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랑이란 느릿느릿 들어와 어느덧 마음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앉아 눈치 없이 아무 때나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힘들고 거추장스러우니 제발 나가 달라고 부탁해도 바보같이 못 알아듣고 꿈쩍도 않습니다.
(58)
영국의 고전학자이자 시인인 A.E. 하우스먼은 시(詩)란 ‘상처받은 진주조개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분비 작용을 하여 진주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진주를 얻기 위해 극심한 고통을 겪듯, 시인의 고뇌와 아픔 속에서 아름다운 시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예이츠의 경우는 짝사랑이 그를 위대한 시인으로 만드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66-67)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예이츠의 시가 한 편 있는데요, 그 시의 제목은
‘A Drinking Song’입니다. 우리말로 음주가라고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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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가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게 될 진실은 그것뿐
술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가며
그대 보고 한숨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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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 중에 한 편을 외워 오라는 숙제를 학생들에게 내주면 가장 많이 외워 오는 시입니다. 짧아서 부담이 없기도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마음에도 어필하는 시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보며 술 한잔 마시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죽기 전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22-123)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 떠돌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 작자 미상의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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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기분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날 때 너털웃음을 짓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혼자 마음껏 울 장소가 없어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는 매일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가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나 보다’ 매일 자책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격언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어서 잘 깨지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식들이 늦게 들어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는 ‘아들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바라면서도 ‘아니,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고 이중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부자 아빠’가 못되어 큰소리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봄가을을 오고 가지만 아버지 마음은 가을겨울을 오간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한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이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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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진정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너는 아니?”
아버지 에드워드가 묻습니다.
“한 남자가 자기 아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위대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148)
사랑하는 일은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요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항상
배려하는 마음,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 –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해도 항상 의식의
언저리에 있는 그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은 대단한 영혼의 에너지를 요한다.
(150)
사랑받는다는 것은 ‘진짜’가
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모난 마음은 동그랗게(‘사람’이라는 단어의 받침인 날카로운 ㅁ을 ㅇ으로 바꾸면 ‘사랑’이 되듯이), 잘 깨지는 마음은 부드럽게, 너무 비싸서 오만한 마음은 겸손하게 누그러뜨릴 때에야 비로소 ‘진짜’가 되는 것이다.
(155)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짝사랑이란 삶에 대한 강렬한 참여의 한
형태이다. 충만한 삶에는 뚜렷한 참여 의식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환희뿐만 아니라 고통 역시 수반하게 마련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의 다른 모든 일들처럼 사랑도 연습을
필요로 한다.
(157)
젊은이들이여,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짝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저 푸른 나무 저 높은 하늘을 사랑하고,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