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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라디오
모자 지음, 민효인 그림 / 첫눈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방구석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옛 고향집을 떠올리게 한다.
고향집에는 다락방도, 다락방 속의 라디오도, 도심의 야경도 없었지만 밤 하늘에 가득한 별빛 만큼은 부족하지 않았다.
이제는 어쩐지 자주 찾아가기도 어려워지고 말아서 더 그리워지는 고향, 향수를 불러 오는 그런 빛깔의 책이다.
작가의 이름이 모자라니.
모자를 좋아해서 모자라니.
왠지 겸손할 것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왠지 복잡할 것 같은.
이야기들은 작가의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을 바탕으로 설계되고 구축되어 세상에 나온 것들이다.
아버지와의 이야기가 유난히 많다고 느꼈는데, 모자 씨가 남자라서였을까?
아니면, 나 역시 아버지가 있는 남자이기 때문이었을까?
얼핏 복잡해질 수 있는 생각이었지만 이 책은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담백하게, "그랬지"하고 생각을 그칠 수 있는.
마침표를 찍듯 하나 하나의 생각들에 조금은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려주는 게 오히려 편했달까.
사람들은 깨달음을 구하지만 정말 커다란 깨달음은 어디선가 느닷 없이, 혹은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일깨워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조금씩 적어나간 이야기 속에 담긴 무수한 깨달음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처럼 그 공감이 늘어나고 깊어지면 어느 순간 마음의 한 군데에 가서 닿을 것이고, 다음 순간 "아,"하고 느끼게 되는 것. 그런 게 깨달음 아닐까.
사람이 사람에게, 가족에게, 회사에, 연인에게, 친구에게 기대하고 기대는 많은 것들은 어디까지 '자의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문제가 되면 객관성을 잃어버린다.
"왜 나에게만."
"너는 어쩌면 그렇게."
원망하고 탓하는 말이 늘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애초에 믿음을 가진 건 나였으니까."
내가 만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시작했으니, 내가 끝내는 게 옳은 것이다.
작가는 마치 자기만의 주파수로 방송을 계속하듯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누구에게 동정이나 공감을 호소하는 일도 없이 담담하게.
요즘에도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많은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라디오가 단순한 방송의 하나가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고 신해철 님은 방송에서 '마왕'으로 군림했었다.
새벽의, 이르다고도 늦다고도 하기 어려운 시간.
깨어 있는 사람이 아마도 가장 적은 시간에 그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더란다.
라디오란 그런 것이 아닌가 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나누는 동시에 그 사람에게 돌려주는 그런.
<방구석 라디오> 역시 그런 방송을 닮아 있다.
나는 모자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그 이야기는 나에게 돌아와 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모두가 잠들었을 거라고, 외로운 것은 나 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라디오는 다른 사람의 사연을 전해준다.
같은 시간에 깨어 귀기울이고 있을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말이다.
조용한 새벽, 아마도 홀로 깨어있다고 생각해도 좋은 시간에 읽으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