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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선물이라는 것은 받는 것도 기분 좋고, 주는 것도 기분이 좋단다. 아빠는 가끔, 아주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책 선물을 하곤 한단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가끔 책 선물을 받곤 해. 흔치 않은 일이지^^ 그런 흔치 않은 경험을 최근에 한번 했단다. 기분 좋았어. SNS에서 화제를 일으켰던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단다. 책 색깔이 핑크빛인데, 이 책에 실린 소설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 신인 작가의 풋풋한
글들. 하지만 재미가 가득한 글들.
이 책을 선물한 지인은, 이 책을 읽으면 회사의 이삼십 대 젊은 후배직원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단다. 음, 아빠가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나?^^ 지은이 장류진님은 IT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고 했어. 그러다가 틈틈이 소설을 썼고, 마침내
창비신인소설상에 수상하면서 등단했다고 했어. 지금은 회사는 다니지 않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고 했어. 이 책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네 편 정도 이야기를 해볼게.
1.
잘 살겠습니다.
소심한 주인공과 둔감하다고 해야 할까 무신경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성격의 소유자인
회사동기 빛나 언니의 이야기. 주인공은 얼마나 소심하냐면, 청첩장을
나눠주면서 누구한테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무척 고민했단다. 회사
동기이지만, 3년이나 연락이 없던 이에게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빛나
언니에게 청첩장을 주지 않았지. 그런데 빛나 언니는 다른 경로로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한 거야. 하도 연락을 안 해서 만나기 껄끄러운데, 빛나 언니는 일대일로 만나자고
했어. 빛나 언니는 둔감하거나 무신경한 사람이라고 했잖아. 청첩장을
나눠주면서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비싼 거 시켜먹고, 결혼식은 날짜를 깜빡 했다면서 참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축의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밥을 한 끼 사준다고 하는데… 그리 비싼 것도 아니고 또 같이 먹고 싶지도 않는데… 어떻게 되갚음을
해야 하지?
그런 빛나 언니도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래, 그대로
되갚아야지… 싸구려 선물과 대충 쓴 편지를 축의금 대신 빛나 언니한테 주었단다. 그런데 빛나 언니는 그것에 감동받고 고마워했어. 아빠가 생각하기에
빛나 언니는 돈에도 둔감하고 무신경한 사람이었던 거야. 사람들 중에는 받은 만큼 주어야 하고, 준 만큼 받지 않으면 서운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특히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철저해서, 받은 만큼 정확하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주인공도 그랬고, 책을 읽는 이들도 주인공의 태도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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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에비동에 새우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건 가게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특 에비동을 주문했기
때문인 거고,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원이 더 비싸다는 거.
월세가 싼 방에는 다 이유가 있고,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칠억원어치의 김장, 설거지, 전 부치기, 그밖의
종종거림을 평생 갖다바쳐야 한다는 거. 디즈니 공주님 같은 찰랑찰랑 긴 머리로 대가 없는 호의를 받으면
사람들은 그만큼 맡겨놓은 거라도 있는 빚쟁이들처럼 호시탐탐 노리다가 뭐라도 트집 잡아 깎아내린다는 거. 그걸
빛나 언니한테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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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앞부분에는 빛나 언니가 밉상이었는데, 소설의 말미에서는 딱딱한 회사에서는 볼 수 있는
인간적인 캐릭터로 보이게 되었단다.
2.
일의 기쁨과 슬픔.
판교 테크노벨리 스타트업 회사, 우동마켓. 우동마켓은
중고 제품들을 거래할 수 있는 스마트앱이야. 우리 동네 중고 마켓의 줄임말. 주인공 김안나는 우동마켓을 다니는 회사원이란다. 그런데 이 앱의
우수 이용객 중에 거북이알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어. 거북이알이라는 사람이 새 물건을 싼
가격에 올려서 앱이 많이 유명해졌어. 회사 입장에서는 고마운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새 물건을 싼 값에 중고마켓에 올리는 것이 꺼림칙했어. 장물을
갖다 파는 것은 아닌지 말이야. 나중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보라는 지시가 안나에게
내려왔어.
안나는 물건을 사는 척 하면서 거북이알을 만났단다. 거북이알의 정체는 인근 카드사 차장 이지혜라는
사람이었어. 이지혜의 사연은 이랬단다. 회사 회장한테 사소한
걸로 찍혀서, 월급을 돈이 아닌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되었다는 거야. ㅎㅎ
웃기지만, 실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열 받겠니. 하지만, 이지혜는 나름 방법을 터득한 거지. 이지혜는 카드 포인트로 물건을
구매해서 돈으로 바꾸게 되었다는 거야. 그 물건들을 우동마켓에 올렸던 거고. ㅎㅎ 설정이 재미있구나.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 일의 기쁨과 슬픔. 음.. 아빠는
일의 기쁨은 무엇일까? 월급날? 슬픈 날은… 음.. 너무 많아서… 하하..
3.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지훈은 회사 동료 지유를 짝사랑했어. 그런데 지유는 남자친구가 있었지. 지훈은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해서, 지유가 다시 혼자 되기를
기다렸어. 그런데 찾아온 것은 지유의 청첩장. 그렇게 빨리
결혼할 줄 몰랐는데… 그런데 결혼 세 달 만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혼자 된 지유. 회사 그만 두고 일본으로 떠난 지유. 일 년이 넘게 지나고 지유로부터
온 연락. 문자로 안부로 주고받다가 충동적으로 지유를 만나려고 떠난 후쿠오카. 지유의 전형적인 밀고 당기기의 모습.. 읽은 이라면, 혹은 읽은 이들 중에 남자들이라면… 지유도 당연히 지훈에게 마음을
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지훈은 확신하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지유의 갑작스러운 선 긋기. 지유의 이런 모습이 여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훈의 입장도 이해가 간단다. 여자의
마음은 참 알기 어려운 것이구나.
4.
다소낮음.
현실감 없는, 순수 예술을 쫓는 음악가의 이야기라고 할까? 아빠도
즐겨 듣는 것은 아니지만, 인디밴드의 음악을 좋아한단다. 이
소설은 아직 뜨지 못한 인디밴드 백열밴드의 리더 장우의 이야기란다. 장우는 여자친구 유미와 우연히 만든
냉장고송을 유튜브에 올렸어. 그런데 그것이 빅히트를 쳤단다. 이것으로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어. 하지만, 장우는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관과 달라서 계약을 하지 않았단다.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 단지 음악관이 달라서… 그렇다고 자신이 냉장고송에 버금가는 노래를 다시 만드는 것도 아니었단다. 시간이
지나자 냉장고송도 시들해지고…
…
돈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어. 전기세도 몇 달이나 밀렸어. 그럼에도
레슨비를 받아서 비싼 강아지를 사오고, 그 강아지는 얼마 못 가 중병에 걸려 죽고… 참다 못한 유미는 장우와 헤어졌어. 참, 타이밍 못 맞추고 현실감각 없는 인간이구나.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가는 장우… 소설 밖에서는 결국 성공을 하면 좋을 텐데.. 현실은
더 치열하고, 더 힘든 곳이니…
….
그 밖에 이 소설집에는 네 소설이 더 실려 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모두 재미있었어. 집안일 도와주는 도우미 아줌마와 기싸움(?)을 벌이는 <도움의 손길>. 백 번 넘는 이력서를 넘게 쓰고 첫 출근을
하게 되는,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은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새로 이사 간 오피스텔에 새벽마다 의문의 초인종을 울리는 방문자들과
그들의 정체를 추리해 보는 <새벽의 방문자들>. 오래
전에 짧은 만남에 도움을 주었다가 이를 잊지 못하는 한 외국인과 스쳐 지나가는 일로 여기며 일상에 찌들어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잔잔한 감동으로
적어 내려간 <탐페레 공항>
….
이 책을 선물한 지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요즘 젊은이들을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더구나. 혹시 요즘 사십 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소설은 없을까?^^ 그런 소설이 있다면 이삼십 대들에게 선물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장류진님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니,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기대해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회사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기 전에 예상했던 어려움은 이런 거였다.
책의 끝 문장 : D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