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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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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든 콜필드는 열여섯 살 난 고등학생이다. 이제 곧 퇴학당할 것이기에 '퇴학 예정 고등학생'이지만 말이다. 홀든 콜필드는 몹시도 지루해 하고 있다. 아니다. 정확히는 외로워하고 있고 슬퍼하고 있다. 이유는 많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친구들은 하나 같이 영화관으로 몰려가거나 시시하고 '연극같은' 연극에서 받은 얘기들을 나누는데 열중할 뿐이다. 좋은 대학에 가서 돈을 많이 벌게 되기를 꿈꾸는 시시껄렁한 얘기들 말이다.
홀든 콜필드가 지루함이나 슬픔 혹은 외로움의 크기를 표현하는 방법은 독특하다. 상황이나 느낌을 무척 과장해서 말하는 거다. 번번히 '목이 부러질 뻔'하거나 몇 번이나 몇 십 번일 것을 수백 수천 배로 부풀리는 식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는 '고통'만큼은 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룸메이트인 스트라드레이터에게 윗입술을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그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스스로를 '강인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벨보이에게 배를 얻어 맞았을 때도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닌가'싶을 정도의 통증이었음에도 그 이상의 묘사를 하지는 않는 거다.
'거침' 혹은 '강인함'을 꿈꾸는 사춘기 특유의 허세인지 아니면 고통 혹은 통증과 마주하기를 꺼려하는 두려움 때문인지 그 근원은 불분명하다. 다만 정말 사랑했던 여동생 앨리가 일찍 죽었던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볼 뿐이다. 홀든 콜필드는 이야기나눌 사람을 찾아 뉴욕을 헤메고 다닌다. 죽어라 담배를 피워대고, 술을 마시고, 누군가 적당한 사람에게 연락을 시도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거나 만나더라도 여전히 외로움에 시달린다. 홀든 콜필드의 목적은 어떻게 보면 '말을 할 사람을 찾는 것'인 셈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저마다의 일로 바쁘고 분주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이 대표적인 성장소설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홀든 콜필드는 여전히 홀든 콜필드고 극적인 화해나, 반전도 없이 그저 '흘러가기 때문'이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자지도 못하고 헤메다닌 덕에 결국 병을 얻었다는 식으로 퇴학 사실에 대한 어떤 처벌이나 곤란 없이 다시 집으로, 가족 안으로 들어갔다는 식의 이야기처럼 읽힌 거다. 하지만 내내 앨리만을 가장 좋아하던 홀든 콜필드가 여동생 피비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을 확인하고는 마음을 돌림과 동시에 자신이 있을 곳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깨닫게 됐다.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단 한 사람, 작고 약한 여자 아이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자기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 다만 그런 한사람조차 찾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싶고, 그래서 방황이 그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게 아닌가 한다.
모든 숫자와 가능성, 상황과 위험을 과장하기 좋아하는 열여섯 소년 콜필드는 자기 스스로를 잘 안다고 믿는다. 하지만 번번이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충동적으로 해버리고는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그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고, 앞으로는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장담도 없다. 어쩌면 정신분석을 좀 더 일찍 받아서 치료를 받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부모는 그가 정신분석을 받고 그 치료를 통해 좋아졌다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를 낫게 하는 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그 존재의 힘이다.
콜든 홀필드의 바람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낭떠러지인 줄도 모르고 달려가는 아이들을 붙들어주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인 거다. 종종 그렇듯 자신이 받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해주고 싶어하거나 해주기 마련이다. 홀든 콜필드가 가장 바라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던 거다. 자신을 붙들어줄 사람, 외로움과 슬픔을 견딜 수 있는 존재가 간절했던 거다. 그토록 사랑스럽던 여동생 앨리를 잃은 상처도 아직 다 치유되지 않았었다. 앨리가 죽던 날 차고의 유리창을 주먹으로 부수는 바람에 입은 상처로 주먹을 쥘 수도 없게 된 오른손처럼 겉으로는 나은 것처럼 보여도 이미 엉망으로 망가져 있던 거였다. 키가 크고, 머리가 세었어도 그것으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마음이 자란 다음인 거다. 마음이 어린아이여서는 언제까지고 어른이 될 수 없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도 마찬가지다. 그런 '행위'가 성장이나 성숙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떤 의미로 그런 행위에 의존하는 건 불안이나 부족을 드러내는 행동인 거다. 불안하고 초조하기에 의존적인 행동을 더 자주, 더 심하게 하는 것으로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를 거듭하는 거다.
이 이야기의 다음에 홀든 콜필드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었을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 내게는 그저 입버릇 나쁘고 무진장 담배를 피우는데다, 술까지 마셔대는 키가 크고 센 머리가 많은 불량한 고등학생이 그려질 뿐이다. 하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훌륭한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다. 작고 어리지만 훌륭한 파수꾼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파수꾼이 한 사람씩은 붙어다녔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외로움과 슬픔이 조금은 덜어질텐데 말이다.
그렇게 슬픔과 외로움이 덜어지면 길가다 코나 입으로 흘러드는 담배연기에 불쾌해 하는 일도 줄어들테고, 술 주정으로 일어나는 불상사도 적어질텐데.
우스갯소리다. 그래도, 그런 파수꾼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