨울산만 다니련다.”

연유를 물으니, 눈이 쌓이면 나무뿌리를 밟지 않아도 되고 흙이 패지 않으니 나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덜하다는 얘기다. 미안한 마음 없이 나무의 진면목을 바라본다는 것, 겨울산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37-38)

제주에는 많은 설화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설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은 몸집이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관탈 섬에 걸쳐졌다고 한다. 그 설문대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퍼 담아다 한라산을 쌓아 올릴 때 구멍 난 치맛자락 사이로 한 움큼씩 떨어져 나온 흙이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오름들은 제주도민에겐 뒷동산이며, 가축들에겐 풀을 뜯는 목장이었고, 지붕을 덮을 띠가 자라는 곳이자, 굼부리 안은 목동들이 바람을 피해 누울 수 있는 안식처였다.


(50)

제주어 사전에는 곶자왈을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헝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정의하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중산간지대의 숲을 대개 이나 자왈또는 곶자왈이라고 불러왔다. 따라서 곶자왈이란 민가 근처에 있는 숲으로, 쟁기의 날이 땅을 갈아엎을 수 없어서 농부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은 거친 땅을 의미한다.


(72)

흑룡만리(黑龍萬里). 누군가 제주의 돌담길을 흑룡만리라 했다. 용은 바다를 희롱하고, 바다는 화답이라도 하듯 비릿한 물바람을 보내어 용을 춤추게 하며, 길은 그 사이에 길게 누워 있다.


(87)

협곡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탐스럽게 생긴 담팔수가 나그네를 반기고,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황칠나무, 참식나무, 조록나무, 아왜나무 같은 늘푸른나무들이 터널을 이룬다. 사이사이에는 예덕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멀구슬나무, 머귀나무, 때죽나무, 자귀나무, 단풍나무, 산벚나무, 굴피나무, 합다리나무, 꾸지나무, 곰의말채나무, 까마귀베개 같은 낙엽 지는 나무가 살고 있다. 숲 바닥에는 바람등취(후추등)이 바위를 뒤덮고, 맥문아재비가 보석같이 영롱한 열매를 달고 있다.


(116)

너도밤나무 하면 나도밤나무가 떠오른다. 나도밤나무는 너도밤나무더러 나도밤나무 대열에 끼워달라고 조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너도밤나무는 참나뭇과이고 나도밤나무는 나도밤나뭇과이다. 나도밤나무는 밤나무와 잎의 모양이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주로 서해안 주변의 산에서 자란다.


(127-129)

옛날 울릉도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산신령이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산에 밤나무 100그루를 심으라고 하면서 만약 100그루를 심지 못하면 큰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을 사람들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하루 만에 전부 심었다. 심은 밤나무에서는 싹도 나고 잘 자랐다.

어느 날 산신령이 찾아와서 그동안 심어놓은 밤나무를 확인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보아도 아흔아홉 그루밖에 되지 않았다. 산신령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여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여러 번 세어도 아흔아홉 그루밖에는 안 되는 밤나무가 그사이에 한 그루 더 생길 수는 없으니 마을 사람들은 이제 죽었구나하고 생각했다. 심기는 100그루를 심었지만 그사이 한 그루가 말라 죽은 것이었다. 그때 뜻밖에도 옆에 서 있던 조그만 나무 한 그루가 나도 밤나무입니다.”하고 외쳤다. 산신령은 다시 그 나무에게 밤나무가 맞는지 확인했다. 그 나무는 자기도 밤나무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너도밤나무라고 이름 붙여주고 잘 가꾸었다고 한다.


(136)

성인봉은 왜 산이 아니고 봉일까? 산의 격에서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이곳의 높이는 984미터이다. 1000미터에서 16미터 못 미치는 큰 산이다. 사방으로 갈래를 친 겹산인데다, 산이 험준하고 계곡도 깊다.

산과 봉()의 차이에 대해서는 설왕설래 말이 많지만, 일단 산이라고 하면 산괴를 떠받치고 있는 땅이 있어야 한다. 한라산은 한라산을 떠받치고 있는 넓은 대지가 있기에 산이며, 울릉도는 섬 자체가 산으로 떠받칠 땅이 없기에 봉이다.


(268)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의 일이다.

도읍은 정했는데 도읍을 감싸주고 궁궐을 지켜줄 주산(主山:도읍, 집터, 무덤 따위의 뒤쪽에 있는 산)이 없었다. 그래서 전국의 산에 연락하여 주산을 모집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산들이 도읍의 주산이 되기 위해 앞 다투어 한양으로 모여들었는데,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주흘산도 열심히 한양으로 쫓아갔지만 이미 삼각산이 먼저 자리를 차지한 뒤였다. 크게 실망한 주흘산은 돌아오는 길에 이곳 문경에 주저앉아 버렸고, 그때 삐친 것 때문에 지금도 한양을 등지고 앉아 있다는 재미난 얘기가 전해진다.


(281)

산에서 나는 약초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체질이 있으며, 따라서 같은 병이라도 약은 달라질 수 있다. 일찍이 중국 주나라의 명의인 편작이 자신의 저서 <난경>에서 의사가 아무리 고쳐주려 하여도 병이 잘 낫지 않는 환자의 경우 여섯 가지를 설명하였다.

첫째, 환자가 교만하고 방자하여 내 병은 내가 안다고 주장하는 자

둘째, 자신의 몸을 가벼이 여기고 돈과 재물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자

셋째, 음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자

넷째, 음양의 균형이 깨져서 오장의 기가 안정되지 않은 자

다섯째,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도저히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

여섯째,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못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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