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샤덴프로이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독일어로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건축물들에 대한 만행을 기록한  책이다.

 그 역사는 멀게는 고대 가깝게는 현재까지 이어져있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느낀 것은 오직 처참함, 참혹함, 추잡함 따위와 함께 찾아오는 후회였다.

 "읽지 말았어야 했다. 모르는 것이 나았다. 그들의 위선에 가운데 손가락을 선사하리라."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한 단어들을 적어보면 파괴, 살육, 학살, 청소, 살해 따위다.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이미 처참함과 참혹함을 품고 있다.

 

불편한 진실의 폭로가 요즘의 대세인 모양이다.

 위키리크스의 각국의 비밀문서 폭로로 시작된 역사의 뒷면, 어둠의 역사들.

 

인정하든 부정하든 기억되었든 망각했든 이 책의 내용물은 분명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엔 무척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보스니아의 내전, 이스라엘, 세계 대전 중의 폭격에 얽힌 뒷 이야기들, 터키, 미국과 영국, 독일, 중국 등의 국가가 혹은 국가에서.

 과거에 저질렀거나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집단 기억의 파괴'를 위한 기도, 즉 '인종 청소'와 '문화 말살' '살육과 파괴'를 다루고 있다.

 

양립할 수 없는 적대관계에 있는 대상에 대한 흡수, 혹은 배제, 아니면 말살하려고 마음먹은 그들은 대상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들의 인종, 문화, 언어,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말살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겐 어떤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다.

 

그렇기에 배제대상의 건축물은 그들이 지었다는 이유 혹은 그들이 살던 도시 혹은 국가에 지어져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죄'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다.

 또 하나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는 중국의 티벳 학살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그들은 대상의 완벽한 박멸을 원했다.

 그들의 역사와 사상 그 무엇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철저히 박해하고 파괴했다.

 

그것이 이루어진 과정을 눈으로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인간적인 분노'가 이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들에게 그들은 '인간'도 무엇도 아니었다.

 이건 정말, 정말 아니다.

 

하지만 독일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죄의식을 갖고 있다.

그에 반해 중국은 어떠한가? 여전히 탄압하고 억압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강요하면서 티벳인을 죽이고, 부리고, 말살해 가고있다.

 

역사적으로 등장했던 모든 건축물 파괴자들 인종청소자, 살육자, 문화 말살자들의 의도는 단지 그들의 역사를 지우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또 다른 목적으로 건축물의 파괴를 행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은 '테러리스트'다.

 

'테러(Terror)'는 공포, 혹은 두려움을 의미한다.

 현재에도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테러 활동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기 위함이다.

 

전쟁 중에는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전쟁과 무관한 민간인의 집 혹은 교회 역사적 건축물 등을 폭격하기도 한다.

 폭격당한 적은 같은 방법으로 보복함으로써 되갚아준다.

 결국 남는 것은 공포와 혼란 그리고 파괴 뿐이다.

 

모르는 척 해왔던 파괴와 살육 차별과 핍박들의 현장들이 머릿 속에 떠오르고 또 떠올랐다.

 중국이, 이스라엘이, 터키가 미국이, 영국, 탈레반들의 행위의 의도가 분명히 보였다.

 

그것은 깨달음을 주기보다 서글픔과 아픔만을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의 집필 의도가 불편한 진실들, 과거와 역사 속에서 가해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있는 행위에 대한 폭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파괴 행위들에 대한 염려와 경계 그리고 그만 멈추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독일은 좋은 모범이 되어준다.

 그들은 "그들의 과오를 새기고 과오에 대한 건축 기록을 남기기로 결정한 유일무이 한 나라다"라고 책 속에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보스니아의 내전에서 불타버린 도서관 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있다고 한다.

 "기억하고 경계하라."

 

자신들의 과오 혹은 오점을 많은 사람들, 많은 나라들은 가리고 감추고 모르는 척하려한다.

 부서져버린 역사적 기념물들을 복원하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들의 역사마저 망각하려 하기도 한다.

 

기억을 위조하기 위해 폐허에 위조된 역사를 다시 세울 것인가?

 망각위에 파괴된 건축물을 올려 상실감을 달랠 것인가?

 폐허를 쓸어버리면서 자신들의 과오도 함께 쓸어낼 것인가?

 

인정하고 기억하고 경계할 일이다.

 너무 쉽게 우아한 복제물을 통한 위조를 선택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철거된 과거의 유물이 있었다.

 "조선 총독부  중앙청"으로 사용되었던 국립중앙 박물관이 그 대상물이다.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존과 철거 사이에서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안다.

 우리는 그 건물을 철거함으로써 과거의 치욕에서 자유로워졌을까?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국가에 대한 분노로 국보 1호인 숭례문을 전소시킨 사례도 있다.

 그가 미워하고 원망한 것은 '국가'였지만 그가 불태운 것은 소중한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재였다.

 

우리 안에도 그들, '파괴자들'의 속성은 존재한다.

 

그러니 진정 '기억하고 경계할 일이다.'

 

 힘겹다고 치욕스럽다고 해서 부정하고 망각해버리면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손으로 부정당하고 만다.

 무겁고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 후유증으로 지금도 마음이 떨리지만, 외면되어서는 안 될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기에 의미 깊었던 책으로 기억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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