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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 1 - 아동교육 심리학의 영원한 고전 ㅣ 한 아이 1
토리 헤이든 지음, 이희재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적은 거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토리 헤이든은 특수아동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토리는 7명의 아이들을 받아 이민자 출신의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전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안톤을 보조교사로 두고 중학생인 휘트니를 도우미 삼아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학기 초의 혼란이 잠잠해지고 아이들도 학교 생활에 익숙해져갈 무렵 토리는 또 하나의 아이가 그 반에 들어오게 될 거라는 사실을 전달 받는다. 토리는 지금 '다루고'있는 아이들도 힘에 부친다며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담당관인 에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결국 1월 어느날 한 아이를 교실로 데리고 온다.
그 한 아이의 이름은 '쉴라'로 최근에 세살 난 아이를 데리고 나가 불을 질러 죽일 뻔 한 이력을 가진 '정신 나간' 아이였다. 쉴라는 이 반에 임시로 맡겨진 것으로 주립병원에 자리가 날 때까지만 머무르기로 한다. 첫날부터 토리와 쉴라는 부딪히기 시작해 충돌은 갈수록 심해져 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토리와 쉴라의 사이가 나아지는 것처럼 보여지고, 쉴라가 실제로는 아이큐가 180이 넘는 천재라는 사실도 밝혀진다.
하지만, 쉴라의 뛰어난 지능은 그 아이의 과거와 맞물려 최악의 결과들을 내놓기도 한다. 쉴라는 친엄마가 도로에 버리고 간 아이였다. 그 바람에 다리가 부러져서 흉터가 남았다. 또 쉴라의 아빠는 알콜중독자에 마약중독자이기도 했다. 더 최악인 것은 쉴라의 삼촌인 제리가 여섯 살인 쉴라를 강간하려고 하다 잘 되지 않자 칼로 쉴라의 성기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는 거다.
이 만신창이인 아이가 맡겨진 게 토리 헤이든의 반이었다. 도대체 신이 있다면, 이 아이에게 이럴 수 있는 걸까?
음울한 이야기다.
한 아이의 마음이 매 순간 찢어지고 찢기고 갈라지고 부서져 그 통증이 내게 옮아오는 듯했다. 더 놀라운 건 이 아이의 강인함이었다. 아니다. 그것은 강인함이 아니라 무지였는지도 모른다. 쉴라는 그 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렇게 되는 것'인 줄 알았으리라. 누구도 그것이 잘못되었고 이상하다고 말해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엄마가 자신은 버리고 남동생만 데리고 간 것도 자기가 잘못해서라고, 자기가 미워서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세상에 유일한 의지처가 늘 술에 취하거나 마약에 취해 툭하면 자신을 벌주고 때리는 아빠라고 해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으리라.
쉴라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그리고 쉴라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죽음을 떠올리기조차 너무 어린 아이에게 부당한 대우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말하는 건 오히려 가혹한 처사다. 설사 떠난다 해도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는 아이가 누구와 함께, 누구의 곁에서 행복을 꿈꿀 수 있었겠는가.
토리 헤이든은 20대 중반 혹은 후반 쯤 된 특수교사다. 학교에서 교수들이 가르치던 전통적 방식을 떠나 아이들에게 몰입해서 사랑과 관심을 주는 것이 치료와 교육에 효과를 더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중산층 출신이라고 스스로 밝히는 사람이며, 채드라는 변호사와 사귀고 있고 특수교사로서 일하는 데에 커다란 만족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이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자신은 잘 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이 이야기에는 토리의 남자 친구들 이야기는 나오지만 가족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물론 필요 없었기에 적지 않았을 수 있지만, 쉴라에게 향하는 집착에 가까운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이었을까.
이야기는 쉴라가 토리의 반으로 온 1월부터 학기가 끝나는 6월까지의 5개월 동안에 있던 일들이다. 쉴라는 끊임 없이 반항하고, 일을 꾸미고, 토리를 시험하려 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마음이 열리고 마지막에는 거의 완전히 열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쉴라는 토리가 읽어준 생택쥐 페리의 <어린왕자> 속의 여우와 어린왕자 이야기에 매료된다. 그러면서 '토리 선생님이 자기를 길들'였기에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토리 역시 쉴라가 자기를 길들였으니 책임이 있다는 말로 되받는다.
학기가 끝나고도 쉴라는 토리의 반에 남기를 바라지만 학기가 끝나면서 그 반은 해체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토리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더 할 계획도 세워두었다. 처음에 쉴라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를 기만'했다며 소리지르고 화를 낸다. 토리 선생님이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나 다름 없다며 비난하는 거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 두 사람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이 이야기는 끝이 난다.
여섯 살, 고작 여섯 살이다.
여섯 살 난 아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말로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규칙을 앞세워 무엇을 하게 만들거나, 체벌로 겁을 주어 하지 못하게 하는 게 효과가 있을까?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보지도 않고, 아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묻지도 않으면서 아이와의 관계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잠꼬대가 또 있을까?
아이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덩달아 함께 화를 낸다면 그 아이의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 외에 무엇이 찾아들겠는가?
토리 헤이든은 물론 헌신적이고 훌륭한 교사다. 집념도 강하고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도 깊다. 하지만 토리는 위에 늘어놓은 물음들에 얽힌 실수를 거듭하고 반복한다.
마시멜로 테스트라는 게 있다.
아이에게 마시멜로를 주고 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면 더 많은 걸 주겠다고 했을 때 기다린 아이들이 기다리지 않은 아이들보다 성장했을 때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하지만 이 실험은 아이의 자기 통제와 인내력을 측정하는 실험에 그치는 게 아니다. 만약 아이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렸음에도 실험 전에 약속한 것을 주지 않았을 때 아이는 오히려 성공에서 멀어졌다고 한다. 아이는 믿고 참고 기다렸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커다란 상처가 된 거다.
마시멜로 실험은 신뢰의 실험이다. 아이에게 한 약속은 지켜야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하지만 토리 헤이든은 번번이 선생님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저지른다. 그러면서 '아이가 왜 불안해 하는 지 모르겠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데 도무지 믿게 만들 수가 없다'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잘못은 쉴라에게 있지 않았다. 마음을 주고 받았으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쉴라가 "나는 길들여 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거나 "나를 믿으라고 한 적 없다."고 말하는 게 당연하다. 토리는 쉴라에게 충분한 믿음을 줬다고 믿었는지 모르지만 그건 자기만의 착각이었고, 자기 만족에 불과했다. 아이에게는 한 없이 부족했다. 그 마음을 토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마음을 쏟지 않고 규칙 안에서의 교육만을 행한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불러올 지도 모를 행동이라는 거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순탄한 시절을 보내며 성장한 토리가 그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삶을 살아온 쉴라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는게 오히려 이상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자연스럽다. 거기에는 화를 낼 여지도, 슬퍼할 이유도 없다.
이 책이 여러 나라에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하지만 이 책 속 이야기만으로는 무엇 하나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게는 많은 게 불만이었다. 그저 그런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어 나가려고 애쓰는 쉴라의 모습만이 감동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었다. 마음을 줄수록 아픈 상황, 길들여질수록 버려질 미래가 확실해져간다는 사실을 직감했을 이 영특한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황량했을까.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거며 아프고 두려웠을까.
"다 괜찮을 거다"라고 아무 것도 모르고 위로하는 사랑하는 선생님을 보며 몇 날 며칠을 울었을까.
아동교육의 권위자들이 이 책을 극찬했을 광경을 떠올리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당사자와 같은 입장에 있는 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쉴라를 조금이라도 부러워했을까? 쉴라가 토리를 만나 다행이었다고 생각했을까?
오래 전 "태양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내 말에 한 선배는 이렇게 답했다. "이미 늦었어. 태양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잖아."
토리를 만나기 전의 쉴라는 어둠 속에 있었다. 거기에는 빛도 온기도 없었다. 그렇기에 더럽고 불결했으며 가혹한 생활을 하고 있어도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실감하지는 못했으리라. 하지만 토리를 만나는 순간 빛을 알아버렸다. 이후 쉴라의 삶은 밝아졌을 거고, 자기 주변이 더는 가릴 수도 없을만큼 추하고 더럽다는 사실을 매순간 받아들여야만 했으리라.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이런 경험이 어떤 것이었을지 토리 헤이든 선생님이 생각이나 해봤을지 알 수 없다. 쉴라는 집으로 돌아갔고, 토리는 떠났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