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8)

겉보기엔 무력하거나 연약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정신적 고통은 육체적 질병보다 한층 더 위험하다. 모르핀 점적주사나 척수 마취 혹은 근치수술 같은 것으로 고통을 완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마음의 병에 붙들리면, 벗어날 방법이라곤 죽음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병의 생생한 현실성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78)

그렇다면 왜, 이 극단적인 은둔 실험이 고독하지만 모자람 없는 충만한 생활로 바뀐 지금, 왜 갑작스럽게 내가 외로움을 느껴야 하는가? 무엇에 대한 외로움인가?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다. 엄격한 생활태도를 누그러뜨릴 일도 없을 것이고 금욕을 해제할 일도 없을 것이다. 정확히 무엇에 대한 외로움인가? 간단하다. 내가 점점 혐오하게 되었던 것에 대한 외로움이다. 내가 등돌렸던 것에 대한 외로움이다. 삶에 대한 외로움이다. 삶의 번잡함에 대한 외로움인 것이다.

(217)

그는 비밀이라는 묘약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외국어에 능통한 것과 비슷하다. 마치 언제나 새로운 장소에 있는 것 같다. 비밀 없이 지내는 동안에는 마치 언제나 새로운 장소에 있는 것 같다. 비밀 없이 지내는 동안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끔찍한 일도 전혀 일어나지 않고 불쾌하지도 않았다. 비밀 없이 산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천진난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밖의 다른 모든 게 부족한 기분이었다. 분명 그는 천진난만함을 되찾았었다. 그건 의심의 여지 없이 엘리가 준 것이다. 하지만 천진난만함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아이리스는 그 이상의 것을 준다. 그녀는 모든 걸 또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아이리스는 콜먼이 살고 싶어하는 스케일의 삶을 되돌려주었다.

(222)

하지만 오로지 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그는 자신이 되고자 선택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태어나는 순간 그에게 주어진 것들과 영원히 자유롭기를 갈망하는 여느 인간들처럼 자유를 얻기 위해 자유롭게 싸워나갈 수 있다. 인생에서 자기 뜻대로 운명을 바꾸기 위해, 그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빌어먹을 인생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인간이 어디 한둘인가? 하지만 그들은 주어진 인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을 그들이게 하고, 이것이 그를 그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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