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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책을 읽게 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라고 적으면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어떤 책이 어느 순간,
집의 책장에서든, 서점에서든, 도서관에서든, 인터넷에서든, 어디서든,
눈에 띄었을 때 "이거 한 번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보통은 읽을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칼의 노래>를 다시 읽게 된 계기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원래는 이 책을 누군가에게 줄 생각으로 책장에서 꺼냈던 거였다.
그랬던 것이 눈에 들어왔으니 오랜만에 한 번 더 읽어볼까? 가 되어서 결국 읽어버리고 말았던 거다.
뭐, 그런 경험들 한두 번씩은 하지 않았을까?
10년도 전에 <칼의 노래>를 처음 읽었었다. 그때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좋았다'는 여운만은 분명히 남아있었다. 아쉽게도 어떻게 좋았었는지 기억나지를 않는다. 결국 두 번째 읽은 기분과 비교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말았다.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부터 정유재란까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끝내고 노량해전에서 목숨을 잃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역사를 뼈대로 해서 새롭게 해석해 적어낸 소설이다.
'안타깝다'라고 적는 것이 올바른 표현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성웅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아니다. 백성과 나라를 생각하며 애태우는 것이 사실이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 역시 진짜지만 그것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이 이순신이라는 한 인간의 '자아'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부는 바다의 파도가 칼날처럼 일어나는 것,
마음의 칼이 우는 것처럼 느끼는 것,
스스로를 적의 적이라거나 타자의 존재를 통해서만 자신을 증명하고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몹시 철학적이다.
무인이라고 하기보다 철학자라고 하는 것이 더 올바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만큼 작가 김훈이 그려낸 이순신은 사유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 나라의 흥망성쇠가 자신의 손에 달려있을지 모른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무능력할 뿐 아니라 변덕스럽고, 성마른 왕에 대한 냉엄한 평가.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뿐 아니라 당쟁으로만 치닫는 정치에의 환멸.
서로의 이익을 좇아 거리낌 없이 타협하는 인간군상에 대한 분노 역시 내면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관찰과 생각의 끝에는 자신이라는 '존재의 규정'이 있다.
간신이 있기에 충신이 있고, 난세가 있기에 영웅이 태어나며, 죽음이 있기에 삶을 갈구하는 것 혹은 살아남았기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이순신의 생각하게 만드는 외부 요인들이다.
아, 여기까지 30분간 적은 내용은 혼잣말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 줬으면 좋겠다.
이 아래에서부터가 감상인 걸로.
이 소설의 제목이 <칼의 노래>인 이유는 뭘까?
단순히 생각해보면 이야기 속에서 칼이 노래를 부르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그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
이순신 장군의 성품이나 인격을 통해 생각해보면 이 노래가 흥에 겨운 것, 당시에도 있었을 유행가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먼저 이 '칼'은 어떤 칼을 말하는 걸까?
몇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칼刀'이다.
이야기 속에는 이순신 장군을 포함해 여러 사람의 칼에 새겨진 검명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의 검명은 이렇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이순신이 추구하는 '칼'은 전쟁을 끝내는 종결의 칼이다.
또한 자신의 죽음의 자리와 순간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칼을 찬 장수'로서 승리하고 돌아오겠다고 백성들에게 약속하는 장면에서 이순신 장군이 듣고는 하는 '칼의 노래'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되찾아 올 방법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순신과 반대로 일본군의 검명은 난폭하고, 폭력적인 것을 '즐기는' 문구로 되어있다. 그들은 죽이고 약탈하는 것이 목적인 존재들이다. 자신을 찾기 위한 것도, 살아남기 위한 것도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아니다. 맹목적인 충성과 살의가 그들을 지배한다.
둘은 칼날 같은 파도다.
바다는 많은 것을 삼킨다. 마치 인명을 도륙하는 칼날처럼 바다에 떨어진 자들의 숨을 끊어놓는다.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 속 전쟁의 주된 배경으로써 무수한 전투가 시작되고 끝난다.
바람이 잘 때는 칼날 같은 파도도 잠잠해진다. 그러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떤 칼보다 날카롭고, 잔혹하게 변하는 것이 바다인 것이다.
전쟁이 끝나던 날 그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숨지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 바다 위가 아니면, 칼날 같은 파도 위가 아니면 이순신 장군이 죽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셋은 잃어버린 마음이다.
이순신 장군의 셋째 아들 면은 꿈에서 자신의 칼을 찾아달라며 아버지를 찾아온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것은 되찾을 수 없다고 한다.
죽음으로써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살아있으면서도 그 마음을 잃어버린 자들이 무수했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이순신 장군의 마음에서 울리는 칼의 노래가 간신들, 조정의 대신들, 왕의 마음에서는 울렸을 리가 없다. 그들은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칼은 잃어버린 강토라고 말이다.
대신들은 전쟁을 끝내고 백성을 환란과 도탄에서 구하며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중요시한다. 그런 그들만으로는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명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역시 애처로울 지경이다. 그들은 '자기애'에 함몰되어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간신과 매국노는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는 잘 벼려진 칼이 없었을 것이다. 있다고 해도 자신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이기적인 칼만 품고 있었을 거다.
이번에 읽은 <칼의 노래>는 한 인간의 고독한 투쟁기처럼 읽혔다.
사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지만 이 소설은 첫 문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런 아름다운 첫 문장을 품고 있는 소설이 이렇게 고독하게 읽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타인이 있기에 자신이 있다고 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단지 '적의 적'으로 존재할 뿐이라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외로운 까닭은 자신이 누구의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왕의 편도 아니고, 대신들의 편도 아니며, 명이나 일본의 편도 아니고, 심지어는 백성의 편도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자아와 대립하거나 보완하는 위치에서 이순신이라는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는 존재가 된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죽음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만 같다.
자신이 휘두른 칼이 적을 쓸어버리고, 피가 강산을 물들일 때 그 피에 자신의 피까지를 섞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영웅적인 면모는 4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유언은 장엄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외부로 드러난 외적인 유지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의지가 얼마나 많은 마음을 물들였을지는 알 수 없다.
<칼의 노래>는 소설이다. 소설 속의 인물의 내면을 너무 깊이 파고들며 시대와 사람들에게 투영하는 건 무리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에도 갈 곳이 없음을 알고 죽을 자리를 찾아가려고 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고향을 잃어버린 피란민들, 나라를 빼앗긴 백성과도 겹쳐진다.
전쟁을 승리로 끝내더라도 이순신 장군에게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이순신 장군이었다. 전쟁이 두려운 것은 전쟁의 참혹함보다 혼란과 광기 때문이다. 혼란은 너무나 많은 것을 무마시킨다. 광기는 책임조차 물을 수 없게 한다. 잔혹함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언제나 차고 넘치던 부덕이기에 오히려 무감각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스스로를,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떠드는 소식이 보지 않으려고 해도 눈에 들어오고, 듣지 않으려고 해도 귀에 들린다.
그들의 마음에는 칼이 없다. 그들의 마음에는 노래하는 칼이 없다. 그들의 마음에는 자기 이외의 사람들을 상처 입히는 칼만이 시퍼런 날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칼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아프게 울어대는 칼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열려있는 마음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왜 끊어내야 할 고리는 끊지 못하고, 끊어서는 안 되는 것만을 끊고 찢어대는가.
벨 수 없는 것을 앞에 두고 마음의 칼이 우우웅하고 우는 밤이다.