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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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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생각은 많아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는 아무래도 거북한 게 인지상정이다.
어디까지나 우리에게는 '삶이 전부'이고, '죽음은 전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 거다.
저자 역시 죽음보다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더 나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를 원한다. 이러한 바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지속되는 변하지 않는다. 대체로 변덕스럽기 마련인 사람의 바람이 한결 같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크고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게 된다.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만큼 큰 마음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드러내지 않는 이 암묵적인 바람은 바로 인간답게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젊음을 깎아 노년의 창고를 채우는 궁극적인 이유는 젊음이 지나간 후의 삶도 만족스러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거다.
우리는 죽음에 '이어간다'는 표현을 달지 않는다. 이어갈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삶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 거다.
이 책에 담긴 메시지가 온통 삶을 향하는 그 이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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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두 8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5장은 질병과 장애에 시달리는 노년의 삶의 희극과 비극을 담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엇갈린 삶 가운데 가장 소중했을 시간들에 대한 기록들이 왜 우리가 '좋은 삶'을 희망해야 하는지, 약해질대로 약해진 순간에 선택할 수 있는 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 삶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거다.
나머지 3장은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한 과정과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의 아버지가 보냈던 삶의 마지막 순간들을 통해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시켜주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죽음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피해갈 수 없다면 부딪혀야 하고, 부딪혀 부술 수 없다면 넘어서야만 한다.
죽음에 극복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적어도 죽음이 가져다 주는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만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넘어서게 해주는 건 더 좋은 삶에 대한 희망이다. 더 좋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을 지 모른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을 의식을 잃거나, 혼미한 상태로 무균 상태의 병실에서 무수한 선과 호스를 달고, 단지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삶보다는 더 좋은 삶이 있다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는 70년 넘게 왕성한 활동을 하며, 부지런하고 또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분이다. 6년 전 할머니는 욕실에서 넘어지셨다. 왜 넘어졌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분명히 알지 못하지만 결과는 무척 좋지 못했다. 뇌에 출혈이 있었고, 오른쪽 반신은 차디차게 변해서 전혀 쓰지 못하게 됐으며, 말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병원 생활이 시작됐고, 찾아갈 때면 늘 답답한듯 가슴을 치며 눈물지으셨다. 애처로움, 안타까움을 넘어 그건 너무나 비참하고 가혹해 보였다. 할머니는 퇴원해서 집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치료와 투약이 이유였지만 결국 저마다의 사정으로 할머니의 병원 생활이 시작된 거다. 이제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는 여전히 병원 생활을 하고 계신다. 몇 번인가 병원을 옮겼고, 처음과 달리 음식을 거부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 속 마음이 어떤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책 속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 같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할머니에게 일어난 일은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안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젊은 사람이 할머니와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할머니는 감금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_119쪽」
이 느낌에 조금이라도 과장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노인들이 갇힌 거나 다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 생활의 명목은 '안전'과 '보호'다. 하지만 누구를 무엇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건 아무도 없다. 당사자조차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하고, 생각해 본 일조차 없는 일이 허다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분명하다.
삶이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나타나는 당연한 노화와 질병의 위협 속에서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그 순간이 온다면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정해둬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못할 경우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수술을 하고, 장치를 달고, 진정한 의미의 삶은 누리지도 못한 채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야만 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는 것 혹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이 삶과의 분리를 의미한다는 생각은 대부분 받아들일 거다. 그렇다면 '삶'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봐야만 한다. 단지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상태를 두고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게 맞다. 하지만 삶이 단지 생물학적으로 생명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멀게는 뉴스, 영화, 드라마에서 가깝게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수술과 항암 치료가 삶을 어떻게 망치는지 익히 보고 들어왔을 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막상 자기의 일이 되었을 때 그런 일은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일인 것마냥 당황하고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는 거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두려움이 오래 지속되고 당황과 두려움 속에서 삶의 다음 단계를 선택했을 때의 위험은 어쩌면 치명적일 수 있다.
저자는 의사다.
저자의 아버지도 의사였다.
하지만 그들 역시 환자에게 선고하는 일에는 익숙했을지 몰라도 선고를 받는 일에는 놀라고 당황해했으며 두려워했다.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것, 그것이 죽음의 근원적 속성이기에 두려워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저자가 의사라는 사실을 거듭 적은 이유는 저자가 의학과 의술에 의지해서 삶을 지속시키는 일에 커다란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수술과 화학치료, 약물치료가 최선은 아니라고 말한다. 많은 연구에서 오히려 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게 밝혀졌고, 그렇기에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다. 의학적 치료가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환자에 대한 치료와 의학적 시도를 완전히 포기하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을만큼의, 지나치지 않은 의학적 치료와 함께 호스피스 케어와 가족의 관심과 같은 의학 외적인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거다.
이런 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잠꼬대처럼 들릴 지 모른다.
"그럴 수 있다면 벌써 그렇게 하고 있겠지!"하고 꼬집어 말할 지 모른다.
나부터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기에 더더욱 뜬금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학적인 시술과 치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죽음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찾아드는 것이기에 죽음을 걱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는 거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오직 삶이다. 어떤 삶을 원하는지, 여건과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가장 좋은 삶을 구해아 한다는 것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답인 셈이다.
언제 죽음이 나를 찾을지, 혹은 어느 때 소중한 사람들에게 죽음이 들이닥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생각하려고 애쓸 거다. 무엇이 나의 소중한 사람을 위한 일인지, 그 소중한 사람이 어떤 삶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는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 함께 찾아내기 위해 노력할 거다.
이 책은 죽음이 개인의 일이지만, 동시에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다시 깨닫게 했다. 삶은 소중하다. 그 소중한 삶을 위해 죽음을 기억하고, 현재의 삶을 즐기는 것만이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의 의무가 아닐까.
아모르 파티
Amor Fati
우리에게 반드시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카르페 디엠
Carpe Diem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