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샤덴프로이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독일어로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건축물들에 대한 만행을 기록한  책이다.

 그 역사는 멀게는 고대 가깝게는 현재까지 이어져있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느낀 것은 오직 처참함, 참혹함, 추잡함 따위와 함께 찾아오는 후회였다.

 "읽지 말았어야 했다. 모르는 것이 나았다. 그들의 위선에 가운데 손가락을 선사하리라."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한 단어들을 적어보면 파괴, 살육, 학살, 청소, 살해 따위다.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이미 처참함과 참혹함을 품고 있다.

 

불편한 진실의 폭로가 요즘의 대세인 모양이다.

 위키리크스의 각국의 비밀문서 폭로로 시작된 역사의 뒷면, 어둠의 역사들.

 

인정하든 부정하든 기억되었든 망각했든 이 책의 내용물은 분명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엔 무척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보스니아의 내전, 이스라엘, 세계 대전 중의 폭격에 얽힌 뒷 이야기들, 터키, 미국과 영국, 독일, 중국 등의 국가가 혹은 국가에서.

 과거에 저질렀거나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집단 기억의 파괴'를 위한 기도, 즉 '인종 청소'와 '문화 말살' '살육과 파괴'를 다루고 있다.

 

양립할 수 없는 적대관계에 있는 대상에 대한 흡수, 혹은 배제, 아니면 말살하려고 마음먹은 그들은 대상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들의 인종, 문화, 언어,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말살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겐 어떤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다.

 

그렇기에 배제대상의 건축물은 그들이 지었다는 이유 혹은 그들이 살던 도시 혹은 국가에 지어져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죄'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다.

 또 하나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는 중국의 티벳 학살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그들은 대상의 완벽한 박멸을 원했다.

 그들의 역사와 사상 그 무엇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철저히 박해하고 파괴했다.

 

그것이 이루어진 과정을 눈으로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인간적인 분노'가 이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들에게 그들은 '인간'도 무엇도 아니었다.

 이건 정말, 정말 아니다.

 

하지만 독일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죄의식을 갖고 있다.

그에 반해 중국은 어떠한가? 여전히 탄압하고 억압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강요하면서 티벳인을 죽이고, 부리고, 말살해 가고있다.

 

역사적으로 등장했던 모든 건축물 파괴자들 인종청소자, 살육자, 문화 말살자들의 의도는 단지 그들의 역사를 지우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또 다른 목적으로 건축물의 파괴를 행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은 '테러리스트'다.

 

'테러(Terror)'는 공포, 혹은 두려움을 의미한다.

 현재에도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테러 활동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기 위함이다.

 

전쟁 중에는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전쟁과 무관한 민간인의 집 혹은 교회 역사적 건축물 등을 폭격하기도 한다.

 폭격당한 적은 같은 방법으로 보복함으로써 되갚아준다.

 결국 남는 것은 공포와 혼란 그리고 파괴 뿐이다.

 

모르는 척 해왔던 파괴와 살육 차별과 핍박들의 현장들이 머릿 속에 떠오르고 또 떠올랐다.

 중국이, 이스라엘이, 터키가 미국이, 영국, 탈레반들의 행위의 의도가 분명히 보였다.

 

그것은 깨달음을 주기보다 서글픔과 아픔만을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의 집필 의도가 불편한 진실들, 과거와 역사 속에서 가해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있는 행위에 대한 폭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파괴 행위들에 대한 염려와 경계 그리고 그만 멈추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독일은 좋은 모범이 되어준다.

 그들은 "그들의 과오를 새기고 과오에 대한 건축 기록을 남기기로 결정한 유일무이 한 나라다"라고 책 속에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보스니아의 내전에서 불타버린 도서관 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있다고 한다.

 "기억하고 경계하라."

 

자신들의 과오 혹은 오점을 많은 사람들, 많은 나라들은 가리고 감추고 모르는 척하려한다.

 부서져버린 역사적 기념물들을 복원하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들의 역사마저 망각하려 하기도 한다.

 

기억을 위조하기 위해 폐허에 위조된 역사를 다시 세울 것인가?

 망각위에 파괴된 건축물을 올려 상실감을 달랠 것인가?

 폐허를 쓸어버리면서 자신들의 과오도 함께 쓸어낼 것인가?

 

인정하고 기억하고 경계할 일이다.

 너무 쉽게 우아한 복제물을 통한 위조를 선택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철거된 과거의 유물이 있었다.

 "조선 총독부  중앙청"으로 사용되었던 국립중앙 박물관이 그 대상물이다.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존과 철거 사이에서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안다.

 우리는 그 건물을 철거함으로써 과거의 치욕에서 자유로워졌을까?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국가에 대한 분노로 국보 1호인 숭례문을 전소시킨 사례도 있다.

 그가 미워하고 원망한 것은 '국가'였지만 그가 불태운 것은 소중한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재였다.

 

우리 안에도 그들, '파괴자들'의 속성은 존재한다.

 

그러니 진정 '기억하고 경계할 일이다.'

 

 힘겹다고 치욕스럽다고 해서 부정하고 망각해버리면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손으로 부정당하고 만다.

 무겁고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 후유증으로 지금도 마음이 떨리지만, 외면되어서는 안 될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기에 의미 깊었던 책으로 기억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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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타일 - 세계 리더로 키우는 하버드만의 자기 관리법
강인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하버드 하면 떠오르는 크림슨 컬러의 H와 명문대의 표본적 이미지 그리고 앰블럼.

 

 

 

몇 권 읽지는 않았지만 이 앰블럼을 보며 떠오르는 하버드의 이미지를 적어보기로 한다.

 앰블럼의 테두리는 월계관처럼 보인다.

 상징하는 것은 자부심일 것이고.

 

검은색 테두리의 방패모양.

 그리고 그 안에 든 책을 보면 지식과 학문을 수호한다는 뜻일 것 같다.

 책이 세권인 이유는 단 하나의 관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테고 말이다.

 

그리고 책 속에 쓰여진 「VERITAS」는 라틴어로 '진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니 학문과 지식을 통해 '진리'를 구한다는 포부, 혹은 목적을 밝히고 있는 것일거다.

(이 컬러가 #a51c3o 크림슨 컬러다.)

 

하버드를 상징하는 컬러 CRIMSO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는 모르지만 어딘가 종교적? 이미지를 풍긴다랄까?

 

뭐 들어볼 것도 없이 전부 내 개인적 견해에 개별적 해석이라 재고의 여지도 없지만 말이다.

 

최근 몇 권인가 하버드에 대한 혹은 하버드 안에 속해있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버드가 명문이고 하버드가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유명한 학교이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저 하버드가 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지 그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었다.

 

책을 덮고 보니 뒷면에 하버드생만의 공부기술이니 하버드 스타일이니 하는 말이 있었는데 공부법을 익히고 싶으면 다른 책을 찾아보길 바란다.

 이 책엔 스킬이 들어있지 않다. 마음가짐이 들어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미국 사회와 우리 사회는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쪽이 옳고 어느쪽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통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언제나 성급함과 위험을 동반한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질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것을 배우면 되는 것 뿐이다.

 

동의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기꺼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라고해서 무능한 인간을 개조해서 유능한 인재로 만들 수 있는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다만 그러한 잠재능력을 지닌 이미 원석으로서의 재능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시스템과 그렇게 찾아낸 원석이 자신만의 빛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길을 열어두고 있는 것 뿐이다.

 

그 시스템을 갖추는 것, 그러한 길을 닦아둘 수 있는 능력이 하버드의 진짜 힘이 아닐까?

 

환상은 사람들을 현혹한다.

 너무 강한 빛은 사람들이 사물을 똑바로 볼 수 없게 만든다.

 

환상에서 벗어나려면 환상 밖에 있어서는 안된다.

 환상 안으로 들어가야만 환상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여전히 우리는 명문대라는 이름에 환상을 품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속에는 그들의 힘겨움도 들어있고 인간적인 모습도 들어있다.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신천지의 신인류처럼 보이는 그들도 역시 좌절이 있고 넘어서야만 하는 고난, 벽을 마주하기도 한다.

 

하버드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나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때로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타인 '남들'의 시선에 너무 얽매이는 경향도 지니고 있다.

 엄친아니 엄친딸이니 누구누구는 뭐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니 남들이 뭐라고 하겠니? 하는 이건 이미 꺼리는 수준이 아니라 공포에 가깝다.

 

명문, 유명인의 영광과 빛이라는 결과만을 보고 자신을 비하하는 일은 그만두도록하자.

 시대는 '나'에서 시작되는 삶을 요구하고 있다.

 '타인'의 삶을 살아서는 언제까지나 허무하고 괴로울 뿐인 것이 아닐까?

 

난 00하는 법이라는 이야기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먼저 '나'에 대해 알고 있지 않으면, '나'라는 기초가 튼튼히 세워져 있지 못하면 그 위에 무엇을 쌓아올려도 곧 무너질 뿐이다.

 그것을 쌓아 올리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감을 보며 더 큰 절망과 허무에 빠져들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시작은 거기서부터라고 이 책은 내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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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 개정판 마인드북 시리즈 1
박옥수 지음 / 온마인드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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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꺼려하는 이야기 방식이 있다. (어쩌면 내가 자주 범하는 실수라 꺼려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문득 떠오른다.)

 그 방식의 핵심은 '무리'다.

 무리하게 교훈을 짜맞춰 넣은 티를 팍팍 내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싫어도 그 교훈을 떠올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반강제적 이해 요구 방식. 

 강요와 함께 가식이 담긴 이야기라면 경멸해주기엔 딱이다.

 

이 책도 앞부분에서는 무리하는 듯한 인상이 풍겨서 잔뜩 심통이 올라서는 한 건만 걸려라~하며 째려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곧 깨달아야 했다.

 "시비거리를 찾으려 읽는 책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마음이 높고, 나에 대한 믿음이 강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높고 강한 믿음이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 자신의 생각만을 고수하게 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단절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정말 이건 완벽한 '쓰레기'다 라고 느꼈던 책이 딱 한 권 있었다.

  그 책은 지금 읽어도 '쓰레기'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그런 책이라 제목조차 적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외엔 처음 읽었을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세상과 사람을 알고 또 생각하면서 감상이 달라져갔다. (아마 내가 운이 좋았기에 좋은 책들만 만나온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책'이 아니었을 뿐이지 '그들의 책'마저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랄까?

 

이 책은 목사인 저자가 성경 속에서 발견한 마음의 문제 해결법, 상처의 치유법, 소통법을 담고 있다고 말해야겠지만 그것이 성경에서 나왔기 때문에 기독교인에게만 가치를 가진다고는 할 수 없다고 느꼈다.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의 소통에의 욕구 바램은 어느 시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원적 욕구다.

 홀로 존재하는 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완성해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성장 환경, 다른 가치관, 다른 습관들은 늘 그 바램이 강해질 수록 역행해 우리는 고립을 향해 곤두박질 치곤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의 마음, 자신에 대한 믿음의 병적인 높음.

 세상에 나만이 존귀하고 나만이 옳다는 좁은 마음이 문제다.

 절제할줄 모르는 정확히는 절제할 수 없게된 우리들의 마음이 문제다.

 

"내 맘을 나도 모르겠어."

 언젠가 내 입에 늘 붙어 버릇이 되었던 말이었다.

 그 때는 왜 그런지 정말 몰랐었다.

 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지금도 내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돌아보면 그 때의 난 심지어 나 스스로의 마음과도 벽을 만들고 담을 쌓고 지내고 있었던 것 같다.

 늘 외면하고 의심하고 귀기울이지 않았다.

 내 마음에도 이렇게 꽉 막혀있었는데 다른 이들에 대해서야 두말해서 무엇할까?

 

시대가 그리고 환경이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이고 지고한 신뢰와 믿음을 심어주었다.

 난 옳다, 그들이 나쁘다, 그들이 항상 나를 방해한다, 그들이 잘못해 내 기분이 상한다, 그들이 그들로 인해 이렇게 되었다.

 내가 잘못했을리 없기에 잘못한 것은 늘 세상이고 그 세상의 타인들이었다.

 티브이와 같은 매체는 우리에게 더 이상 가치판단에 대한 깊은 사고의 필요성을 빼앗아 버렸다.

 그들이 하는 말은 늘 옳거나 늘 그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와도 타인과도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빼앗겨버렸다.

 

몸에 피가 통하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그 부분은 처음엔 부자연스러움에서 마비를 거쳐 괴사해간다.

 괴사를 시작한 몸은 더 이상 내 몸도 내 편도 아니다.

 내 성한 몸마저 갉아들어오는 '적'일 뿐이다.

 

불신의 시대.

 서로의 마음을 열려하지도 않고,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으며, 드러나는 마음을 보아도 그것을 존중하지 않게 된 시대의 이름이다.

 

고립된 사람들은 고립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와도 자신만의 세계에서 상상하고 또 상상하다 결국 최악의 상상에 도달해서는 더 깊은 고립을 선택한다.

 

이 책 속에는 많은 사례가 실려있다.

 저자의 경험담도 있고, 잘 알려진 이야기도 있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마음을 열어라'는 결론으로 끝이 난다.

 두려워도 힘들어도 마음을 열지 않고는 나아질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난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얻고자하지 않았다.

 오히려 꼬투리를 잡으려 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 자체가 닫히고 꽉 막힌 나만의 마음이 만들어낸 어둠이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적게 가진 것 같은 마음으로 살면 언제까지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적게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면 언제까지나 행복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먼저 마음을 열자.

 그리고 그들의 마음과 소통을 시작하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전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가족에 대해서는 참 인내심이 약한 것 같으니, 혹 앞으로 내가 짜증을 부리거나 화를 내면 "동민아!"하고 이름을 불러달라고. 그러면 내가 화내기, 짜증부리기를 멈추고 "아, 내가 또 짜증을 내려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멈추겠노라고 말이다.

  가족과의 약속이자 나와의 약속이다.

  

저자는 부끄러움도 화나는 감정도 터놓고 이야기 하라고 한다.

 그래야 그들이 알 수 있다고 말이다.

 난 오늘 기분이 좋다. 오늘도 행복하다.

 

당신은? 오늘 행복했는가? 우울한 일이 있었나?

 언제든 당신의 마음을 기다리기로 한다.

 내 마음은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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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하여 - 여성학자 박혜란 생각모음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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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혜란님이 이 책을 쓰신 2001년의 나이가 딱 지금 우리 어머니의 연세와 같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이듦.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인 현상의 이름이다.

 

우리의 어머니, 어머니들의 어머니의 삶에대해 사실 생각해본 일이 별로 없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얼마 함께 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고, 어머니와는 산 날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떨어져 지냈기에 더더욱 그랬나보다.

 

하지만 매일 보는 사람보다 이따금 보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변화가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이듯 찾아 올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이들어가는 어머니의 모습뿐이었다.

 

저자는 우리 어머니와는 분명 전혀 다르다.

 열살은 위지만 더 많이 배웠고, 더 넓은 세상을 봐왔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났고, 더 많은 것을 해왔다.

 하지만 저자도 우리 어머니도 여자다. 나이듦을 실감하는 한 사람의 여자다.

 

이 책은 꼭 어머니들끼리 모여서 수다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때론 열살이나 스무살 쯤 차이나는 어머니들도 함께 모여서 말이다.

 

결혼, 남편의 뒷바라지, 자녀, 건강, 노후, 그리고 죽음.

  나이들어가면서 어머니들이 마주하게 되는 문제, 혹은 기대 아니면 두려움의 키워드다.

 

어쩌면 어머니의 전부이면서 어머니의 짐이 될 뿐인 때도 있는 키워드들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내내 어머니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시간, 어머니의 고생, 어머니의 병과 아픔, 어머니와 나.

 

"나와 우리 어머니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네."라는 말은 입이 삐뚫어져도 못하겠다.

  어머니는 나이 들어가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실까?

  어머니는 나에 대해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기대하고 계실까?

  어머니의 바램은 무엇일까?

 

따지고보니 정말 난 어머니를 너무 모른다.

 싫어하는 것은 몇가지 알아도 좋아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의 절반만큼도 알지 못한다.

 

이렇게 해드리면 좋아하실 것을 알지만 그렇게하기엔 귀찮음이 너무 무겁기만 하다.

 여전히 난 이곳에 주저앉아 있기로 한다.

 

100세시대.

 아직 멀고 먼 이야기니 너희 앞가림이나 잘 해나가라고 부모님은 말씀하신다.

 뭐 그 말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해 왔던 것들, 혹은 잘 몰랐던 것들, 그리고 잘못 알고 있던 것들.

 지금부터라도 노력과 변화의 여지는 충분했다.

 조금 더 그래 조금만 더 하고 되뇐다.

 

'여자, 그리고 나이'라는 부제로 여자의 나이듦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꼭 나이든 어머니들 혹은 여자들이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편이 그리고 자식이 읽으면 어머니의 마음, 나이들어가는 여자의 마음에 조금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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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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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아 유 해피?"라는 질문을 거의 어디가든 어떤 사람에게든 가장 많이 듣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러준 말이 "아즈 함 바후트 쿠스헤" 뜻은 "오늘 난 무척 행복하다" 이다.

 

이 책은 시인으로 잘 알려진 류시화님의 인도에서의 깨달음 여행기다.

 우리는 흔히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무척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음에도 행복지수는 갈수록 낮아지고 다툼도 우울증도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인 류시화님도 책 속에서 적고 있듯이 지나치게 인도인들의 삶을 미화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한켠에 남아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런 마음은 내려놓고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책 속에서 저자는 수 많은 스승을 만난다.

 수행자에서 어린아이까지.

 마치 인도인 모두가 그의 스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불편하고 더럽고 지저분하고 야만적이고 때로는 참혹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삶 속에서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안들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꼭 가보고 싶다는 '혹' 하는 마음이 들었으면 들었지 말이다.

 

저자는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매번 문명의 충격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눈만뜨면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라나?

 수행과 명상이 생활화 되어있는 고요한 세상에서 악다구니 가득한 속세로 내려온 셈이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든 당신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라는 인도의 한 식당 주인인 라자 고팔란의 말은 깨달음을 일깨웠다.

 "난 내가 간 곳에 늘 있었던가?"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

 어떤 일을 할 때도 그것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고, 그곳에 있는 것은 '나'가 아니라 내가 뒤집어 쓴 '가면'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경험, 혹은 좋은 말, 문득 떠오른 생각을 메모하는 저자를 보고 한 인도인은 "굳이 메모해서 기억하지 않아도 체험한 것은 마음에 새겨지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는다"며 자신의 것만을 책에 적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허허 참, 안그래도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해두는 습관이 있는 난데 이건 뭐 나한테 하는 얘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예전에는 떠올랐던 생각을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잊어버리거나 적어놓지 않아 떠올리지 못하게 되면 조바심을 내다 못해 화를 내기도 했었다. 실제로 어릴 땐 그런 이유로 싸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문득 깨달은 것이, "내 삶 속에서 내가 떠올린 생각이라면 지금 잊혀지더라도 꼭 다시 떠오를 것이다."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몇년 전인가였는데 그 때 무슨 계기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을 보면 분명 내 깨달음, 내 경험 즉 내 것이 맞다.

 

저자는 인도인들이 '죽음'을 대하는 마음 자세를 몇가지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그들은 육체보다 영혼과 신을 더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미련도 없다.

 비슷한 이유로 물욕도 탐욕도 적다.

 저자는 그들의 그런 삶의 방식 속에서 자신의 안에 꼬여있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갈 실마리를 발견한다.

 마치 신이 예비하고 인도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언제나 어디서나 말이다.

 

많이 갖는 것보다 필요한 만큼 갖는 것, 욕망하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그들의 평화와 행복의 비결이었다.

 

워낙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가 많아 공감도하고 돌아서 생각해보며 후다닥 읽어버렸다.

 이런 류의 책이 그러하듯 실은 그러면 안되지, 하나하나 음미하고 새겨가며 읽어야지, 하면서도 이게 나인걸 어쩌랴.

 

타인이 주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타인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타인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타인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달려있다.

 인도의 수행자, 구루지들은 신은 어디에나 있다고 이야기한다.

 누구의 안에도 어떤 곳에도 늘 신이 함께 하기에 그들은 괴로움도 아픔도 없다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해탈이 아닌가 싶은 경지라 난 우러러 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지만 최대한 내 마음을 가다듬어 가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있는 '그곳'에 언제나 나로 존재하는 것.

 나의 괴로움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

 

하나하나 조금씩 나아짐으로 나아가야겠다.

 

ps. 혹 잠깐 들른 서점에서 이 책을 떠올렸다면 236쪽에서부터 시작되는 '사두 어록'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깊은 깨달음을 음미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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