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콘서트 1 - 설득보다 사로잡는 심리전의 테크닉, 개정판 심리학 콘서트
다고 아키라 지음, 장하영 옮김 / 스타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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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는데는 이유가 있다.

책을 읽는 것을 즐기지만, 아무 이유없이 그저 읽는 행위를 할 수 있을만큼(사랑하는데 이유가 없다는 식의 말처럼) 책 읽기가 생활화 되어있지는 않은 탓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보통은 '재미'가 있어서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어지간히 고된 노동 같아지고 만다.

다른 이유는 '필요'가 있어서다.

생활과 인간을 더해 삶에서 필요한 지식 혹은 지혜 때로는 케이스를 알 필요가 있을 때 읽는다.

그런데 따지고보니 결국 '재미'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하기에 읽는 경우가 제일 많은 것 같다.

처음엔 '필요'로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를 발견하고 흠뻑 취해버리는 것이나 '재미'로 읽다보니 '필요'를 발견하고 독서의 확장이 일어나는 일이 결코 드문 일이 아닌 것만 봐도 알 '지' 자다.

잔소리가 길었지만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로 분류해 말하자면 '필요' 더하기 '재미'의 경우다.

자기계발이라는 분류에 속하는 책들을 읽는 이유는 '타인'을 알기 위함이 아니다.

그 모든 이유는 '나'를 알기 위함이다.

내가 가장 자주 시달리면서도 가장 낯설게 여기고 또 두려워하는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맘 나도 몰라."

이 상태가 되어버리면 극도로(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예민해지고 만다.

털을 바짝 세운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주변을 주시하며 위험과 위해에게서 나를 지켜내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폴폴 풍긴다.

그러다보면 결국 가장 우려하던 일과 맞닥드린다.

피하고자 하는 것, 그래서 늘 생각하다보니 날 찾아오는 필연처럼.

그런 '불안'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아는 것."

병법에서만 유용한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가 아니다.

앎에 있어서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조건이 바로 '나를 바로 알기'일 테니까 말이다.

갈등을 원치 않는다.

원만함이 제일이다.(물론 보통은 이렇게 되지 않기에 바라는 것이지만)

내가 당하는 것도 싫다.

남이 당하게 하는 것도 싫다.(가능하다면)

'절대'를 추구하지만 실현 불가능함을 알기에 '최대' 와 함께 '최선'을 택하곤 한다.

내가 당하지 않으면서 남도 당하게 하지 않는 것에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알아야만 한다.

먼저 '나의 마음'을 알고, '남의 마음'을 아는 것.

결국 이 생각이 출발점이다.

그런 의도에서 선택한 책이었고 당초의 목표치를 달성했음을 안다.

책 속에는 내 마음을 알고 상대의 마음을 알고 그 앎을 바탕으로 상대의 마음, 심리를 표면으로 떠올리고 그에 대한 적절한 행동을 모색하고 판단하고 선택하여 행동하도록 이끌어 줄 일련의 예시들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말, 행동, 표정, 습관, 몸 상태, 눈, 입 등 정말 다양한 심리의 표출로와 그 의미를 한번쯤 들어두는 것도 좋겠다.

먼저 나를 알고자 했다.

내 표정, 말투, 습관, 행동이 타인에게 얼마나 내 심층 심리를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었는지 어떤 식으로 했던 행동들 표정들 말들이 어떤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것인지 과거 상심과 실의를 안겨주었던 오해의 순간들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알기를 바랬다.

그들을 대하는 것은 늘 어렵기만 하다.

알 것 같다가도 또 모르는 것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그 말이 진저 진리임을.

내 마음을 바르게, 전하고 싶은 의도를 담아 표현하도록 많은 점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해야겠다.

오해 하는 것도, 오해 받는 것도 너무 괴롭고 슬프고 힘드니까 말이다.

언제나 내 바램은 소박하다.

그저 오늘도 하나만 더 알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이것 저것 다 정말 원하지 않는 것들은.

정말 "하지도, 하게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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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이 넘어 다시 읽는 동화 - 동화 속에 숨겨진 사랑과 인간관계의 비밀
웬디 패리스 지음, 변용란 옮김 / 명진출판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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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읽던 동화와 이만큼 나이들어 읽는 동화의 맛은 분명 전혀 다르다.

동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혹은 재해석을 통해 탄생한 책은 무척 많을테고 그러다보니 우연에 우연을 더해 내게도 한 두 권쯤 찾아왔다.

예전 읽었던 동화는 너무 오래라 그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가 많았고, 처음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동화를 읽었다고 이제와서 "옛날옛날에 공주가 살았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시 적을 수는 없다.

저자가 스무살이 넘어서도 동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이 동화 속에 담긴 인생의 진리, 그 보석을 발견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린 마음에 한 없이 동경했던, 혹은 한 없이 미워하고 두려워했던 동화 속 인물들을 이제는 제법 세상과 사람을 알게 된 스무살이 넘은 시점에 다시 만나보는 것은 분명 낯선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생 속에 담긴 지혜를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대도 이상하다거나 신기할 것도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말은 곧 동화를 곧이 곧대로 해피해피로 믿지 않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니와 원색적으로 다가오는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갈등의 해결이 문제를 바로 보고 깨닫게 되는 일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실 작품의 해설을 통한 의도된 깨달음에 다다르는 일에는 늘 거부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해석, 다른 사람의 감동, 다른 사람의 판단이 내 것이 되어버리는 과정을 견뎌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작품 해설을 읽지 않는 한 사람으로 각각의 동화에 자신의 깨달음과 해석을 더해 교훈까지 달아주는 이야기를 읽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거부감과는 별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동화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진심어린 마음과 어울림이었다.

복을 받는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진실하고 순수하며 착하고 아름다웠다.

그것을 자신이 의식하든 아니든 결국 그들은 그들의 삶의 결과로 행복을 얻는 것이다.

진실하라.

어딘가 서글픈 마음, 청승맞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이야기일 동화는 그렇게 진실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듯 했다.

어울림.

동화 속 공주에겐 반드시 멋진 왕자님이라는 어울리는 짝이 나타난다.

심지어 동물들도 짝짝이 짝지어 다니는 모습을 본다.

한결같이 결국 공주는 착하고 아름답고, 왕자는 멋지고 용감하다.

하지만 아름답다거나 멋지다, 착하거나 용감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들은 '어울리는 한 쌍'인 것 뿐이다.

부나 지위와 관계없이 그들은 서로서로의 마음이 무척 어울리는 짝이었다.

분에 넘치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 욕구들은 하나같이 좌절된다.

자신의 바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라고 동화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동화는 어린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가 나오고 그렇지 않대도 가끔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난 아직 멀고 또 멀었다.

좀 더 진실해지고 싶고, 조금 더 내 바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또 행해가는 수 밖에 없음을.

나는 늘 괜찮다.

여전히 괜찮다.

지치지 않았고, 꺾이지 않았으니 오늘의 내게 내일은 아직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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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송곳니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노나미 아사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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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이지만 가족 소설을 읽으며 느끼곤 하던 가슴 한구석에 피어오르는 뭉클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해준 이야기였다.

바람의 바람.

아주 간략히 정리해보면 이 다섯글자만이 떠오른다.

바람은 세상에 존재하는 공기의 흐름을 이르는 말이지만 사람의 의식의 흐름이기도 하다.

소망. 우리는 바람을 그런 이름으로도 부른다.

어쩔 수 없이 이 이름을 적어야겠다.

'질풍'

바람이 지니는 이름의 하나다.

왠일인지 이 이름을 보는 순간 이 이야기에는 수 없이 많은 바람이 등장해서 그 바람들이 이야기를 발생시키고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여 주인공 다카코의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이혼했다.

남 주인공(주인공이 질풍이 아니라면) 다키자와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이혼했다.

여 주인공 다카코의 막내동생은 유부남과 바람이 났다.

엑스트라 마요는 '왕따'를 당하는 초등학생이다.

그녀는 아빠가, 선생님이 자신을 믿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길 바란다.

70대 노인 데루코 여사는 관심받길 바라는 것 같다.

'질풍'과 '다카코'는 바람처럼 달린다.

바람나다의 바람과 바라다의 바람과 바람의 바람.

그래서 바람의 바람 이야기다.

무슨 다섯글자를 설명하는데 이렇게 많은 문자가 필요했는지 새삼 나의 간결하지 못한 글솜씨에 놀람에 경악을 더하며.

그리하여 내겐 '바람'이야기처럼 읽혔다는 얘기다.

하지만 바람이 늘 한겨울의 시리디 시린 바람뿐 인 것은 아닌 것처럼, 이들에게도 간간히 훈풍은 불어온다.

훈풍은 소통과 성취의 바람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바람 같다.

자유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가진 바람은 대신에 안정이나 평온의 이미지는 지니지 못한다.

불안함과 덧없음, 허전함과 공허함들 말이다.

이야기가 진행해가면서 희생자가 늘고 그에 더해 단서도 늘어난다.

실마리가 잡히고 점점 태풍의 핵에 가까워져 간다.

그러면서 거친 반전을 꾀하기도 한다.

희생자가 늘어야만 사건이 해결 될 수 있다는 얘기인가? 라는 묘한 공식을 떠올리며 그렇게 읽어나갔다.

바람은 지나치게 거세거나 갑작스럽게 불면 사람을 상하게 한다.

하지만 적당히 상쾌한 바람은 기분을 전환시켜주고, 적절히 시원한 바람은 땀을 시켜주며, 알맞게 따뜻한 바람은 시린 몸과 마음을 녹여준다.

철저한 복수의 '도구'가 사실은 가장 핵심적인 온기, 바람을 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때로 배신, 절망, 상실, 허무, 고뇌, 고통, 괴로움, 슬픔, 아픔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과 맞닥뜨린다.

그것은 갑작스레 찾아든 한 겨울의 매서운 북풍 같고, 거센 태풍같아서 온 마음과 몸을 뒤흔들어 모든 것을 부숴버릴 듯, 모든 것을 빼앗아 갈 듯 온 몸과 마음을 휘감는다.

하지만 그 어떤 바람도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지는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여전히 희망과 소망을 품는다.

요즘 세상은 늘 한겨울처럼 매섭고 시린 바람이 불어드는 벌판을 걷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봄은 곧 올 것이고 봄 바람도 불어들 것이다.

참 아쉬운 것은 좋은 책, 많은 것을 느낀 책일 수록 그 감상을 제대로 전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마음에 바람이 불어대는 통에 뭔가 제대로 적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내 마음은 늘 바람 구덩이다.

그래서 여전히 난 실망하고 좌절하지만 바람이 불러오는 바람에 희망을 담아 온기를 잃지 않는다.

아직은 괜찮다. 그리고 앞으로도 괜찮으리라.

내 바램 바람따라 흘려보내니 희망의 바람아 불어라.

[이 감상은 북곰 서평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감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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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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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궁금해하고 주목했던 것은 여주인공 '경아'를 누가 가질 것인가? 였다. 

 관심 두고 싶었던 것이 어지간히 없었나보다.

 

그런데 그녀의 막가파식 나몰라라 연애에도 사연은 있었던 거였다.

 그 사연은 후반부에 나온다. 

 

사연을 밝히는 것을 건너뛰고 이야기를 해보련다.

 

'죄의식''피해의식' 중 어느 것이 사람의 의식을 더 많이 점유할까?

 

94쪽. 난 쓰기를 그쳤다. 밤이 깊다. 밤은 텅 빈, 무엇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텅 빈 내일을 몰고 오리라.

        차라리 내일이 없었음 좋겠다.

 

'경아'는 변화와 생기를 원한다.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죄의식과 피해의식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감추고 누르고 지우고 잊으면서 지내지만 늘 텅 빈 것 같은 마음 뿐이다.

 

그녀의 방탕하고 헤퍼보이는 연애(그것도 연애라면) 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마음만 봐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을 더한다.

 끝없이 갈구하지만 그것을 받지 않으려 거부하는 모순된 모습이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것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현재의 이유는 과거에서 찾으라고.

 그녀의 현재의 뿌리는 과연 과거에 있었다.

 너무 진하고 강렬한 그래서 충격적이기까지 한 그 '사실'을 봉인하기 위해 그녀는 변화와 생기도 함께 봉인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언젠가 마주해야 할 순간이 오는 법.

 그녀가 구했던 변화의 한 갈래길에서 그 '사실'과 마주치게 된다.

 

그녀에대한 감정은 이제 '연민'만이 남아버렸다.

 "그렇다고 내일을 포기하려하지 말아요. 내일은 백지, 그 무한의 가능성마저 없는 것으로 하지 말아요."

 닿지 않을 위로를 담아 응원도 보내봤다.

 

결국 여주인공 '경아'는 남편이 된 '태수'의 것이 된다.

 그럼에도 '태수'의 것이 된 '경아'는 반쪽 뿐이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죄의식에서도 피해의식에서도 놓여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내게 이 소설은 너무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시대도, 그 시대의 여성도, 어머니도, 심지어 남성들도 난 무엇하나 알지 못한다.

 더구나 그 시대 서울이라니.

 난 지금의 서울도 모르는걸.

 

사람은 죄의식으로부터 도망치다보면 어느 순간 피해의식과 함께 길을 가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은 나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나 역시 피해자다.

 결국 남는 것은 피해자뿐인 서글픈 결말.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경아'의 말에 내일에 대한 두려움과 내일이라도 달라질 것 없을 것 같은 회의, 그리고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담겨있었다면 난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일이 오지 말았으면이라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일은 찾아와야 하기에.

 내일이 품고있는 무한한 가능성은 부정되어서는 안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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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 최고의 전문가가 최고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Art of Mentoring 2
새뮤얼 프리드먼 지음, 조우석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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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이면서 자칫 집단사고의 맹목성에 붙들려 진실의 왜곡을 바로 볼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는 위험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에게 열려있지 않은 숨겨진 무엇, 혹은 비밀들을 흥미롭게 때론 지나치게 '밝힌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언론에 한 번 오르내리는 동안 수 없이 많은 추측과 억측 거기서 파생된 비난에 시달리게 되는 것을 수 없이 본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면 언제 그랬냐 싶게 관심은 끊기고 갈기발기 찢긴 피해자만 남겨진채 가해자 없는 행위는 잊혀진다.

 

이 책에는 제목 그대로 미래의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당부와 조언이 담겨있다.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은 '집단사고'에 대한 부분이다.

 

집단 사고의 맹점 혹은 폐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용기라는 저널리스트의 덕목을 갖추어야만 한다.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지 타인의 말을 옮겨 전할 뿐인 무책임하고 수동적 보도 행위는 우리를 진실에서 더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저명한 누가 이야기 한 것이니 틀릴리 없다, 혹은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으니 이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기존의 신념체계를 원점에서 검토하고 그것을 뒤집을 용기가 없기에 그들은 앞선 이를 단지 뒤따른다.

 

'언론플레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생겼었나?를 생각해보니 과거 박정희 정권이 차용했던 3S 정책이 떠오른다.

 이른바 '독재 정권' 시절이었기에 가능했을 그 정책이 지금은 모습만 바꾸어 더 교묘히 암약하고 있지는 않은가.

 

저자는 미국의 부시 정부의 미디어 조작과 방송 정책에 대한 감독 행위가 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 추락에 크게 기여했다고 이야기한다.

 현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확실히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마녀사냥'적 언론 보도는 극한에 다다른 것 같다.

 '아님 말구' 하, 어이없는 한숨 밖에 나올 것이 없는 그것도 변명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언론의 신뢰도 추락의 책임이 단지 국가 뿐 아니라 언론 자체, 그리고 열린 사고를 하지 않는 대중에게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우리나라 대중의 사고 행태는 위험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 옛날 '냄비 근성'이라고 비하됐던 금새 끓어올랐다 금새 식어버리는 일부 대중을 선동하는 것으로 그들은 목적 달성을 앞당긴다.

  대중에게 사실에 근거한 열린 사고가 요구되는 이유다.

  언제까지 휘둘리고 휘말릴 필요는 없다.

 

이 주제가 요즘 우리나라를 시끄럽게 하기는 소리가 내 귀에도 어쩔 수 없이 들어와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이 책이 집단 사고의 위험이나 언론의 신뢰도 추락의 책임을 묻는 이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람직한 저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기사를 쓸 때의 자세, 그리고 작성 기법 등에 주목하고 있다.

 

진정한 저널리스트라면 현장을 뛰어다니며 진실을 밝히고 그것을 올바로 전해야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단순히 옮길 뿐이라거나, 압력을 받아 굴절 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지닐 덕목에서 한참 어긋난다.

 

기사쓰기와 더불어 논픽션 글쓰기의 주의사항도 몇가지 적고 있다.

 사실을 쓸 것.

 결국 그 이야기다.

 논픽션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가미한 픽션은 때로 사람들을 열광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밝혀지고 그들은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된다.

 

많은 기술적 측면도 적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기자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언론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세상을, 그리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도 그들은 가지고 있다.

 

악용되어서는 안되는 언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저널리스트' 들이다.

 양심적이고 올바른 그들의 자세만이 진실을 알리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한다.

 

혼란과 혼돈의 시기다.

 진정한 언론의 바른 힘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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