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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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궁금해하고 주목했던 것은 여주인공 '경아'를 누가 가질 것인가? 였다. 

 관심 두고 싶었던 것이 어지간히 없었나보다.

 

그런데 그녀의 막가파식 나몰라라 연애에도 사연은 있었던 거였다.

 그 사연은 후반부에 나온다. 

 

사연을 밝히는 것을 건너뛰고 이야기를 해보련다.

 

'죄의식''피해의식' 중 어느 것이 사람의 의식을 더 많이 점유할까?

 

94쪽. 난 쓰기를 그쳤다. 밤이 깊다. 밤은 텅 빈, 무엇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텅 빈 내일을 몰고 오리라.

        차라리 내일이 없었음 좋겠다.

 

'경아'는 변화와 생기를 원한다.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죄의식과 피해의식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감추고 누르고 지우고 잊으면서 지내지만 늘 텅 빈 것 같은 마음 뿐이다.

 

그녀의 방탕하고 헤퍼보이는 연애(그것도 연애라면) 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마음만 봐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을 더한다.

 끝없이 갈구하지만 그것을 받지 않으려 거부하는 모순된 모습이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것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현재의 이유는 과거에서 찾으라고.

 그녀의 현재의 뿌리는 과연 과거에 있었다.

 너무 진하고 강렬한 그래서 충격적이기까지 한 그 '사실'을 봉인하기 위해 그녀는 변화와 생기도 함께 봉인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언젠가 마주해야 할 순간이 오는 법.

 그녀가 구했던 변화의 한 갈래길에서 그 '사실'과 마주치게 된다.

 

그녀에대한 감정은 이제 '연민'만이 남아버렸다.

 "그렇다고 내일을 포기하려하지 말아요. 내일은 백지, 그 무한의 가능성마저 없는 것으로 하지 말아요."

 닿지 않을 위로를 담아 응원도 보내봤다.

 

결국 여주인공 '경아'는 남편이 된 '태수'의 것이 된다.

 그럼에도 '태수'의 것이 된 '경아'는 반쪽 뿐이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죄의식에서도 피해의식에서도 놓여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내게 이 소설은 너무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시대도, 그 시대의 여성도, 어머니도, 심지어 남성들도 난 무엇하나 알지 못한다.

 더구나 그 시대 서울이라니.

 난 지금의 서울도 모르는걸.

 

사람은 죄의식으로부터 도망치다보면 어느 순간 피해의식과 함께 길을 가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은 나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나 역시 피해자다.

 결국 남는 것은 피해자뿐인 서글픈 결말.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경아'의 말에 내일에 대한 두려움과 내일이라도 달라질 것 없을 것 같은 회의, 그리고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담겨있었다면 난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일이 오지 말았으면이라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일은 찾아와야 하기에.

 내일이 품고있는 무한한 가능성은 부정되어서는 안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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